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을 지키던 민주주의 자본에 의해 공격받는다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7. 5.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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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자본의 요구에 따라
규제 줄이고 예외 허용하며
경제특구·조세회피처 급증
국가·민족 파편화로 이어져
돈 앞에 민주주의도 후순위로
게티이미지뱅크

정치철학자 칼 베커는 민주주의를 '여행용 가방'에 비유했다. 민주주의는 어느 주의나 이념과도 결합이 가능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유민주주의'도 그렇지 않던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서로를 늘 동시에 필요로 하는 동시적인 무엇으로 간주되곤 했다. 둘은 서로 보완관계였고, 그건 자유민주주의라는 인류사 거대한 엔진의 필수적인 작동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믿음을, 신간 '크랙업 캐피털리즘'은 완벽하게 깨부순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이미 서로를 버리고 있다"는 중대한 선언서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두 눈 똑바로 뜬 채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이별을 목격 중이다. 왜 그럴까.

우리가 아는 지구 위의 국가 수는 200개 정도다. 하지만 이 책의 시각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선 200개의 나라가 별 의미가 없다. 바로 이 순간, 세계 속에서 경제활동이 가능한 구역은 '고작' 200개가 아니라 5400개를 넘겼다. 경제특구, 수출가공구, 외국무역지대, 조세회피처 등의 '새로운 구역'이 꾸준히 나타났기 때문이다. 줄어드는 추세이기는커녕, 지난 10년간 1000개쯤 더 증가했다고 저자는 본다.

저자는 이를 크랙업(crack-up·균열) 자본주의(capitalism)라고 명명한다. 세계 지도가 찢어지고 민족국가에 '구멍'이 생기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크랙업 캐피털리즘 퀸 슬로보디언 지음, 김승우 옮김 아르테 펴냄, 3만6000원

이것은 무서운 문제다. 전통 자본주의가 균열된 공간 속에선 민족국가를 추동했던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것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각국 정부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규제를 줄이고 변칙을 허용해 자본을 흡수한다. 국경 내에선 일반적이었던 조세 권한이 이곳에선 유예된다. 심지어 민주적인 감독도 받지 않는다. 견제와 균형의 정신이 필요치 않으며, 상위 거래자들의 결정에 하위 참여자가 항소할 권한도 별로 없다.

역사를 돌아보자. 상하이 등 중국 조계지는 '크랙업 캐피털리즘'의 출발점이었다. 당시 조계지의 외국인들은 치외법권의 특별 대우를 받았고, 이방인의 경제적 자유는 완벽에 가까울 만큼 허용됐다. 홍콩도 그 연장선에 있다. 영국은 제1차 아편전쟁의 성과물인 홍콩섬에 대한 권한을 획득했다. 이후 홍콩은 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도약했는데, 홍콩은 1970년대에만 은행 수가 2배, 자산은 6배 불어났다. 조계지도 홍콩도 자본의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홍콩과 함께 신자유주의 지수 순위에서 나란히 최상위권에 오른 도시는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홍콩과 달리 자치권과 주권을 회복했지만 '낮은 수준의 민주주의'로 승부수를 걸었다. 싱가포르는 '역외 달러화를 기업에 빌려주는 국제금융 중심지'를 정체성으로 삼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사 독립국가'의 지위를 부여받았던 트란스케이공화국은 시장급진주의자들의 거래 위에서 태동했다. 조세회피처로 유명한 리히텐슈타인도 늘 얼굴도 모르는 자본의 손을 들었다. "스위스 은행가들은 입술을 꾹 다물고 있지만, 리히텐슈타인 은행가들은 '혀'가 없다"는 웃지 못할 농담은 '변칙 구역'으로서의 리히텐슈타인을 설명해준다. 마다가스카르, 온두라스, 에스토니아에서 시행된 무정부 자본주의 실험도 마찬가지라고 책은 쓴다.

현대에 이르러, 두바이는 자유지상주의가 민주주의와 결별해도 별 문제가 없음을 스스로 입증한 최첨단 도시다. 두바이는 권위주의 정부가 나서서 직접 '국가의 기업화'를 추구했다. 두바이에선 민주 정치의 요소가 희박하다. 권력과 소유권 모두 '주식회사 두바이'의 최고경영자(CEO)인 아랍 왕자에게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보통선거, 표현의 자유, 비시민의 권리보호가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두바이에서 희박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주 정치'가 불필요함을 도시의 존재 자체만으로 실증한 곳, 소득세도 노조도 야당도 존재하지 않는 '자유기업의 오아시스'가 바로 두바이다.

자본의 요구가 민족국가를 해체하는 사이, 국가권력의 중앙집권화라는 오랜 전통은 와해 중이다. 민주주의가 없이도 자본주의가 존재한다는 신념은 단지 믿음이 아니라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권리는 없고 단지 '권력의 행사'만이 존재하지만 그 엔진이 고장나지 않았다는 걸 이제 알게 됐다. "시장과 민주주의는 굳이 양립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에 따라 자본주의가 민족국가에 '구멍'을 내고 있다고 책은 선언한다.

따라서 이 책은 묻는다.

'크랙업 캐피털리즘은 자유지상주의의 최종 안식처일까. 인류가 이렇게 서서히 민주주의를 질식시켜도 시장경제의 천국은 장기적으로 유지될까. 그사이, 불평등과 착취의 문제는 인류의 미래에 어떤 금을 낼 것인가.'

언제나 입맛대로 흘러가는 자본을 보며 인류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책은 질문한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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