자활사업의 '진짜' 역할은?

김정원 경북대 사회학과 조교수 2024. 7. 5.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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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자활사업, 이제는 취업·창업 중심 모델에서 벗어나야…"

나는 1998년에 전주지역자활센터에서 실장으로 자활사업에 몸을 담았다. 당시 자활사업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공공부조인 생활보호법의 안에 있었지만, 아직 제도화되지는 않은 시범사업이었다.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이들도 생활보호법상의 지위에 구애되지 않았다. 그저 가난한 지역 주민이면 되었다.

자활사업은 1970년을 전후해 수도권의 빈민밀집지역에서 시작된 주민운동(이하 주민운동)을 그 전사(前史)로 하며, 특히 그중에서도 1990년대에 일어난 생산공동체운동과 깊은 관계가 있다. 생산공동체운동은 우리나라 노동자협동조합운동의 초기 사례이다. 내가 몸담고 있던 지역자활센터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동네에 위치해 있었다. 나와 동료들은 동네의 가난한 주민들과 함께 공동작업장을 운영했으며, 아이들을 모아서 공부방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공동작업장에 참여하는 주민들 및 아이들의 부모들과 함께 주민금고를 흉내 내서 운영하는가 하면, 짧은 기간이나마 한동안 동네 소식지를 내기도 했다. 자활사업 보조금 이외에 공공근로사업비나 여타 프로젝트를 활용했지만, 당시에는 지역자활센터가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지금처럼 취업과 창업이 명시적 목표가 아닌 지역사회 빈곤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 지역자활센터의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지역자활센터의 자활사업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딜레마의 핵심은 취업과 창업을 목표로 작동하는 자활 정책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과 함께 질적 전환을 맞이한 자활사업은 현재 공공부조의 한 부분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노동연계복지이다. 주지하다시피 노동연계복지는 수급자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목표로 하는 경향을 갖는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노동연계복지가 탈상품화가 아닌 재상품화를 추구한다고 비판한다. 도허티와 바버(Daugherty & Barber)는 이러한 경향이 유급 노동을 통해 경제적으로 자신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유급 노동의 가치와 보편성에 대한 깊은 신념이 정언명령으로 작동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물론 자활사업 참여자들이 취업과 창업을 잘 이뤄낼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면 이 부분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수급자를 구분한다. 근로능력을 평가받고 노동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이들은 조건부 수급자로, 그렇지 않은 이들은 일반수급자로 분류된다. 그리고 조건부 수급자는 다시 취업대상자와 비취업대상자로 나뉜다. 이 중 근로능력 점수가 높은 이들이 취업대상자이다. 이들은 노동부의 자활사업에 배정된다. 즉, 지역자활센터의 자활사업은 애초부터 노동시장 진입에 적합하지 않은 이들이 참여 대상인 것이다. 게다가 조건부라는 것은 노동에 참여해야 생계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는 조건이다. 일종의 '의무'인 셈이다. 사회의 성원으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의 급여를 받으려면 노동을 의무로 이행해야 했으니, 자활사업은 '강제노동'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한편, 지역자활센터가 수행하는 자활사업은 자활사업 참여자들이 자활근로사업단에서 노동 경험을 쌓고 이를 바탕으로 취업과 창업에 이르도록 경로가 설정되어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자활사업 참여자들에게는 취업과 창업이 목표로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지역자활센터의 과제일뿐이다.

요컨대 지역자활센터는 노동시장 진입에 적합하지 않은 이들이 비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노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이들을 노동시장에 진출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화 초기에 자활사업은 놀랄만한 성취를 보였다.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이들이 창업을 해나갔다. 무기력해 보였던 이들이 사업단 내에서 리더로 성장을 하기도 했고, 꾸준한 준비를 통해 공동으로 창업을 해나갔다. 이른 폐업을 하는 사례도 많았지만, 꾸준하게 창업이 이뤄졌다. 이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지역자활센터 종사자들의 헌신(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활사업에 내재된 아이러니는 이제 딜레마로 작동한다. 자활사업은 빈곤층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그런데, 그것을 취업과 창업의 성과에 초점을 둔다. 하지만 자활사업 참여자들의 대부분은 취업과 창업에 관심이 없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안정된 노동 참여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들 대부분은 노동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몸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도화 초기에는 자활 종사자들의 헌신과 열정으로 이를 어느 정도 감당했지만, 헌신과 열정만으로는 지속가능성을 결코 담보할 수 없다. 제도화 초기의 효과는 사라진 지 오래다. 오히려 자활사업 참여자들의 근로능력은 시간을 거듭할수록 더 악화되어 갔다. 2022년 기준으로 지역자활센터의 자활사업 참여자 중 조건부 수급자와 일반수급자의 비율이 각 35.2%와 34.9%로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이다. 또한 고연령대 참여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1인 가구가 거의 과반에 육박할 정도이다. 게다가 지역자활센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자활 참여자의 숫자가 문재인 정부 이래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런 변화는 자활근로사업단의 숫자에서도 드러난다. 자활근로 중 취업과 창업을 통한 시장 진입을 지향하는 단계라 할 수 있는 시장진입형 자활근로사업단의 숫자는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심지어 2022년 기준으로 대구 지역의 시장진입형 자활근로사업단 숫자는 (시장진입형보다 근로능력이 취약한 이들이 참여하는) 사회서비스형 자활근로사업단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정부의 기조는 여전히 취업과 창업 중심 모델이다. 하지만 이는 자활사업의 진정한 성과를 가린다.

거듭 말하지만, 자활사업 참여자의 대부분은 노동시장 진입이 불가능한 이들이다. 시장화된 노동만을 노동으로 여기는 우리 사회에서 노동시장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노동권을 행사하지 못함을 말한다. 노동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적 관계망의 훼손을 겪게 된다. 이는 물질적 빈곤을 넘어 사회적 및 정서적 역량의 약화로 이어진다. 이것이 빈곤의 악순환과 결합될 때 많은 이들은 이것을 이렇게 말한다. 사회적 배제. 자활사업은 바로 사회적 배제를 완화하는데 기여한다. 지역자활센터의 자활근로사업단은 노동을 매개로 해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게다가 노동 이외에 지역자활센터가 지역사회의 여러 자원을 조직해 제공하는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이들이 지역자활센터의 자활근로사업 참여를 계기로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겪곤 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렇지 전국의 많은 자활근로사업단들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 자활근로사업단들은 각종 재활용 사업을 통해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노동을 수행하며, 각종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사회에서 카페나 서점과 같은 연결의 장소를 만들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작업복을 매우 저렴하게 세탁하고, 오지 마을에 생필품을 제공하는 물류 서비스를 공급하기도 한다. 이러한 활동들은 모두 지역사회 내에서 협력을 조직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뤄진다. 즉, 자활사업은 지역사회에 사회적 유용노동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이른바 사회적 연계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 기반 지역사회 복지 실천.

노동 기반 지역사회복지실천은 취업과 창업에 가려졌던 지역자활센터 자활사업의 '진짜' 역할이다. 지역자활센터는 그동안 공공부조가 최후의 사회안전망으로서 빈곤층을 보호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지역사회를 좀 더 긍정적으로 변모시키는 역동적 행위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정부가 제시한 취업과 창업 중심 모델이 이를 감추고 있었을 뿐이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생명체로서 물리적 생명을 유지하고 문화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노동은 자아정체성의 형성에 기여하는 주요 수단이다. 취업과 창업 중심 모델을 계속 유지할 경우 자활사업 참여자들은 그저 부족한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노동 기반 지역사회복지실천을 모델로 삼을 경우 이들은 사회에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할을 수행하는 '시민'이 된다. 그렇다면, 노동시장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이들에게 취업과 창업을 목표로 제시하는 것이 더 좋은 정책인가? 아니면, 이들이 삶에 긍정적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확장하고 공동체의 성원, 즉 시민으로서 역할을 함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켜가는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좋은 정책인가? 이제 답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포함나눔지역자활센터. ⓒ김정원

[김정원 경북대 사회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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