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힙합 선구자에 영향을 준 ‘랩’이라는 보컬양식

선경철 2024. 7. 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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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서 일본 대중음악, 소위 제이팝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는 별다른 색안경 없이 제이팝을 흥미롭게 소비한다. 또한 일본 대중음악 중에서도 힙합의 약진은 인상적이다. 

힙합은 일본에서 분명 또다른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고, 한국힙합과 일본힙합의 교류 역시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준비했다. 일본힙합의 역사 2부작이다.

지금이야 이야기가 다를 수 있지만 과거의 일본은 무엇이든 한국보다 5년에서 10년, 혹은 그 이상으로 빨랐다. 대중음악 역시 그랬고 힙합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일본힙합에 대해 논하려면 어쩌면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수도 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그룹으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밴드 옐로우매직오케스트라의 ‘Rap Phenomena(ラップ現象)’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옐로우매직오케스트라가 힙합그룹이란 말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일본힙합의 역사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그들의 노래 ‘Rap Phenomena (ラップ現象)’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노래로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1981년에 이미 랩이라는 보컬양식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힙합의 주요 보컬양식인 랩에 대한 언급이 이미 1981년의 일본 대중음악에 등장했던 것이다.

사카모토 류이치(오른쪽)가 2018년 10월에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참석했다.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힙합의 선구자 중 한 명인 아프리카밤바타의 인터뷰 역시 빠뜨릴 수 없다. 그는 자신이 당시 옐로우매직오케스트라의 엘피를 구입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그들의 음악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이것은 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힙합의 초창기를 대표한 선구자가 동시대에 일본의 밴드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 이것은 일본음악이 힙합의 초창기에 실시간으로 영향을 주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옐로우매직오케스트라 뿐만이 아니다. 한국에 랩이 도입된 시기를 대략 1990년대 초중반으로 본다면, 일본에서는 이미 1980년대에 힙합과 관련한 여러 움직임이 있었다. 

디제이유타카는 아프리카밤바타가 창시한 힙합 단체 줄루네이션에 가입한 최초의 아시아인 멤버였고, 이토세이코가 1985년에 발표한 앨범 <업계군이야기(業界くん物語)>는 슬릭릭의 스토리텔링 기법에 영향을 받은 최초의 일본어 랩으로 평가 받는다.

또한 후지와라히로시와 타카기칸이 1987년에 결성한 그룹 타이니펑스와 그들의 레이블 메이저포스의 활동, 요요기 공원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비보잉의 물결과 크레이지A라는 인물의 존재, 최초의 힙합영화라고 불리는 1983년작 ‘와일드스타일’ 출연진의 일본투어 등도 일본힙합의 초창기를 들여다볼 때 빼놓을 수 없는 사실들이다. 

1980년대에 이미 미국힙합과 동시대에 교류하던 인상이라고 할까. 그리고 이것은 1980년대 당시의 일본의 지위를 말해주기도 한다.

1990년대에 들어서며 일본힙합은 본격적으로 씬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한국힙합이 홍대에 터를 잡고 씬을 조성하기 시작한 것이 2000년대 이후이니 10년 정도 빨랐던 셈이다. 

1980년대에 등장했던 이들이 일본힙합의 ‘조상님’이라면 1990년대의 시작과 함께 등장했던 이들이야말로 일본힙합 씬을 개척하고 기틀을 다진 ‘형님’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타이거JK, 엠씨메타 같은 존재라고 할까.

1990년대의 시작과 함께 등장했던 일본힙합 아티스트 중 가장 주목해야할 아티스트는 바로 지브라다. 

지브라는 실력과 스타성을 모두 갖춘 래퍼였고 일본힙합 최초의 ‘랩스타’였다. 그리고 이 말은 곧 그가 아시아 최초의 랩스타였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한다. 일본힙합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시작하고 발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브라는 힙합음악으로 일본 엔터 업계의 높은 위치까지 올라갔던 인물이다. 

아무로나미에와 합작을 하거나 프로젝트 팀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일본에서 힙합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예능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출연하는 등 선구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것은 지브라와의 대화를 통해 직접 들은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힙합의 성공 및 대중화와 별개로 지브라가 일본힙합에 기여한 또 다른 업적이 있다. 바로 일본어 라임의 체계를 정립했다는 점이다. 지브라는 솔로아티스트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킹기도라라는 3인조 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킹기도라의 1995년작 <하늘로부터의힘(空からの力)>은 일본어 라임의 체계를 정립했다고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 작품 이전의 일본어 랩과, 이 작품 이후의 일본어 랩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다음은 킹기도라의 또 다른 멤버인 래퍼 케이덥샤인의 말이다. 시부야에서 그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어의 어미에서 문장의 마지막에 ‘아-’라든지 ‘와-’라든지 길게 늘어뜨리는 것이 그 전까지는 주류였습니다. 그런데 그걸 단어로 대체하는 것에 주력했어요. 일본어 문법에서 말하는 ‘타이겐도메’라고 마지막 구를 체언으로 맺는 표현이 있는데, 뉴스 등에서 마지막에 ‘입니다’, ‘일 것 같다’로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명으로 끝내거나 단어로 끝내는 것 같은 표현법 말이죠. 그리고 일본어 문법 중에 도치법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런 것을 최대한 많이 사용해서, 단어로 라임을 만드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킹기도라의 1995년작 <하늘로부터의힘(空からの力)>은 버벌진트의 2001년작 <Modern Rhymes EP>와 비슷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일본어 랩을 정립했고 후자는 한국어 랩을 정립했으니 말이다. 이야기는 2부에서 이어진다.

◆ 김봉현 음악저널리스트/작가


힙합에 관해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케이팝 아이돌 연습생들에게 음악과 예술에 대해 가르치고 있고, 최근에는 제이팝 아티스트들과 교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의 시학>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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