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난 민심 반영된 영국 총선…"노동당, 더 망치지만 마라"[통신One]

조아현 통신원 2024. 7. 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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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S 악화·브렉시트 실패 등 보수당 정권에 대한 실망감 표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를 다시 신뢰하게 만드는 것"
4일(현지시간) 오후 영국 런던대학교 세넷하우스 입구에 유권자들을 위한 투표소 장소 안내 표시와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2024.07.04/ ⓒ 뉴스1 조아현 통신원

(런던=뉴스1) 조아현 통신원 = 영국 총선이 치러진 4일(현지시간) 투표권을 행사하러 나온 영국인 대다수는 정권 교체는 물론 정치권에 대한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벌어진 잇따른 스캔들과 정부의 무능함에 분노와 실망감을 표하는 의견이 많았다.

이날 오후 런던대학교 세넷하우스(Senate House Library) 투표소에서 만난 70대 여성은 "정말 투표하기 싫었다"며 "그 어떤 정치인도 믿을 수 없다고 느껴졌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익명을 요구한 해당 여성은 "당을 지지하는 것에 대한 확신도 없고 신뢰도 생기지 않는다"며 "전쟁터에서 조국을 위해 싸운 나의 할아버지, 나의 아버지께 예우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투표하러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부터 쌓여온 정부의 부실한 대응과 잇따른 스캔들로 인해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비판했다.

이어 "내가 투표한 정당에 만족하지는 않지만 노동당에 투표했다"며 "생활비를 낮추고 국민보건서비스(NHS)를 되살리고 정직성을 되찾길 바란다"고 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오던 20대 후반 여성인 조는 노동당 집권을 지지하지만 지난 몇 달 동안 노동당이 보여준 모습이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아 녹색당에 한 표를 던지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했다.

그는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가자 전쟁에 대한 노동당의 대응이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조는 "특정 정책에 대한 투표라기보다 마치 브랜드를 고르는 것처럼 어떤 정당을 찍을 것인가에 대한 총선 투표라고 생각한다"며 "많은 이들이 노동당에 투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중도 성향을 띠는 노동당이) 오른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자유민주당이나 녹색당에 투표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차기 정권은 안정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스캔들로 얼룩지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차기 정부에 바라는 기준선은 상당히 낮다고 생각한다"며 "저기요, 그냥 더 망치지만 마세요. 더 악화시키지만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현재 영국 정치의 구조적 문제가 크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가 국민들을 다시 신뢰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는 “그동안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지만, 이제는 정말 지쳤다”면서 실망한 기색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이번에 법적으로 처음 선거권을 부여받아 생애 첫 투표를 하러 온 20대 초반의 여성도 노동당을 지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해당 여성은 "다른 정당의 매니페스토 공약을 다 훑어보지는 못했지만 이전부터 노동당에 투표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중도 성향을 띤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차기 정부가 생활비 부담과 높은 렌트비를 해결했으면 한다"며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부담을 덜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보수당을 지지하면 이런 바람이 더욱 멀어지리라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보수당에 표를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70대 남성은 자신을 부동층 유권자(floating voter)라고 규정하고 특별히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키어 스타머 대표가 있는 노동당에는 투표하지 않았다"며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지만 차기 정부에 누가 들어서든 간에 같은 문제를 겪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마약 관련 범죄와 청소년 범죄를 줄이고 주택 정책에 대한 똑똑한(intelligent) 접근이 필요하다"며 "런던 외곽에 공공 주택을 짓는 게 아니라 도심 안에 더 많은 집을 지어서 사람들의 렌트비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남성은 "용감하고, 급진적이고, 똑똑한 정치인이 필요하다"며 "물론 억압적이어서는 안 되겠지만 많은 정책에 지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고 이는 교육의 실패와도 이어진다"고 했다.

70대 여성인 힐러리 브룩스는 "1928년 여성들이 참정권을 위해 투쟁했던 것을 떠올리며 나도 투표했다"며 "정치를 깊이 있게 알지는 못하지만 방금 노동당에 투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총선 때는 녹색당에 투표했다"며 "노동당을 선택한 이유는 보수당이 오랫동안 집권해 왔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수당 정권은 NHS 재정 부족, 주택난, 브렉시트 실패 등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며 "노동당은 총선 승리와 차기 정부 집권이 예상되지만 이전 보수당 정권과 마찬가지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공공 서비스에 대한 지출을 늘려야 하지만 재정 확보가 힘들 것"이라며 "키어 스타머 대표가 중도 좌파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그보다 좌파 성향인 집단이나 노조 쪽에서 더 많은 공공 재원 마련을 원할 것이기 때문에 이로 인한 문제를 겪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또한 "보수당이 약해진 상태고 보수 지지 세력 안에서도 우익 표가 분열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동당에 투표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BBC방송과 ITV뉴스, 스카이뉴스 등 방송 3사 공동 출구조사에 따르면 노동당은 이번 총선에서 하원 650석 가운데 410석으로 압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영국 국립사회연구센터는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신뢰도가 상당히 낮아졌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가운데 무려 79%가 ‘현재의 영국 정부 시스템이 상당히 또는 매우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응답자 58%는 '어떤 정당 소속이든 정치인은 위기에 처했을 때 진실을 말할 것'이라는 질문에 '거의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tigeraugen.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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