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역사문화 리포트] 26. 무거운 부담을 지고, 바람을 기다리다

최동열 2024. 7. 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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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독도 수토(搜討)의 거점 울진 대풍헌(待風軒) -경북 울진군 기성면 소재 -울릉도·독도 등 해양 영토 실질적 지배·관리의 역사 현장 조선시대에 울릉도·독도를 주기적으로 순찰, 관리하는 수토사 역할을 삼척영장과 울진의 월송만호가 맡은 것은 지리적 근접성을 고려할 때 당연한 선택이었다.

이와 관련, 이병휴 경북대 명예교수는 '울진 지역과 울릉도·독도와의 역사적 연관성'을 밝힌 논문에서 '군사는 거의 강원도 수군들이 차출되었고, 소요 물품 중 군기(軍器)와 화포는 삼척·울진·평해 등에 위치한 관소(官所)에 소장된 것에서 지급되었으며, 군량은 울진 지역의 창고에 비축된 곡식으로 충당케 하였다'며 '이처럼 (수토에 소요되는) 거의 모든 비용을 강원도에서 전적으로 부담했기 때문에 강원도에서는 울릉도에 백성을 옮겨 군·현을 두자는 주장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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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울진군 기성면 소재 대풍헌(待風軒)의 옛모습(심현용 울진군 학예연구사 제공)

■울릉도·독도 수토(搜討)의 거점 울진 대풍헌(待風軒)

-경북 울진군 기성면 소재

-울릉도·독도 등 해양 영토 실질적 지배·관리의 역사 현장

조선시대에 울릉도·독도를 주기적으로 순찰, 관리하는 수토사 역할을 삼척영장과 울진의 월송만호가 맡은 것은 지리적 근접성을 고려할 때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동해안 백성들이 지는 짐은 무거웠다. 울릉도와 독도 등 동해상 해양 강역 수토를 위해 수많은 군사와 포수 등이 차출되고, 그들이 항해 중에 장기간 먹을 식량과 타고 갈 군선(軍船) 등을 모두 동해안 해당지역에서 부담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이병휴 경북대 명예교수는 ‘울진 지역과 울릉도·독도와의 역사적 연관성’을 밝힌 논문에서 ‘군사는 거의 강원도 수군들이 차출되었고, 소요 물품 중 군기(軍器)와 화포는 삼척·울진·평해 등에 위치한 관소(官所)에 소장된 것에서 지급되었으며, 군량은 울진 지역의 창고에 비축된 곡식으로 충당케 하였다’며 ‘이처럼 (수토에 소요되는) 거의 모든 비용을 강원도에서 전적으로 부담했기 때문에 강원도에서는 울릉도에 백성을 옮겨 군·현을 두자는 주장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2∼3년마다 한번씩, 80∼150여명에 달하는 군사와 포수, 기타 인력을 이끌고 항해에 나선 수토관들의 여정은 항해에 적당한 바람을 기다리는 일정 등을 고려할 때 족히 한두 달은 걸렸을 것으로 추정되기에 식량 준비 등의 부담은 더 컸을 것으로 예상된다.

▲ 울진 대풍헌 소장 완문 표지

수토와 관련해 현재 경북 울진군에는 매우 중요한 처소가 존재한다.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 바닷가에 야산을 등지고 가옥 형태로 서 있는 대풍헌(待風軒·경상북도 기념물 제165호) 은 삼척·울진 등지의 관원들이 울릉도를 수토하기 위해 떠나면서 항해에 적당한 바람을 기다리던 곳이다. 울릉도에도 동해안과 마주보는 서면에 대풍대라는 이름을 가진 유사한 처소가 전해지고 있으니 먼 바다를 항해하는데 바람을 기다리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울진군지는 이에대해 ‘동해의 고도(孤島), 울릉도는 삼척첨사 또는 월송만호의 관할권 아래 놓여있어 매 3년마다 한번씩 수토를 위해 울릉도 항해가 이뤄지는데, 대풍헌이 수토 출발지로 되어 있어 며칠 동안 여기서 순풍을 기다리다가 파도가 없을 때 울릉도로 출발해 순풍을 만나면 2∼3일 뒤에 울릉도에 도착했다고 한다’고 역사적 사실을 전하고 있다. 대풍헌의 이같은 존재 가치를 고려해 울진군은 지난 2020년 ‘수토문화전시관’을 개관, 수토의 역사를 다시 일깨우고 있다.

▲ 대풍헌 소장 수토절목

■완문(完文)’·‘수토절목(搜討節目)’ 등 고문서 존재

울진군에 따르면 이 대풍헌에는 고문서인 ‘완문(完文)’과 ‘수토절목(搜討節目)’이 보관돼 있다. 경북대 이병휴 교수(울진 지역과 울릉도·독도와의 연관성)와 권삼문 박사(울진의 고문서), 심현용 울진군 학예연구사(울진 대풍헌 소장 자료 고찰) 등의 연구에 의하면 대풍헌의 완문에서는 삼척진영의 사또(삼척영장·수군첨절제사)와 월송만호가 3년에 한번씩 울릉도를 수토할 때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에서 출발해 그곳으로 돌아오는 행차와 관련된 내용을 볼 수 있다. 그들 일행은 순풍을 기다리기 위해 대풍헌에서 머물 수 밖에 없었는데, 이때 유숙하는 기간이 길어서 접대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따라서 관아에서는 일정 금액의 돈을 마련해 월송진의 해안에 인접한 9개 촌락에 나눠 준 뒤 거기서 생긴 이식(利殖)으로 충당 하도록 했다. 즉, 촌락의 크기와 세력이 각각 달라서 수토 비용 부담을 놓고 진정 등 민원이 발생하자 이를 막기 위해 관아(삼척부)에서 그 해결방안을 논의해 결정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또 수토절목은 완문에서 정한 각 마을의 비용이 많아서 지탱하기 어렵다고 해 각 마을의 대표들이 모여 의논한 결과를 적은 것은 것으로, 내용은 상선 뿐만 아니라 어선과 미역을 실은 배가 포구에 선적물을 하역할 때 전국의 해안에서 받는 수준의 세를 받자는 것이다. 결국 민폐를 없애고 울릉도 수토관의 경비도 원활히 마련할 수 있는 실행조건을 절목으로 만들어 놓은 것으로 풀이 된다

▲ 울릉군 서면 태하리 ‘황토구미’. 조선시대 수토관들이 울릉도를 순찰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떠간 붉은 황토가 있는 곳이다.

울릉도·독도를 순찰하기 위해 떠나는 수토관 일행의 제반 준비를 해당지역인 강원도 동해안에서 모두 부담하고, 순풍을 기다리는 수토사 일행들의 유숙 경비를 대풍헌 인근 주민들이 부담해야 했으니 백성들의 고충이 참으로 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순풍이 불지 않고, 날씨가 고르지 못해 수십명에 달하는 수토관 일행이 장기간 유숙을 하게 될 경우에는 인근 마을의 부담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그러한 고충을 감수하면서 2∼3년에 한번씩 조선의 수토관들이 울릉도·독도로 출발했으니 오늘날 동해상의 해상 강역은 목숨을 건 항해를 두려워하지 않은 수토관 일행과 백성들의 힘이 모두 합해져서 후손들에 전해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최동열 강릉본부장

*참고= 기사에 인용(참고)된 논문과 책, 인터뷰 직함은 논문 발표와 책 발간, 인터뷰 당시의 근무처와 직책을 준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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