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론] 아시아를 두드리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사 대표 2024. 7. 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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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용산역에서 경의선의 맨 뒤칸에 탔는데 전동차 안에 책이 꽂힌 서가가 있어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파주 독서바람열차'가 문산에서 용문을 잇는 경의중앙선 열차의 첫 번째 칸과 마지막 칸에 하루 세 번 운행하는데 마침 내가 운 좋게 시간을 맞춰 탄 것이다.

도서관처럼 꾸민 열차의 서가에 꽂힌 책들의 제목을 알고 싶었지만 몸이 피곤해 안경을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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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최영미 시인·이미출판사 대표)

최근 용산역에서 경의선의 맨 뒤칸에 탔는데 전동차 안에 책이 꽂힌 서가가 있어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파주 독서바람열차'가 문산에서 용문을 잇는 경의중앙선 열차의 첫 번째 칸과 마지막 칸에 하루 세 번 운행하는데 마침 내가 운 좋게 시간을 맞춰 탄 것이다. 도서관처럼 꾸민 열차의 서가에 꽂힌 책들의 제목을 알고 싶었지만 몸이 피곤해 안경을 꺼내지 않았다. 여기에 내 책도 있을까? 궁금해 책등을 대강 눈으로 훑었는데 내 시집과 비슷한 책등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 책, 동화와 그림책이 많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내 옆에 앉은 젊은 여성 혼자 책을 읽고 있다. 책을 읽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전동차 벽에 '열차 타고 세계를 누빈 조선의 명인들' 유길준 등의 초상이 그려져 있는데, 내 시선은 한복 입고 갓을 쓰고 열차에 앉아있는 그들을 지나 바닥에 고정되었다. 바닥에 그려진 유라시아 철도 지도를 보니 가슴이 뛰었다. 베를린, 모스크바를 지나 이르쿠츠크, 울란바토르, 베이징, 나진, 서울까지 이어진 선. 지도만 보면 기분이 이상해지는데, 내 속에 유목민족의 피가 흐르나? 그 옛날 유라시아 초원을 달리던 유목민의 숨결이 느껴졌고, 유목민족과 중국인들 사이 오랜 갈등의 역사도 생각나고, 얼마 전에 읽은 김해 클레이아크미술관 한·중·일 도자전 관련 기사도 생각났다.

동아시아 도자문화예술 국제교류 워크숍을 진행했던 클레이아크미술관에서 '금바다(金海), 아시아를 두드리다' 전시를 열고 있는데 제목도 참 멋지다. '김해 金海'가 금의 바다였구나. 이번 전시에서는 김해시의 동아시아문화도시 선정을 기념해 열린 한·중·일 국제교류 워크숍에 참여한 각국 도예가 14명의 작품을 선보인다. 때로 서로 으르렁대고 힘을 겨루지만 한국·중국·일본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세 나라는 수천 년을 교류하며 유사하면서도 독자적인 문화예술을 꽃피웠다. 유럽을 하나로 묶는 코드가 기독교 문명이라면, 동아시아 3국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은 흙으로 빚은 도자기 아닌가.

비슷한 문화적 뿌리를 공유하는 아시아의 세 나라가 유럽연합처럼 언젠가 공통의 화폐를 사용하고 철도로 연결되는 그날을 상상해 본다. 아시아개발은행이 최근 아시아 단일통화(ACU)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데, 어서 실현되면 좋겠다. 중국과 일본이 의기투합하고 우리나라는 물론 북한도 참여한다면 통일을 앞당길 수도 있겠다. 그 전에 'Eurovision song contest'처럼 아시아의 젊은이들이 모여 예술을, 노래와 시를 겨루는 대회가 있으면 좋겠다. 그런 대회가 생긴다면 나를 심사위원으로 불러주시기를….

ⓒ연합뉴스

요즘 내가 아시아인이라는 자각을 많이 한다. 계기는 카타르월드컵이었다. 카타르의 축구경기장에서 술을 마실 수 없다는 기사를 주요 뉴스로 다루며 무슨 대단한 문제인 양 호들갑을 떠는 영국의 BBC 방송을 보면서 자신들의 기준을 글로벌 표준으로 만들려는 영국인들 그리고 제국주의의 만행에 대해 여러 생각이 스쳤다.

요즘은 축구도 아시안컵이 더 재미있다. 유로 2024가 열리는 요즘, 나는 유럽 축구경기를 시청하려고 새벽에 일어나지 않는다. 미리 알람을 해놓지는 않지만 새벽 3시 지나 저절로 눈이 떠지는 날은 텔레비전을 켠다. 슬로베니아와 포르투갈의 16강전은 연장전까지 갔지만 골이 터지지 않아 재미가 없었다. 실수를 연발하고 공이 여러 번 골망을 흔들고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승부를 가늠하기 힘들었던 아시안컵이 훨씬 흥미진진했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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