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대 ‘책사랑’ 현상의 명암[최현미의 시론]

2024. 7. 5.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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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논설위원
서울도서전 70∼80%가 2030
20대 적극적인 문화향유 세대
직접 경험과 소통 연결의 욕망
텍스트힙 트렌드로 읽고 쓰기
전자책 읽고 북튜브 챙기고
탈사물·디지털 시대 건너는 법

지난달 30일 폐막한 서울국제도서전이 여전히 화제다. 행사가 열린 5일간 지난해 13만 명보다 15.4%가 많은 15만 명이 찾아 주말엔 입장에만 1시간 이상 걸렸다. 하지만 흥행 성공 자체보다 주목되는 건 도서전을 찾은 관람객의 70∼80%가 2030 세대라는 점이다. 특히 놀랍게도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디지털 네이티브(디지털 원주민)’인 Z세대가 많았다. Z세대라면 그들이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몇 가지 단어들, 예를 들면 금일을 금요일로, 심심한 사과를 지루한 사과로 안다는 이유로 책을 읽지 않아 문해력에 문제가 있다고 늘 전체가 통으로 지적받아온 이들이다. 도서전에 참가한 외국 출판 관계자들도 한국 파트너들에게 젊은이들이 왜, 어떻게 이렇게 많냐고 물었다니 ‘글로벌 관점’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누군가는 ‘코리안 미스터리’라고 했을 정도다. 그렇다면 ‘책 안 읽는 Z 세대’라는 쉽게 씌운 프레임을 거둬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2030 세대는 지금 한국에서 가장 적극적인 문화 향유 세대다. 최근 1, 2년 사이에 미술 전시장은 2030들의 놀이터가 됐다. 영화 흥행 성공 여부는 이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느냐 여부에 달렸다. K-팝 공연부터 인기 드라마 팝업 매장은 물론 최근의 서울국제불교박람회까지 어김없이 참가자의 70∼80%가 2030들이다. 이들의 서울국제도서전 참가도 같은 맥락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태어나 네트워크로 연결된 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자신들에게 부족한 직접 경험에 목말라 있다. 또 흩어진 개인으로 정체성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취미나 관심사로 연결되기를 원한다. 도서전을 비롯해 페스티벌, 전시회, 팝업 매장은 그런 욕망을 충족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한류 붐에 K-콘텐츠가 풍성한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누군가, 무엇인가의 팬이 되어 즐기는 것이 익숙한 세대이기도 하다.

최근의 문해력 논란과 달리 이들은 책과도 가깝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발표한 2023년 국민 독서실태에 따르면 성인의 독서율(1년에 책을 1권 이상 읽은 비율)은 43.0%인데 20대는 74.5%로 가장 높다. 40대(47.9%)와 50대(36.9%)가 이들에게 왜 책을 안 읽느냐고 말하기 어렵다. 다만 이들은 ‘전자책’을 월등히 많이 읽고 있으며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2030 응답자의 10% 이상이 ‘북튜브(책 유튜브)’를 보는 것도 독서라고 생각했다.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책을 읽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텍스트 힙’은 요즘 Z세대의 트렌드이다. 독서와 기록 등 텍스트와 ‘힙하다’를 합한 ‘텍스트 힙’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멋있고 세련되게 느끼는 경향이다. 네트워크와 쇼트폼 시대 ‘책 읽기’ 자체가 귀해지면서 생긴 반작용으로 ‘책 읽는 사람이 섹시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들의 독서는 단순히 읽기가 아니라 SNS 세대답게 SNS에 읽은 책, 책에 대한 감상과 마음에 드는 구절을 공유하는 ‘읽기’와 ‘내보이기’로 완성된다. 사진 중심의 인스타그램에 텍스트가 더해진 인스타 매거진의 유행도 텍스트의 귀환을 보여준다.

책 읽기가 자기 과시를 위한 SNS 용이라는 비판, 책이 인테리어 장식이 됐다거나, 읽지 않고 소장용 굿즈로 산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지식의 축적으로 이어질 것이냐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다양한 플랫폼에서 정보가 쏟아지는 디지털 환경에서, 글 텍스트보다 영상이 자연스러운 이들은 책을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밈놀이로도 즐기며 새로운 방식으로 책을 읽는다.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사물의 소멸’(김영사)에서 디지털 시대, 인간은 ‘사물(事物)’의 시대에서 ‘반(反)사물’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책상이나 의자처럼 한자리에 머무는 사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흐르는 정보가 생활을 규정하는 시대에 책을 포함한 사물은 의미를 잃어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물과 함께 삶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만들어왔지만 놀람의 흥분을 먹고 사는 정보는 안정감을 줄 수 없기에 인간은 불안하고 공허해진다고 했다. 하지만 서울국제도서전을 꽉 채운 Z세대에서 보듯, 이들은 한병철의 우려스러운 예측에도 불구하고 자기들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디지털 반사물의 시대를 헤쳐나가고 있다.

최현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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