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이 덥석 받은 ‘미군식 다영역 작전’…한반도 상황에 적합한 걸까

권혁철 기자 2024. 7. 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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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철의 안 보이는 안보
지난달 28일 제주 남방 공해상(동중국해)에서 열린 한·미·일 첫 다영역 훈련 ‘프리덤 에지’에 참가한 미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에서 발진하는 슈퍼호넷 모습. 미 해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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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바이든 대통령은 앞으로 한미동맹이 사이버, 우주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사이버, 우주 공간에 적용하기 위한 논의도 개시하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4월27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당시 국내에선 한-미간 확장억제 강화와 ‘워싱턴 선언’에 온통 관심이 쏠려 윤 대통령의 이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윤 대통령의 언급 이후 한-미동맹이 육상·해상·공중을 넘어 다영역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지난 6월27~29일 한반도 주변 제주 남방 공해에서 사상 첫 다영역 한·미·일 훈련인 ‘프리덤 에지’가 실시됐다. 다영역 훈련은 ‘다영역 작전’(Multi-Domain Operations) 개념을 반영한 훈련이다.

지난해 4월27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다영역 작전 개념을 수용할 뜻을 밝히고 있다. 대통령실 누리집 영상 갈무리

다영역 작전은 말뜻부터 알쏭달쏭하다.

‘다영역 작전’은 전장의 영역이 익히 알고 있는 지상·해상·공중에 더해 우주·사이버・전자기까지 확장됐다는 뜻이다. 작전의 범위도 분쟁이 발생한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지구적으로 확장된다.

다영역 작전은 미 육군의 개념이자 교리다. 미 육군은 2018년 다영역작전을 미래 육군의 작전개념으로 공식 발표했고, 2022년 기본 작전개념을 통합지상작전에서 다영역 작전으로 바꿨다.

프리덤 에지에서는 해상미사일 방어훈련, 대잠전훈련, 방공전훈련, 공중훈련, 수색 및 구조훈련, 해양차단훈련, 사이버방어훈련 등 모두 7개 훈련을 했다. 특히 사이버 방어훈련을 해서 이번 훈련이 첫 다영역 훈련이 됐다.

지난달 28일 제주 남방 공해상(동중국해)에서 열린 한·미·일 첫 다영역 훈련 ‘프리덤 에지’ 모습. 미 해군 제공

한·미·일은 다영역 훈련을 왜 하는 걸까.

합동참모본부(합참)는 “3국은 이번 훈련을 통해 상호운용성을 제고하고 고도화되는 북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억제 및 대응 능력을 향상시켰다”고 프리덤 에지 훈련 의미를 평가했다. 높아진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해 훈련했다는 것이다. 합참은 “한·미·일은 이번 훈련을 계기로 프리덤 에지 훈련을 계속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다영역 작전은 위협의 주체를 2+3(러시아·중국 + 이란·북한·극단주의세력)으로 설정했지만, 주로 2(러시아·중국)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작전적 수준에서는 중국의 ‘반접근 지역거부’(Anti-Access Area Denial) 전략 무력화가 핵심이다. 반접근 지역거부 전략의 핵심은 미 항모전단의 중국 접근을 거부하고(반접근) 설사 미 항모전단이 중국 근해에 접근하더라도 끈질긴 소모전을 통해 스스로 물러나게 한다는 데(지역거부) 있다.

미국의 접근을 막는 중국 반접근지역거부 전략 범위. 제1도련선에서 중국은 단거리대함미사일, 재래식 잠수함, 연안전투함, 지대함 순항미사일, 전투기 등의 활용으로 미군의 접근을 거부한다. 제2도련선에서는 중거리대함미사일, 재래식 및 핵공격잠수함, 폭격기 등의 활용으로 미 항모전단의 접근을 거부한다. 이성훈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아태지역에서 미중의 군사력 비교와 시사점’ 갈무리

첫 프리덤 에지 훈련 장소가 제주 남방 공해(동중국해)였다. 이 곳은 산둥성 칭다오가 모항인 중국 북해함대와 저장성 닝보가 모항인 중국 동해함대가 태평양으로 나오는 길목이다. 한·미·일 첫 다영역 훈련이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전략적 요충지에서 실시된 것이다. 한국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한다고 하지만, 미국 주도 다영역 작전에 참가하면 중국 압박·견제에 동참하는 부담도 져야 한다.

한국 안보의 위협은 북한이고 중국의 군사적 위협은 북한의 위협에서 파생되는 2차적이고 잠재적 위협이다. 한국군이 중국을 직접적 위협으로 설정한 미국 주도 다영역 작전 수행에 참여하는 것은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민감한 문제다.

미국은 다영역 작전을 동맹 차원 작전개념으로 넓히고 있다. 지난달 27일 합참은 보도자료를 통해 “프리덤 에지는 한·미·일이 3국간 상호운용성을 증진시켜 나가고 한반도를 포함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안정을 위해 자유를 수호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훈련”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프리덤 에지 훈련을 통해 북한의 위협 및 침략 억제를 위주로 하는 한-미연합 작전을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또한 미국이 상호운용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기존처럼 북한을 적으로 하는 훈련과는 다른 중국과 러시아를 적대국으로 가정한 훈련에 한국의 참여를 요구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왔다. 이번 프리덤 에지 훈련을 이런 요구의 시작으로 보는 주장도 있다.

다영역 작전을 설명한 자료. 미 육군 누리집 갈무리

미군이 유사시 한반도에서 다영역 작전을 수행할 것이기 때문에 2018년 이후 한국군도 다영역 작전을 분석·연구해왔다. 한국군의 다영역 작전과 미군의 다영역 작전은 큰 차이가 있다. 미군의 다영역 작전은 중국을 위협으로 설정하여 구체적인 작전수행방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한국군의 다영역 작전은 여러 영역의 역량을 동시 통합하는 전력 운용의 기본개념으로 다루고 있다. 미군은 확장된 공간과 다영역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능력 확보에 치중하지만 한국군은 한반도에서 공중 우세와 해상 우세 같은 전통적 전장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군 내부에서는 한국군이 한-미연합작전을 수행하려면 미군의 다영역 작전을 잘 알아야 하지만, 다영역 작전을 교리로 수용할지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과거 한국군이 공지전투(Air Land Battle) 교리 등 미군 교리를 그대로 도입했다 혼란을 겪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미군의 다영역 작전 개념을 자국의 관점에서 다시 정리하고 있다. 지난 2022년 3월 영국 전략사령부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영국 옥스퍼드에서 첫 다영역 작전 회의를 공동 개최했다. 영국 정부 누리집 갈무리

다영역 작전같은 생소한 개념은 성급한 적용에 앞서 한국군의 상황에 맞는지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했다. 한국이 처한 위협을 명확히 규정하고 위협에 대응하는 작전술 차원의 구상으로서 다영역 작전이 타당한지 따져봐야 했다. 이를 받아들일 경우에는 한국의 안보 환경과 능력에 맞는 다영역 작전 개념·교리를 따로 발전시켜야 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미군의 다영역 작전 개념을 자국의 관점에서 재해석해 새로운 용어·개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미군의 다영역 작전 개념을 덜컹 받아들였다. 이후 다영역 작전이 한-미동맹과 한국군 안에 불쑥 들어와 지난달 27~29일 첫 다영역 훈련인 프리덤 에지까지 마쳤다. 한국이 냉전 때 하던 ‘무작정 미군 따라하기’는 윤석열 정부가 내건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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