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의 현장을 찾다…“반복되지 않아야”

유승용 2024. 7. 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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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광주] [앵커]

근현대사의 깊은 아픔 중 하나인 여순 10.19와 제주4.3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그 세월만큼 특히 청년 세대에겐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역사인데요.

전국에서 모인 30여 명의 대학생들이 두 사건의 현장을 찾아 희생자를 추모하고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유승용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여수시의 한 야산 중턱의 도로 갈림길.

여순사건 당시, 백 명 이상의 주민들이 암매장된 곳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지금은 표지판만 남아 있습니다.

민간인 학살의 아픈 역사를 마주한 대학생들은 여수와 순천에 이어 제주를 찾았습니다.

제주 4.3으로 시작해 여순 10.19를 거쳐 다시 제주로 이어진 국가폭력의 현장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진압군의 초토화 작전과 잔인한 보복으로 하루에만 3백 명 넘는 주민들의 희생된 북촌리 학살 현장.

희생된 갓난 아이를 제대로 묻어줄 수조차 없어 작은 돌무더기로 둘러쌓아야만 했던 이른바 '애기무덤'이 남아 있습니다.

[오승국/제주4·3평화투어 소장 : "20명, 30명씩 데려다가 총 팡팡팡 쏘는데 11시에 시작된 학살이 오후 4시까지야."]

이 사건을 알린 현기영 소설 '순이삼촌'의 문학비는 그날의 처참한 상황을 떠올리듯 여기저기 쓰러져 있습니다.

[이명하/전남대학교 사회학과 : "얼마나 허망하게 돌아가셨을지 그런 모습이 여기 있는 시비들을 통해서 잘 표현돼서 실감되게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이 장소가 가장..."]

4·3 당시 무장대의 근거지를 없앤다며 해안선 5km 이상 마을에 내려진 소개령으로 주민들이 떠나야만 했던, '잃어버린 마을'만 130여 곳에 이릅니다.

제주4·3사건 희생자만 3만여 명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제주에서 사는 10명 가운데 1명이 희생된 겁니다.

그만큼 희생자 위패들로 빼곡하게 채워진 위령제단 앞에선 고개가 저절로 숙여집니다.

순천에서 여수, 제주까지. 두 사건의 역사 현장 16곳을 찾은 학생들의 감회는 남다릅니다.

[정가은/삼육대학교 상담심리학과 : "일정이 처음에는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이런 생각 했는데. 막상 의미 있는 장소들 오기가 힘들잖아요. 다 같이 단체로 오면서 설명도 들을 기회가 있어서 더 좋았어요."]

"기억하고 널리 알리겠습니다."

여순10·19와 제주4·3을 연결하며 평화와 인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 이번 대학생 역사기행은 KBS순천방송국 특별기획으로 마련됐습니다.

KBS 뉴스 유승용입니다.

촬영기자:조민웅

유승용 기자 (hara1848@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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