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거래소는 왜 경기장 이름을 1조원 들여 샀을까? 구장명명권의 세계 [올어바웃스포츠]

류영욱 기자(ryu.youngwook@mk.co.kr) 2024. 7. 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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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경기가 펼쳐지고 있는 프랑스 파리 소재 아디다스아레나 <출처=위키피디아>
‘혁명의 나라’ 프랑스에서 열리는 2024파리올림픽은 유치전부터 개최 직전인 최근까지 크고 작은 갈등에 휩싸였습니다. 그중 하나는 올림픽을 위해 신설된 경기장 ‘아디다스 아레나’의 명칭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환경운동가 등 진보세력은 새 경기장에 여성 스포츠참여와 여권신장을 위해 뛰었던 여성운동가 엘리스 밀리아트의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파리 시의회는 2022년 12월 아디다스에게 경기장 명명권을 준다는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아디다스가 최대 7년간 매해 280만유로(약41억원)의 명명권 사용료를 내는 대가로 말이지요. 밀리아트의 이름은 경기장 앞 거리에 붙여졌습니다.

해외 스포츠시장에서 경기장 명명권 거래는 꽤나 흔한 일입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기업들이 경기장 신축비용보다 큰 금액의 명명권을 사는 일도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신생 스포츠팀, 신축구장을 중심으로 명명권 거래가 슬슬 자리잡고 있습니다.

반면 이런 거래를 반대하는 팬들도 적지 않습니다. 팀 전력을 강화시킬수 있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다준 것도 반대하면서까지 말입니다. 명명권은 누가, 그리고 왜 사는 것일까요. 그리고 팬들이 명명권 거래를 막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북미 5대리그 91%가 구장 명명권 판매...20년간 ‘1조원 계약’도
북미 5대스포츠리그의 구장의 명명권 계약 비율. 왼쪽부터 NFL(프로풋볼), NBA(농구), NHL(하키), MLS(축구), MLB(야구) <출처=Lexpert>
미국 로스엔젤러스(LA)의 두 프로풋볼팀 LA램즈와 LA차저스의 홈구장 이름은 ‘소파이 스타디움’입니다. 건설비용만 6조원 넘게 들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경기장으로 불리는 소파이 스타디움은 이름값도 만만치 않습니다. 2011년 설립된 미국 온라인전문금융기업 소파이는 20년간의 명명권을 얻는 대가로 매년 3000만달러, 총 6억달러(8344억원)을 건네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소파이 스타디움도 이름값으로는 2위에 불과합니다. 2개의 전미농구협회(NBA)팀을 포함 4개의 프로스포츠팀의 홈구장인 LA의 ‘크립토아레나’는 2021년부터 20년간 7억달러(9733억원)의 명명권거래를 맺어 이 분야 역대 최고 수준입니다.

이처럼 북미스포츠 경기장의 명명권 거래는 천문학적인 규모를 동반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기장 간판은 이미 팔려있지요. 2023년 기준 북미프로풋볼(NFL)과 NBA팀의 97%가 명명권 계약을 맺었습니다. 북미하키리그(NHL)팀의 94%, 프로축구(MLS)와 메이저리그(MLB)도 각각 90%, 77%가 간판 이름을 대가로 돈을 받고 있지요. 5개 리그를 통합하면 10개 구장중 9개(91%)가 이미 매진됐습니다.

“스포츠팀 후원하는 기업 제품 산다” 59%...명명권 마케팅 효과 ‘톡톡’
20년간 6억달러(8344억원)의 명명권 거래를 체결한 미국 캘리포니아 ‘소파이스타디움’ <출처=소파이스타디움 홈페이지>
기업들이 돈을 들여 경기장 이름을 사들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마케팅 효과가 지불한 금액을 상회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죠. 스포츠 경기가 전국으로 중계되면 카메라는 경기장 전경을 시도때도 없이 비춥니다. 중계진들은 이제 막 텔레비전을 켠 팬들을 위해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구장 이름을 수도없이 말하곤 하죠. NFL 결승전인 슈퍼볼이 열리면 잭팟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해 초 열린 슈퍼볼의 TV광고비는 30초당 최대 700만달러(약 97억원)로 초당 3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습니다. 슈퍼볼이 열렸던 애리조나의 스테이트팜 스타디움의 이름은 2024년 포츈500대 기업에서 39위에 오른 보험업체 스테이트팜을 뜻하는 것이죠.

또 경기를 즐기는 팬들은 무의식적으로 구장 기업과 본인들이 응원하는 팀을 동일시할 수 있습니다. 팬들이 팀에게 품는 긍정적인 감정이 자연스럽게 브랜드에도 스며들기 마련이죠. 미국 시카고 시민들이 제과업체 리글리에 호감을 갖는 것에는 MLB의 시카고컵스의 홈구장이 리글리 필드라는 것과 관계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설문에서도 이런 경향은 발견됩니다. 미국 티케팅전문 사이트 일레벤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9%는 좋아하는 스포츠를 후원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답했습니다. 응답자의 21%는 특정 제품브랜드가 스포츠 또는 스포츠단체를 후원한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브랜드와 거래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15%의 응답자는 마음에 들지 않은 스포츠나 스포츠팀을 후원하는 브랜드와 거래를 중단했다고도 했습니다.

금융·항공·식음료까지...구장 이름보면 ‘잘나가는 산업’ 보인다
<출처=sherwood>
구장 이름이 마케팅 효과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눈치채다보니 명명권 계약의 역사를 살펴보면 어떤 기업이 공격적인 사세 확장에 나서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1990년 초까지만 해도 미국 4대 스포츠(NFL, MLB, NBA, NHL)의 경기장의 93%는 기업스폰서 이름이 걸려있지 않았습니다.

이가운데 은행 및 금융 부문이 경기장 이름 지정 분야에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돈이 굴러가는데 가장 민감한 은행·금융업이 가장 먼저 시장에 뛰어들었고 항공업과 식음료판매업도 점점 구장 간판을 사는데 속도를 냅니다. 최근에는 앞서 말한 크립토닷컴, 소파이 등 암호화폐와 온라인은행 산업 등 테크놀로지 기업들도 소비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명명권 거래에 나서고 있지요.

국내에서도 명명권을 사들이는 구단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내 명명권 시장의 특징은 구단의 자생적인 운영이 쉽지 않다보니 모기업이 명명권도 함께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점입니다. 현재 KBO 1위를 내달리고 있는 KIA 타이거즈의 홈구장 이름은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입니다. 2014년부터 25년간 연간 12억원을 내는 대가로 신축구장 이름에 KIA를 넣은 것이지요. 배구 V리그에 참가중인 광주 페퍼저축은행 AI 페퍼스의 홈구장 이름도 페퍼스타디움입니다. 2021년 창단한 신생팀 페퍼스 모기업이 염주종합체육관이었던 경기장 이름을 사들였습니다.

유럽 축구팬, 구장이름 판매에 “글쎄”...맨유 ‘올드 트래포드’도 간판 바뀌나
유럽 5대 축구리그의 구장의 명명권 계약 비율. 왼쪽부터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출처=Lexpert>
구매자는 톡톡한 마케팅 효과를 얻고, 구단과 팬은 대규모 자금을 얻게 됩니다. 명명권 거래는 이처럼 ‘누이좋고 매부좋은’ 전형적인 윈윈 거래로 보입니다. 그러나 모든 팬들이 이를 반기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유럽 축구리그에서는 열성 서포터들이 이런 움직임을 반대합니다. 최근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L) 최다 우승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새 운영진이 11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올드 트래포드의 명명권 판매를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이와 관련 서포터들은 경기장 명명권을 매각하기 전에 팬들과 협상이 필요하다고 촉구했습니다. 맨유서포터즈트러스트(MUST)의 대변인은 “명명권 매각 여부는 오랫동안 팬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매우 감정적인 문제였다”며 “팬들은 이런 결정의 중심에 있어야 하며, 구단이 결정을 내리기 전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맨유의 전설중 한명인 에릭 칸토나는 “올드 트래포드가 특정 브랜드이름이 들어간다면 더이상 맨유의 팬이 아닐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강하게 비치기도 했지요.

2021년 스페인 축구의 거함 FC바르셀로나가 자금난을 극복하기 위해 역사상 최초로 음원스트리밍 업체 스포파이에 구단 명명권을 매각했을때도 팬들은 반발이 거셌습니다.

실제로 유럽 축구 5대리그(영국·이탈리아·스페인·독일·프랑스)의 구장 명명권 거래 수치는 북미스포츠와 유의미한 차이를 보입니다. 영국은 30%, 스페인은 25%, 이탈리아는 25%에 불과합니다. 프랑스는 20%뿐이고 유일하게 독일(83%)만 활발한 계약이 체결된 상황입니다.

이는 북미 스포츠와 달리 유럽의 스포츠팀들은 경기장의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오랜 터전에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북미 5대 프로스포츠 리그의 경기장 153개중 1990년 이전에 공식 개장한 구장은 20개에 불과합니다. 21세기 들어서 문을 연 경기장이 절반이 넘는 84개에 달하죠. 반면 PL은 19세기에 문을 연 경기장이 20개 구장중 9개에 달할 정도로 전통이 서려있습니다.

정답없는 명명권 거래...“올드팬 향수 부르는 배려 있었으면”
KIA타이거즈의 홈구장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출처=온라인>
스포츠 구장 명명권을 둘러싼 논쟁에 정답은 없습니다. 어린시절 추억이 깃든 해태 타이거즈의 무등경기장이 그리운만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를 내달리는 기아타이거즈 선수들의 연봉에 명명권 거래로 벌어들인 수익이 들어가있을 것이기 때문이죠. 다만 거래에 앞서 오랜 팬들을 위로할 수 있는 배려가 스며들었으면 떠났던 팬들도 더 많이 돌아왔을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무등기아챔피언스필드’였다면 말이지요.
<참고문헌과 외신> ◎https://sherwood.news/business/a-history-of-the-american-economy-through-stadium-names/ ◎https://www.sportcal.com/comment/understanding-the-prominence-of-stadium-naming-rights-deals-in-north-america/?cf-view ◎https://www.nytimes.com/athletic/5479599/2024/06/26/manchester-united-old-trafford-naming-rights/ ◎https://stacker.com/sports/whats-name-how-naming-rights-deals-impact-professional-sports-venue-landscape ◎https://www.sportico.com/business/sponsorship/2022/brands-spend-big-on-stadium-naming-rights-value-1234693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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