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월드컵 4강 신화 주역, 美서 택시 운전하게 된 이유

하칸 쉬쿠르가 2002 한일월드컵 한국과의 3-4위전에서 승리한 뒤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조선일보 DB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진출 신화를 이끈 튀르키예의 전설적인 공격수 하칸 쉬쿠르가 미국으로 망명해 택시 기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영국 데일리스타는 지난 1일(현지시각) ‘유럽의 축구 스타, 죽음과 추방 위협 끝에 미국으로 망명해 우버 운전기사로 전향’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튀르키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인 쉬쿠르가 더 이상 튀르키예에서 안전하게 살지 못해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며 이 같이 전했다.

갈라타사라이 UEFA(유럽축구연맹)컵 1999-2000시즌 우승컵을 들고 있는 하칸 쉬쿠르. /인스타그램

쉬쿠르는 인터 밀란, 갈라타사라이, 블랙번 등 다양한 클럽에서 활약한 유럽의 유명 축구선수였다. 튀르키예 대표팀 A매치에도 112경기에 나서 51골을 기록했다. 이는 튀르키예 역대 A매치 2위, 득점 1위 기록이다.

가장 대표적인 A매치 출전 경기는 단연 2002 한일월드컵이다. 쉬쿠르는 튀르키예의 깜짝 4강 진출을 이끈 주역으로, 한국과의 3-4위전에서 대회 역사상 최단 시간 선제골을 넣어 한국 축구 팬들에게도 익숙한 인물이다. 당시 튀르키예는 최종 3위를 기록했다.

쉬쿠르는 2008년 은퇴 후 정계에 진출했다. 2011년 에르도안 대통령의 집권 여당 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된 그는 2013년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결정했다. 이때부터 비극이 시작됐다. 당시 튀르키예에선 쉬쿠르가 훗날 군부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되는 에르도안의 정적,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과 손을 잡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쉬쿠르는 트위터에서 에르도안을 모욕한 혐의를 받아 기소됐다. 반정부 인사로 분류된 그는 정부에 모든 재산을 압류 당했다. 결국 2015년 가족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튀르키예 출신 축구스타 하칸 쉬쿠르. /인스타그램

현재 쉬쿠르는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데일리스타와의 인터뷰에서 “에르도안은 나에게 자유에 대한 권리, 말할 권리, 일할 권리 등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며 “수천만 달러 상당의 재산도 모두 몰수해갔다. 심지어 나의 아버지를 감옥에 집어 넣었다”고 말했다.

그는 “귈렌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나나 내 아버지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은 내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지적하지 못한다. 단지 내게 ‘반역자’, ‘테러리스트’라고만 말할 뿐이다”고 했다.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 했던 쉬쿠르는 잠시 작은 카페를 운영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수상한 사람들이 카페로 오기 시작해 경찰과 FBI의 보호를 받게 됐다. 다행히도 지금은 상황이 나아졌다”며 “지금은 우버 운전을 하면서 책을 팔고 있다”고 했다.

쉬쿠르 가족은 작년 4월 미국 영주권을 받았다. 그는 유튜브를 통해 축구 중계도 진행중이다. 독일에서 열리고 있는 2024 유럽축구선수권대회를 중계하면서 튀르키예를 향한 여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쉬쿠르는 “나는 정부의 적이자 국가와 민족의 적이지만 나는 조국을 사랑한다. 나는 잘못된 정치의 적이자 많은 범죄를 저질러 두려워하는 정치인들의 적일 뿐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