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북 ‘포격 도발’, 한국군의 ‘뇌피셜’이었다[박성진의 국방 B컷](10)

2024. 7. 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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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6일 인천시 옹진군 대연평도에서 해병대 스파이크 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서북도서 해상 사격훈련은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이 정지됨에 따라 7년 만에 재개됐다. 연합뉴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관계가 심상치 않다. 북한과 러시아는 최근 북·러 조약을 통해 유사시 지체없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서로를 지원하기로 했다.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서 진영 대립 구도는 더욱 첨예해졌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정부의 한반도 정세에 대한 대응은 위태롭고 불안해 보인다.

남북은 대북전단과 오물풍선을 주고받는 등 그 불씨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거듭하고 있다. 여기에다 북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교란을 일삼고, 한국군은 휴전선 인근에서의 K-9 자주포 사격훈련도 했다.

남북은 거칠고 불안한 게임을 하고 있다. 사소한 충돌이 ‘치킨게임’으로 번지면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 하지만 남북 간 적대 행위가 반복되면서 국민은 이런 위험에 둔감해졌다. 오히려 미국 전문가들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 수 있다’는 경고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6월 9일 미국 보수성향 싱크탱크 카토연구소의 더그 밴도우 수석연구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브루스 클링너 미국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이 ‘2015년 포격 사건’을 설명한 글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남북 사이 긴장이 고조되는 이유이고, 의도적 시도보다 실수로 인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담당 부국장을 지내기도 한 클링너가 SNS에 올린 글은 박근혜 정권 시절인 2015년 벌어진 포격 사건이 한국군의 실수로 빚어진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당시 사건에 대해 “한국은 (2015년 8월) 북한이 13발의 포격을 가하자 39발을 응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후에 유엔사는 북한이 어떠한 포격도(ANY rounds) 하지 않았고, 낡은 대포병 레이더가 천둥·번개를 오인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유엔사는 남측의 ‘오인 포격’

2015년 8월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합참은 한·미연합군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 기간 중이던 8월 20일 북한군이 경기도 연천 인근 서부전선에서 오후 3시 53분과 4시 12분, 2차례에 걸쳐 화력 도발을 했다고 밝혔다. 첫 화력 도발 때는 14.5㎜ 고사포(총) 1발, 2차 도발 때는 76.2㎜ 직사화기 3발을 군사분계선(MDL) 남쪽 700m 지점으로 발사했다는 것이다. 합참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MDL 북쪽 500m 지역에 155㎜ K55A1 자주포 29발로 상응 사격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합참은 전군에 최고 수준의 경계령을 내렸다. 북한은 전방에 ‘준전시 상태’를 선포했고, 후방의 북한군 화력부대가 전방으로 이동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북한 잠수함 전력의 70%가 출항했고, 중국이 북한에 자제를 요구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일촉즉발 상황은 8월 22일 남북의 판문점 접촉을 통해 가까스로 진정됐다.

주한 유엔군사령부(유엔사·UNC) 군사정전위(군정위)는 포격 사건에 관한 조사에 나섰다. 미국 공군 소령을 팀장으로 한 유엔사 특별조사팀(SIT)은 북의 14.5㎜ 고사포 1발 사격에 대해서 대포병 레이더 ‘아서-K’가 오작동했다고 판단했다. 북측의 2차 도발로 지목된 76.2㎜ 직사포 역시 한·미 정보감시자산이 확보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도발에 동원된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유엔사는 클링너 전 CIA 간부가 밝힌 것처럼 북한군의 포격 도발이 아닌 레이더 오작동으로 인한 한국군의 일방적 포격 사건으로 결론을 냈다.

지난 6월 26일 인천시 옹진군 대연평도에서 발사된 해병대 스파이크 미사일이 해상 타깃을 파괴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사 결과에 충격을 받은 당시 합참의장은 한때 유엔사로부터 포격 사건 조사 결과를 통보받는 것조차 거부하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합참은 “인적이 없는 야산에 포탄이 떨어진 탓에 탄착지점을 찾지 못했을 뿐 북한 도발이 맞다”고 주장했다. 합참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북한군 포탄의 포연을 촬영한 열영상관측장비(TOD) 영상을 공개할 용의가 있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공개를 거부했다. 합참은 북의 포격 증거가 될 수 있는 ‘도발 원점’을 특정하지 못했다. 군 내부에서조차 애초부터 북의 도발 원점이 없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유엔사는 언론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포격 사건 조사 내용 공개를 일절 거부했다. 이는 유엔사가 앞서 발생한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사건에 대해서 사건 발생 이틀 만에 보도자료를 내고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 사실을 확인했으며, 한국 국방부 및 합참과 조사 결과를 공유했다”고 발표했던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군 안팎에서는 한·미 군 당국이 유엔사 1차 조사 결과를 수정한 후 비공개하기로 사전에 조율했다는 소위 ‘짬짜미’ 의혹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대포병 레이더가 오작동으로 합참이 밝힌 것처럼 포탄 4발이 날아온 것으로 인식했는지, 아니면 클링너의 주장처럼 포탄 13발을 인식했는지도 규명돼야 할 부분이다.

합참은 북한군이 포격 도발한 사건이었다는 주장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군 포격 도발을 입증할 만한 증거자료는 지금까지 하나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유엔사 역시 보수정권에서 일어난 정전협정 위반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는 숨기고, 진보정권에서 발생한 정전협정 위반 사건은 페이스북 등을 통해 발표해 ‘입맛대로’ 발표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즉·강·끝’의 신기루

윤석열 정부는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우고 있다. 군은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적 도발에 대한 군사작전의 원칙이라고 지시한 ‘즉강끝’을 다짐하고 있다. ‘즉강끝’은 북이 도발하면 ‘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하겠다는 의미다.

‘즉강끝’은 한국군이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는 유엔사 정전교전규칙(AROE)과 어긋날 소지가 많다. 정전교전규칙은 적의 공격에 대한 자위권 행사를 할 때 ‘필요성’(필요한 만큼의 무력 사용)과 ‘비례성’(적대행위의 정도에 비례한 무력 사용) 원칙을 따르게 돼 있기 때문이다. ‘강력히’가 군사력 남용으로 이어지면 정전교전규칙 위반이 되는 것이다. 만약 ‘끝까지’가 북한 정권의 붕괴까지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는 전면전 상황이다. ‘즉각 대응’ 역시 확실한 물증 없는 경솔한 무력사용일 경우 사소한 판단 착오로 한반도 전쟁의 방아쇠를 당기는 꼴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즉강끝은 북의 GPS 전파교란, 오물풍선과 같은 ‘회색지대(grey zone) 도발’에는 무기력하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은 전면전 상황이 아니라면 적 도발에 대해 3단계 대응을 한다. 현장의 전투부대는 ‘즉각(immediate) 대응’이 원칙이다. 상위부대인 지역사령부는 전후 사정을 살핀 ‘맥락적(context) 대응’을 하게 돼 있다. 최상위 부대인 총참모부는 정치·경제·외교 상황을 고려한 전략적 판단에 따른 ‘지연된(delayed) 대응’을 한다.

전술단위 창끝 부대에서부터 합참과 같은 최고 전략단위 부대에까지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즉강끝’ 대응은 전술적·전략적 대응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예비역 장성은 “현행작전의 성과주의가 군을 망치고 있다”며 “군이 ‘걸리기만 해봐라’는 식 대응을 하는 것은 1960~1980년대 대간첩작전과 같은 ‘현행작전 지상주의’의 폐해”라고 말했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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