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특검, 방탄…‘몽골 기병’ 민주당 속도전에 ‘역풍’ 조짐
당 내부에서도 우려 점점 커져…“민심 제대로 파악했나” “중도층 이탈”
(시사저널=박나영 기자)
'몽골 기병'은 빠르고 강했다. 13세기 칭기즈칸이 몽골제국을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들은 목표를 한번 정하면 맹목적으로 달리는 '독종' 기마군단이었다. 몽골초원에서 시작해 극동 한반도부터 서유럽 오스트리아까지 내달린 이들이 아프리카 전체 크기와 맞먹는 3100만㎢ 제국을 건설하는 데 걸린 기간은 불과 25년. 알렉산더, 나폴레옹, 히틀러 셋이 차지했던 땅을 합한 것보다 넓은 영토였다. 10만 명에 불과했던 병력이 이 같은 신화를 창조해낼 수 있었던 것은 역사에 남을 미스터리다. 기병으로만 조직된 군단인 데다, 1인당 말을 3마리씩 몰고 다니며 갈아탔기에 '속도전'이 가능했다. 식량이나 장비도 각자 싣고 다녔기에 시간과 에너지를 오직 전투에만 쏟을 수 있었다.
이재명 "몽골 기병처럼 속도전 나서겠다"
"몽골 기병 같은 자세로 민생 입법, 개혁 입법 속도전에 나서겠다." 몽골 기병이 활약한 지 8세기가 지난 지금 서울 여의도에 몽골 기병과 같이 전투하듯 움직이라는 주문이 떨어졌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2대 국회 임기 첫날인 5월30일 의원총회에서 "국정이 더 이상 퇴행하고 비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국회가 가진 국정 감시·견제 권능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며 '속도전'을 요청했다. 이후 민주당 의원들은 각종 쟁점 법안과 안건을 밀어붙이며 숨 가쁘게 국회를 점령해 나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의 절차와 방식을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입법폭주' '역풍 우려' 등 비판과 탄식이 터져 나오고 있다. 협상과 타협이 없는 일방적 정치 행태에 전통적 지지층은 물론 중도 지지층마저 돌아서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채 해병 특검법' 국회 본회의 통과,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 추진, 검사 4명 탄핵소추안 법제사법위원회 회부까지. 22대 국회 개원 직후 야당으로서 사상 처음 국회의장·법사위원장·운영위원장을 독점한 민주당은 각 상임위를 단독 운영하며 '입법 속도전'에 나섰고 한 달여 만에 굵직한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 여야가 극한의 대치 상황을 이어가면서 TV 중계로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 다수 연출됐다.
원 구성이 완료된 후 법사위에서 여야가 처음으로 마주 앉은 6월25일, 회의 시작부터 의원들 간에 막말과 고성이 오갔다. 민주당 소속 정청래 위원장의 의사진행 방식에 항의하는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에게 정 위원장이 "국회법 공부 좀 하고 오세요"라고 말했고, 이에 유 의원이 "공부는 내가 더 잘했다"고 대응하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상황이 펼쳐졌다. 정 위원장은 앞서 6월21일 야당 단독으로 실시한 '채 해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에서도 증인들의 답변 태도를 문제 삼아 "반성하고 오라"며 '10분 퇴장' 명령을 반복하기도 했다.
7월1일 열린 운영위에서는 여야 의원 간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민주당 소속 박찬대 운영위원장이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에게 "입 닫으시라"고 말하면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강하게 항의했고 결국 정회됐다. 다음 날인 2일에는 국회 본회의에서 김병주 민주당 의원이 대정부 질문을 하던 중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정신 나간 여당'이라는 발언을 했고, 여야 간 고성과 삿대질이 오간 끝에 본회의가 파행되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들의 거친 언설과 절차 무시를 두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당내 주류는 여전히 "총선 승리에 따른 정치의 효능감을 느끼게 해준다"며 여당을 계속 강하게 몰아붙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강압적인 태도와 절차 무시가 자칫 국민에게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 출신 우원식 국회의장은 6월24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국회 상임위가 거칠다'는 패널의 지적에 "청문회 때 그런 모습이 보였다"고 수긍하면서 "민주당이 겸손한 태도로 국민 눈높이에 맞추지 않으면 국민에게 크게 질책받을 것"이라고 답했다. 친명계의 좌장으로 평가받는 정성호 의원도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민주주의에서는 소수를 존중해야 한다. 여당과 대화하고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를 탄핵하라"…'검사 탄핵'에 檢 집단 반발
하지만 22대 국회에서도 거야의 법안 단독 처리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복잡한 이탈표 계산이 판치는 재표결 정국이 반복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7월3일 '채 상병 특검법' 처리를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돌입했고, 민주당 등 야당은 4일 오후 이를 중단시키고 특검법 표결을 강행했다. 국민의힘은 곧장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무더기 탄핵안'에 대한 반발 여론도 크다. 민주당은 지난해 검사 3명을 탄핵소추한 데 이어 7월2일 검사 4명을 새롭게 탄핵 대상에 올리면서 검찰의 무분별한 수사·공소권 남용 견제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탄핵 명단에 오른 검사들이 이재명 전 대표 사건을 수사해온 검사들인 데다, 제시한 탄핵 사유들이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의혹 수준이어서 민주당이 정치적인 의도로 탄핵소추권을 남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탄핵소추 대상자는 이 전 대표의 대장동·백현동 특혜 개발 의혹과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의혹 사건의 수사 담당자 등 검사 4명이다. 탄핵소추안에는 이들이 야권을 겨냥한 수사를 했고 언론에 피의사실을 공표했다고 적시됐다. 구체적으로 강백신 수원지검 성남지청 차장검사는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 훼손 사건을 수사하면서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없는 명예훼손죄를 수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엄희준 부천지청장은 과거 한명숙 전 국무총리 재판 당시 제소자들에게 허위 진술을 강요한 의혹, 김영철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는 국정농단 사건 수사 때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에게 모해위증을 교사한 의혹, 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검사에 대해선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측이 주장한 이른바 '술판 회유 의혹'을 탄핵 사유로 들었다.
'무더기 검사 탄핵' 움직임에 검사 200여 명이 "입법부가 탄핵을 남용하고 있다"며 집단 반발에 나섰다. 가장 먼저 이원석 검찰총장이 탄핵소추안 발의 당일인 7월2일 대검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이라는 권력자를 수사하고 재판하는 검사를 탄핵해 형사처벌을 모면하려는 것"이라고 작심 비판하면서 검사 4명의 탄핵소추 사유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나를 탄핵하라"며 격앙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의 기자회견 내용을 정리한 검찰 내부망(이프로스) 게시글에는 이에 공감하는 검사 200여 명이 탄핵 대상 검사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댓글을 달았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이 전 대표의 대장동·백현동 의혹 수사를 총괄지휘했던 송경호 부산고검장은 '나를 탄핵하라!'는 게시글을 직접 올리기도 했다.
"압도적 의석 줬더니 폭주…불안해 대통령 자리 주겠나"
여권은 즉각 '방탄 탄핵'이라며 질타를 쏟아냈다. 대통령실은 "전대미문의 입법 폭력 쿠데타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도둑이 몽둥이를 든 격이다. 탄핵 중독이자 이재명의 대권 야욕을 위한 책동"이라며 탄핵소추안 철회를 촉구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페이스북을 통해 "세상 어느 나라에서 탄핵이 일상화되어 있냐"면서 "무차별 탄핵으로 누가 득을 볼까, 바로 이재명 한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안철수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감옥이 두려운 이 대표의 최후 발악이 시작된 것"이라며 "이제 어떠한 도전과 방해가 있더라도 이 대표에 대한 수사와 재판을 지켜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도 7월3일 검사 탄핵소추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에게 "당대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정부·여당도 맥을 못 추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민심'에 반하는 탄핵안 추진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다. 계파색이 옅은 한 민주당 의원은 시사저널에 "이재명 전 대표가 '너무 조급한 것이 아닌가' '과연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진행하는 걸까'라며 우려 섞인 눈으로 보고 있는 의원들도 상당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수사 검사 탄핵을 정말 옳은 일이라고 말하는 지지층은 많지 않다. 오히려 당황해한다"며 "특히 전통적 지지층은 (해당 사안과) 정청래 법사위원장의 모습을 보며 이게 '민주당'다운 모습이냐고 반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는 사이 민주당 지지율도 국민의힘에 역전당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7월1일 발표한 정당 지지도 조사(6월27~28일 성인 남녀 1004명 대상)에서 국민의힘 36.7%, 더불어민주당 34.1%로 집계됐다. 두 정당의 지지율 격차는 2.6%포인트다. 오차범위 내 격차지만, 같은 여론조사에서 5월 2주 차에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7.7%포인트 앞섰던 점을 감안하면 격차의 폭은 더 크게 느껴진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지난주 대비 0.5%포인트 오른 반면 민주당 지지율은 3.1%포인트 내렸다. 민주당 지지율 하락이 대전·세종·충청(6.6%포인트), 인천·경기(5.3%포인트), 부산·울산·경남(2.3%포인트) 등에서 비교적 큰 것으로 보아 중도층 이탈 움직임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한 정치권 인사는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한 후의 민주당 모습을 보고 실망한 국민이 불안해서 대통령 자리까지 주려 하겠냐"고 말했다.
13세기 고려는 몽골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몽골 사신들이 강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과도한 공납을 강요하면서 내부 반발이 일어났고 결국 두 나라 간에 기나긴 전쟁을 치르게 됐다. 그 피해는 온전히 고려 백성이 입었고, 몽골이 휩쓸고 간 자리를 복구하는 데 상당한 세월이 걸렸다. 지금 여의도에서 '몽골 기병'의 활약이 두려워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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