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라는 말의 함정… ‘시스템의 허점’ 숨긴다[북리뷰]

신재우 기자 2024. 7. 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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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는 없다
제시 싱어 지음│김승진 옮김│위즈덤하우스
사고는 개인+환경 문제인데
인적 과실에만 책임 넘기거나
예측불가능한 상황 강조 경향
“예방할 수 없는 죽음이란 없어
재난 이면의 시스템 집중해야”
지난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서 발생한 역주행 교통사고 현장에 고인들을 추모하는 꽃들이 놓여 있다. 뉴시스

9명의 시민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전 23명의 노동자는 화재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최근 들어 연이어 ‘사고’라는 이름의 불행이 이어지고 있다. 왜 사고는 우리에게 흔한 일이 됐을까. 지난 한 세기 동안 벌어진 사고의 역사를 추적한 저널리스트 제시 싱어의 ‘사고는 없다’는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참사를 ‘사고’라는 단순한 표현으로 풀어낼 수 없다고 말한다. 교통사고부터 산업재해, 재난까지 다양한 비극의 현장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나며 예견되거나 예방될 수 없었던” 죽음은 없다.

저자는 일상에서 ‘사고’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고’는 오직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의 책에만 존재한다. 단순한 실수부터 셀 수 없는 인명 피해를 일으키는 사건까지 포괄하는 ‘사고’는 ‘위험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동시에 담고 있는 허술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를 예측할 수 없다는 개념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사고는 엄밀히 따지면 두 가지 요소로 구성돼 있다. 인적 과실(실수)과 위험한 조건(환경)이다. 이를테면 미끄러지는 것은 인적 과실에 해당한다. 그리고 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는 것은 위험한 조건이다. 제한 속도를 위반하는 것 또한 개인의 과실이다.

그러나 과속을 하기 좋게 설계된 도로는 위험한 조건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인적 과실과 조건의 인과관계는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와 같이 지난 200년간 이어진 논쟁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은 언제나 실수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조건, 즉 환경이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개선해야 할 환경을 우리는 ‘사회적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책에서 현대 사회에 사고사가 급증한 계기로 꼽히는 것은 자동차의 발명이다. 1908년 포드사가 미국의 자동차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모델T’를 출시한 해에 미국에서는 751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리고 불과 27년 뒤에 미국에서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는 50배가 증가한 3만7000명에 달했고 10만5000명이 영구적인 장애를 안고 살게 됐다. 당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지금은 생소한 ‘차량 살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1930년대는 자동차 산업의 전성기인 동시에 ‘차량 살인’의 전성기였던 셈이다.

수많은 사망자를 낸 자동차 사고가 이후에도 줄지 않은 이유는 ‘차량 살인’이라는 표현이 사라진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차량 살인’과 같이 차와 운전자에게 책임을 부여하는 단어가 사라진 한편 급부상한 단어가 있다. 바로 ‘무단횡단자’와 ‘운전석의 미치광이’다. 1920년대 이전에 모욕적인 표현으로 여겨졌던 무단횡단자라는 단어는 ‘자동차 로비 세력’(자동차 제조사, 운전 마니아, 석유 회사, 자동차 부품 회사)의 엄청난 캠페인을 바탕으로 보편화됐고 현재는 법률 용어로까지 등재됐다. 무단횡단이라는 개념이 널리 퍼진 뒤 자동차 제조사들은 난폭하거나 서툴게 차를 모는 ‘운전석의 미치광이’를 비난하는 방향으로 넘어갔다.

‘무단횡단자’와 ‘운전석의 미치광이’라는 인적 과실을 부각하는 용어 뒤에 숨은 것은 위험한 조건이다. 도로변에서 차량이 속력을 낼 수 없도록 구불구불한 차로를 만들거나 가로수를 세울 수도 있지만 도시의 효율성은 안전을 이겼다. 1920년대 미국의 신시내티주에서는 도시 내에서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없도록 하는 ‘속도제한장치’(자동차가 일정 속도 이상으로 가속되지 못하게 하는 장치) 설치를 의무화하고자 했지만, 이 역시 지금은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자동차 제조사들의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는 빠르고 강력한 자동차였다. 실제로 그렇게 빠르게 달릴 수 없음에도 자동차의 속도계 눈금에 시속 250㎞까지 표시하는 이유도 소비자들에게 속도와 힘만큼 강렬하게 차의 매력을 표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1955년에 포드는 ‘생명을 살리는 패키지’를 출시하기도 했다. 안전벨트 외에도 정면충돌 사고 시 운전자를 찌를 가능성이 적은 오목한 운전대, 완충재를 댄 계기판 등 사고를 대비할 수 있는 예방장치들은 있었다. 오늘날 긴급 브레이크, 사각지대 감지, 차선 인식과 같은 자율주행차의 자동화 기술이 모든 차에 도입될 경우 미국에서만 연간 1만7000명이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외향은 안전을 앞서고 안전장치에 드는 비용은 이익보다 낮은 것이 현실이다.

“시스템적으로 보면 예측 불가능하거나 예방 불가능한 것은 없다.” 교통사고 외에 책에 언급된 공장 화재, 약물 과용 사례 등을 관통하는 문장이다. 시속 40㎞ 이하로 달리는 차에 치여 사망할 확률은 10%다. 반면 시속 93㎞에선 90%의 보행자가 생존하지 못한다. 1920년대 부착하려고 했던 ‘속도제한장치’의 제한 속도는 시속 40㎞였다. 456쪽, 2만30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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