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딜러만 쥐어짜는 올빼미 외환시장

세종=이신혜 기자 2024. 7. 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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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이달부터 외환시장 마감 시간을 오후 3시 30분에서 다음 날 새벽 2시로 연장했다.

외환시장 심야 개장 이후, 시장에서 플레이어(Player)로 뛸 딜러들의 사기가 바닥이다.

딜러들이 지표와 환율 등 글로벌 경제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8개의 모니터를 쉬지 않고 확인하며 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새벽 2시 마감에서 향후 24시간으로 외환거래 시간이 연장될 경우 현장 업무 강도는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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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하기 싫어 은행에 입사했는데 강제로 야근을 시키니 막막합니다” (한 시중은행 딜러)

정부가 이달부터 외환시장 마감 시간을 오후 3시 30분에서 다음 날 새벽 2시로 연장했다. 외환시장 구조 개선을 위한 조치이지만 현장에서는 불안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외환시장 선진화’라는 슬로건 뒤에 딜러들의 과로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외환시장 심야 개장 이후, 시장에서 플레이어(Player)로 뛸 딜러들의 사기가 바닥이다. 은행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딜러들이 심야 외환거래 참여에 따라 일주일에 한 번씩 야간 당직 근무를 서야 한다. 인력은 적지만 전문성으로 무장했던 외환딜러들의 근무여건이 열악해지면서 이제는 외환 파트가 기피부서가 될 것이라는 말이 딜러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

한 번 거래를 할 때 적게는 100만 달러(약 14억원), 많게는 1000만 달러(약 138억원) 단위로 성사되는 외환 거래는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거래 단위가 큰 만큼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환율 변동으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딜러들이 지표와 환율 등 글로벌 경제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8개의 모니터를 쉬지 않고 확인하며 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환율에 끼니를 건너뛰는 것도 일상다반사다. 심야 외환거래 첫날, 10분 만에 짜장면을 먹고 왔다는 10년 차 딜러의 말에서 긴장감과 부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업무를 하는 와중에 근무조를 편성해 새벽까지 일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딜러들은 “몸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불만을 표했다. “원치 않는 야근에 수당은 적다” “새벽 2시 넘어 피곤한 상태에서 운전을 하거나, 제 돈으로 택시를 불러 귀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외환당국이 금융사에 심야 외환거래 참여 인력을 충원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현장의 움직임은 더디다. 몇몇 은행은 야근 수당 및 인력 충원 계획과 관련해 노사협의를 아직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로서는 별다른 야근 수당은 주지 않고, 야근 당일이나 다음날 출근을 늦게 하는 방식으로 근무를 조정하는 상황이다.

은행도 불만은 있다. 외환당국이 원‧달러 거래 활성화에 기여한 은행을 선정해 외환건전성 부담금을 감면해 준다고 하지만, 이는 외환중개사에게 주는 수수료를 절감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은행 관계자의 전언이다. 은행 내부에선 ‘거래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 심야에 굳이 외환거래를 해야 하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러다 보니 은행 차원에서 시스템을 마련하기보다는 정부 눈치를 보며 인력만 쥐어짠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새벽 2시 마감에서 향후 24시간으로 외환거래 시간이 연장될 경우 현장 업무 강도는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금융 선진화와 외국인 투자 유입 확대를 위해 외환거래 시간을 늘려 금융선진국과 발걸음을 맞추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외국인투자자들의 한국 채권·주식 매수를 쉽게 만들어줄 세계국채지수(WGB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러나 외환시장 선진화를 꾸준히 추진하기 위해선 일선 현장에서부터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딜러들의 처우개선이 첫걸음이고, 유능한 외환딜러를 더 많이 육성해야 한다. 은행으로서도 추후 인력 부족으로 발생할 수 있는 심야 외환시장 사고를 대비해야 한다. 현재 신한은행과 국민은행, 우리은행은 심야에 서울 딜링룸에서 근무하는 외환 트레이더(딜러)가 2명에 불과하다. 하나은행은 3명으로 상황이 좀 더 낫다. 하지만 이마저도 낮 시간대에 외환 트레이더 10명 내외가 근무하는 것과 대비된다. ‘인력이 부족한 심야 시간에 돌발 사고가 발생하면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지우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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