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 실수인가, 급발진인가…‘역주행 돌진’ 미스터리

이혜영 기자 2024. 7. 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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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역 인도 덮쳐 16명 사상…운전자 “브레이크 딱딱” 급발진 주장
전문가들은 가능성 낮게 봐…역주행 도로 진입 이유·회피동작 의문
“운전자, 거짓말탐지기 응해야”…사상자 규모 상관 없이 최대 5년형 예상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7월1일 오후 9시27분. 제네시스 G80 차량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호텔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온다. 운전자는 '우회전'만 가능한 도로에서 핸들을 꺾지 않은 채 그대로 맞은편 일방통행 도로로 내달렸다. 위험천만한 주행을 이어가던 차량은 안전펜스를 뚫고 인도에 있던 보행자들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야근을 위해 시청으로 복귀하던 공무원들, 승진·전보 기념 회식 후 대화를 나누던 은행 직원들, 퇴근 후 동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대형 병원 주차관리 직원 등 시민 9명이 그날 밤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대형 인명 사고를 낸 운전자는 40년 넘는 운전 경력을 가진 버스기사였다. 이해하기 어려운 '공포의 질주'를 벌인 운전자 측이 '급발진'을 들고 나오면서 의혹과 논란은 증폭되는 양상이다.

7월1일 밤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차아무개씨(68)가 몰던 제네시스 G80 차량이 역주행 돌진하다 인도를 덮쳐 16명의 사상자를 냈다. 사진은 보행자 추돌 후 멈춰 서있는 차량을 경찰이 통제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운전자, 왜 역방향 도로로 진입했나

의문이 꼬리를 무는 이번 사고 출발점은 가해 운전자 차아무개씨(68)의 G80 차량이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온 직후 우회전이 아닌 세종대로18길로 진입하면서다. 호텔 주차장에서 나온 차량은 도로 합류 시 우회전만 가능하다. 그런데 차씨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진입이 금지된 건너편 일방통행 도로로 향했다. 역주행을 하게 된 차씨의 차량은 시속 100km에 달하는 속도로 200m가량을 내달렸다.

차씨는 호텔에서 차량을 출발시킨 직후 '이상'을 감지했다고 한다. 차량 이상을 느낀 것과 역주행 도로 진입의 연관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이 확보한 차씨 블랙박스 영상에는 운전자와 동승자가 차량 결함 등을 암시하는 대화를 나눈 음성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추돌을 전후해 '어, 어' 하거나 비명을 지르는 목소리가 있지만 일방통행 도로로 차를 몬 이유나 급발진 여부 등을 뒷받침할 만한 유의미한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엄청난 인명 피해를 야기한 역주행 상황을 재구성하려면 당시 차량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고, 운전자와 동승자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만일 실제로 차량 결함이 있었다면 전자 장치를 거쳐 기록되는 숫자에도 '오류'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전문가인 한문철 변호사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한문철 TV'를 통해 "급발진 여부를 판단하려면 블랙박스 오디오(음성) 부분이 중요하다"며 "그래야 운전자가 브레이크가 듣지 않아 '차가 왜 이러느냐'는 등 당황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차 미쳤어' 이런 생생한 오디오가 없으면 꽝"이라고 설명했다. 한 변호사는 사고 당시 주행속도와 제동 페달 동작 여부를 기록하는 사고기록장치(EDR)만으로는 급발진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2022년 일어난)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도 EDR 기록과 실제 실험의 차이가 많았다"며 "(EDR은) 당시 상황을 기록할 뿐 (사고를 전후한) 운전자의 행태를 알 수는 없다"고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차씨가 진입한 도로 구조도 주목한다. 차씨가 주차장을 빠져나온 지점에서 세종대로18길 쪽을 바라보면 일방통행을 뜻하는 '진입금지' 표지판이 설치돼 있지만 이외에 물리적으로 이를 막는 신호등은 없다. 해당 도로에 익숙한 운전자가 아닌 데다 낮 시간대처럼 전체 차로에서 한 방향으로 차량이 이동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순간적으로 진입 가능한 도로라는 착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씨의 차량이 역주행 도로로 진입하게 된 경위는 급발진 등 차체 결함이 있었는지 여부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사고 사흘 만인 7월4일 오후 갈비뼈 골절로 입원 중인 차씨를 상대로 첫 피의자 조사를 진행했다. 차씨는 조사에서 "사고 당시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딱딱했다"며 차량 이상에 따른 급발진으로 인한 사고임을 주장했다. 경찰은 차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브레이크 작동 안 했다? '회피 동작' 있었나

또 다른 의문점은 가해 차량이 멈춰설 때까지 뚜렷한 '회피 동작'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통상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사고라 하더라도 운전자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회피 동작을 하는데 이번 사고에서는 관찰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운전자는 인명 피해가 극대화될 수 있는 인도와 횡단보도를 향해 돌진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당시 차씨가 몰던 차량은 조향 장치(핸들)가 먹통이 된 상태가 아니었다"며 "만일 운전자가 구조물 등을 추돌하는 방식으로 인명 피해를 줄이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 교수는 차씨가 인도 쪽 가드레일에 접근한 것이 피해를 줄이기 위한 행위였는지 따져볼 필요성은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차씨가 가드레일 쪽으로 차량을 갖다 붙이는 방식으로 속도를 줄이려고 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높은 속도 탓에 결국 인도를 덮치는 결과로 이어졌지만 최소한의 시도를 했는지 여부도 규명해야 할 사안"이라고 짚었다.

7월4일 오전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마친 시청역 역주행 사고 희생자 서울시청 청사운영1팀장 고(故) 김인병씨의 영정이 서울시청을 순회하고 있다. ⓒ연합뉴스
7월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 교차로 인도에 역주행 돌진 사고로 숨진 희생자 9명을 추모하는 국화꽃과 편지가 놓여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운전자, 거짓말탐지기 조사 적극 응할 필요도"

차씨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기 전에 차량은 4개 차로 중 3개 차로에서 정차해 있던 차량 사이를 지나며 횡단보도를 걷던 시민들을 간발의 차이로 비켜갔다. CCTV 영상에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시민들이 달려오는 차씨 차량을 확인한 후 다급히 몸을 피하며 놀라는 장면이 담겼다. 차씨가 보행자들을 발견하고 피하려 핸들을 조작한 것인지, 아니면 시민들이 재빨리 움직여 참변을 피한 것인지도 조사가 필요한 사안이다.

차씨가 1차적으로 보행자들을 피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인도를 침범해 16명의 사상자를 냈다는 점에서 주의의무 위반을 피해 갈 순 없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정경일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는 "완전히 새로운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운전자 과실로 인한 치사상 혐의는 확정적"이라며 "급발진 등 운전자 부부가 현재 주장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억울함을 풀고 설득력을 조금이라도 확보하고 싶다면 거짓말탐지기 조사에 적극 응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 관련 영상을 분석한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급발진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다만 야간 시간에 녹화된 CCTV나 블랙박스만으로 사고 경위와 제동 여부 등을 단정 짓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국과수 분석을 종합해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과수 정밀감식 결과 확인에는 1~2개월이 소요될 전망이다.

경찰은 국과수에 사고 차량인 제네시스 G80과 피해 차량인 BMW·쏘나타의 블랙박스, 웨스틴조선호텔 측으로부터 확보한 CCTV 및 차량 이동 동선에 따른 현장 영상 등 총 6점을 보내 정밀 감식·감정을 진행 중이다.

국과수 분석에 앞서 EDR 및 영상 증거로 자체 감정을 진행한 경찰은 차씨가 호텔 주차장 출구를 빠져나온 직후부터 과속을 했고, 사고 직전 액셀을 강하게 밟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 CCTV와 블랙박스 등을 교차 분석해 차씨가 역주행하던 당시 보조브레이크등이 켜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했다.

다른 장치를 거치지 않고 브레이크와 바로 연결된 브레이크등은 페달을 밟는 즉시 점등되는 구조다. 때문에 급발진과 조작 실수를 판단하는 가늠자로 활용된다. 통상 브레이크를 밟으면 브레이크등(후미등)과 보조브레이크등이 모두 켜지는데, 후미등은 야간 주행 시에도 켜지기 때문에 감속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선 보조브레이크등을 주목해야 한다. 차씨의 차량은 호텔 주차장에서 나와 멈춰서기까지 보조브레이크등이 켜지지 않았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추돌 사고를 낸 후 서서히 감속하며 자력으로 멈춰 선 것도 다른 급발진 의심 사고와의 차이점이다

일부 전문가는 순간적으로 급발진이 됐다가 추돌 후 차량 시스템이 리셋되면서 제동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본다. 이호근 교수는 "급발진을 주장하는 운전자 측에서는 결국 EDR 데이터 신뢰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며 "국과수와 경찰은 차선 길이와 CCTV·블랙박스 영상 프레임 분석으로 차량 주행 속도를 도출한 후 이를 EDR 기록과 대조하는 방식으로 데이터 분석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받는 가해 운전자는 급발진 여부와 관계없이 인도 및 횡단보도로 돌진해 명확한 과실이 인정되는 만큼 5년 이하의 실형을 선고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양형 기준이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규정돼 있고, 여기에 여러 양형 요소가 적용되면 징역 3~4년으로 조정될 수도 있다.  

사상자 규모와 상관없이 가해자가 최대 5년형을 받는 것을 둘러싼 비판도 커지고 있다. 한문철 변호사는 유튜브 방송에서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해도 징역 5년이 최대 형량"이라며 ""9명이 사망했으니 5년씩 더해서 45년형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특별법을 제정하지 않는 한 이번 사건도 형법 제40조 '한 개의 행위가 여러 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가장 무거운 죄에 대해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는 상상적 경합 원칙에 따라 징역 5년이 최대 형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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