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과 미래] 사랑이 있는 곳이 곧 낙원이다

2024. 7. 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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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어라, 길이 기쁨 깃드는 그곳, 복된 들이여! 오라, 공포여! 환영한다, 저승이여! 너 깊고 깊은 지옥이여." '실낙원'(문학동네 펴냄)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사탄이 내뱉는 탄식이다.

사탄의 마음, 즉 나 홀로 우뚝 서려는 지배욕은 낙원을 지옥으로 만들지만, 시련을 통해서 아담과 하와는 사랑의 삶이 구원임을, 즉 "당신과 함께 감은 이곳에 머무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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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어라, 길이 기쁨 깃드는 그곳, 복된 들이여! 오라, 공포여! 환영한다, 저승이여! 너 깊고 깊은 지옥이여." '실낙원'(문학동네 펴냄)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사탄이 내뱉는 탄식이다. 기독교 문학을 대표하는 이 장엄한 서사시를 쓰는 동안, 영국 시인 밀턴은 세 겹의 지옥에 시달렸다. 집안에선 불화와 학대로 상처받고, 정치에선 혁명 실패와 왕정복고로 좌절했으며, 육체적으론 실명으로 고통받았다.

삶의 가치는 인생 지옥, 즉 절망의 구렁에 떨어졌을 때, 무슨 마음으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사뭇 달라진다. 이 작품에서 밀턴은 낙원 상실의 참혹한 비극 앞에 선 두 존재를 나란히 그려냄으로써 이를 보여준다. 천사장 자리에서 몰락해 지옥에 처박힌 사탄과, 에덴을 잃고 쫓겨나 방황하는 아담과 하와다. 오늘날 우리의 삶 역시 이들처럼 위태롭다.

"마음은 마음이 제 집이라, 스스로 지옥을 천국으로,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지옥에서 사탄은 굳게 말한다. 자기계발서 주인공처럼, 마음먹기에 따라 지옥도 천국일 수 있다고 선언한다. "나로선 지옥에서나마 다스리는 게 바람직한 일, 천국에서 섬기느니 지옥에서 다스리는 편이 낫다." 천국 상실의 원인인 자기 오만을 성찰하고 뉘우치는 대신, 지배욕을 불태우면서 다시 신에게 도전한다. 패배에 지지 않는 의지, 사람을 홀리는 달콤한 말솜씨, 수시로 행동을 바꾸는 교활함 등 사탄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간을 타락시켜 죄와 죽음을 세상에 퍼뜨리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밀턴이 보기에, 그 성공은 실패나 다름없다. 영성을 완전히 잃고 짐승으로 전락해 지옥에서 꿈틀거리게 된 것이다. 불굴의 의지도, 뛰어난 능력도 방향이 틀리면 소용없다. 목적 없는 성공 다음에 오는 것은 영원한 지옥뿐이다.

낙원에서 추방될 때 인간 역시 잃어버린 낙원보다 "행복한 낙원을 마음에 품을 수 있음"을 깨닫는다. 마음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사탄의 선언과 비슷하다. 그러나 그 방향은 다르다. 사탄의 마음, 즉 나 홀로 우뚝 서려는 지배욕은 낙원을 지옥으로 만들지만, 시련을 통해서 아담과 하와는 사랑의 삶이 구원임을, 즉 "당신과 함께 감은 이곳에 머무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알게 된다.

"아담과 하와는 손을 마주 잡고 방랑의 걸음 느리게, 에덴을 통과하여 그 쓸쓸한 길을 갔다." 낙원을 떠날 때, 아담과 하와가 맞잡은 손은 이 지옥 같은 세상을 어떻게 천국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사랑이 있는 곳이 곧 낙원이다. 함께 가는 사람만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천국을 이룩할 수 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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