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아름다움’이라는 허상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2024. 7. 5.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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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들이 직접 선정한 이 주의 신간. 출판사 보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기자들이 꽂힌 한 문장.

비너스의 사라진 팔

비렌 스와미 지음, 유강은 옮김, 이데아 펴냄

“인간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우리는 순간적인 이끌림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동서고금 사람들은 무언가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를 설명해왔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아름다운 소리가 수학적 비율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각 현의 길이가 ‘황금비’에 수렴할수록 귀가 즐겁다는 것이다. 1990년대 초 ‘진화심리학자’들은 인류가 ‘최적의 허리-엉덩이 비율’에 끌리도록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매릴린 먼로, ‘밀로의 비너스’, 〈플레이보이〉 모델의 신체 치수를 근거로 들었다. 황금비 이론과 진화심리학 연구는 오늘날 부정확하고 비과학적이라고 여겨진다.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은 규명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정치·사회·문화에 따라 미의 기준도 바뀐다고 저자는 쓴다. 보편적 아름다움이란 허상을 좇은 역사와 그 좌절 과정을 써 내려간 책.

 

은랑전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황금가지 펴냄

“세계는 1000조 개의 태양이 내뿜는 빛으로 환히 빛난다.”

총기 난사로 희생된 딸을 기억하고자 그녀를 디지털로 복원해 온라인 조문 페이지를 띄운 부모에게 과격한 사이버 공격이 시작된다. 인터넷 트롤들은 급기야 딸의 시신을 가상의 영상으로 조작해 밈으로 만들면서 가족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온갖 보안 장치로 이를 막으려 하지만 조롱이 끊이지 않으면서 결국 가족은 해체되고 만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SF 환상문학 작가 켄 리우의 단편집 〈은랑전〉에 수록된 ‘추모와 기도’의 내용이다. 이 밖에도 당나라 시대의 전기소설 ‘섭은낭전’을 모티브로 한 ‘은랑전’, 가상현실을 통한 전쟁 난민 체험의 상품화와 플랫폼의 권력화를 다룬 ‘비잔티움 엠퍼시움’,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를 저자만의 세계관으로 새롭게 해석한 ‘회색 토끼, 진홍 암말, 칠흑 표범’ 등 켄 리우의 단편소설 13편을 수록했다.

 

나의 경험, 나의 시도

최정호 지음, 안상수 엮음, 안그라픽스 펴냄

“아직도 나는 후배들이 해결해주었으면 하는 글자가 몇 개 있다.”

‘최정호체’라는 글꼴이 있다. 만든 사람의 이름을 따 지은 글꼴명은 후대가 그에게 보내는 ‘헌사’의 또 다른 형태일 것이다. 최정호는 대한민국 1세대 한글 디자이너다. 일본 화장품 광고에 쓰인 일어 서체를 보고 ‘세련된 한글’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한 그는 해방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한글 디자인에 뛰어들었다. 세로쓰기로 발달해 오른쪽으로 치우친 한글 낱자의 무게중심을 가운데로 맞추기 위해 획 하나하나를 들여 쓰고 깎아내며 ‘해체’에 가까운 과정을 거쳤다. 7년 만에 세상에 나온 최정호의 ‘명조체’와 ‘고딕체’는 지금도 한글 글꼴의 원형이자 바탕으로 쓰인다. 담담한 문체로 쓴 작업 노트에 다 담기 어려운,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시작이라는 큰 유산을 남긴 이의 기록이다.

 

이상한 동물원의 행복한 수의사

변재원 지음, 김영사 펴냄

“단번에 좋아질 수는 없겠지만 느린 속도라도 빠진 밑을 메울 수 있다.”

국내 첫 거점동물원이기도 한 청주동물원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동물들이 살고 있다. 갈비뼈가 다 드러날 정도로 깡말라 ‘갈비 사자’로 불렸던 바람이도 이곳에 와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 뒤에는 수의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인 변재원 수의사가 그동안 보고 느낀 점들을 짧은 챕터로 구성해 묶었다. 특히 요즘 종종 ‘속보’로 뜨는 동물 탈출 사건에 대해 변 수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동물의 탈출은 전적으로 사람의 잘못이므로, 동물의 죽음이 아닌 그들을 가둔 사람이 책임질 수 있는 시스템이 모든 동물원에 마련되면 좋겠다.” 아이를 데리고 동물원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중인 부모라면, 먼저 함께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안온북스 펴냄

“나는 무영을 믿지 않았다. 분위기를 믿었다.”

최진영 작가가 2020년부터 2023년 사이에 쓰거나 발표한 여덟 편의 작품이 실린 소설집. 그중 가장 처음에 쓴 ‘유진’을 완성하며 작가는 자신의 20대와 30대를 소설 어딘가에 숨겨두었다. 갓 대학에 입학한 스무 살, 학교보다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베네치아 레스토랑을 더 편하게 느끼는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읽는 독자의 20대도 자연스레 소환된다. 평소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니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일을 소설에 담아보자’고 생각한다는 작가는 이번에도 전쟁, 기후위기, AI, 질병권 등 다양한 키워드로 멀리멀리 나아간다. 그러면서도 다 읽고 나면 자연스레 현실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게 그의 소설이 가진 미덕이다.

 

엄마 아닌 여자들

페기 오도널 헤핑턴 지음, 이나경 옮김, 북다 펴냄

“여성이 자녀를 가진 세월만큼 오랫동안 여성이 자녀를 갖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역사적 증거가 있다.”

어머니가 아닌 여성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저자는 ‘자녀 없이 사는 삶’에 적당한 용어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것이 역사 속에 늘 존재했던 삶의 양식 중 하나임을 밝혀낸다. 얼마나 많은 여성이 어머니가 아니면서 동시에 공동체 안에서 어머니의 역할을 해왔는지(mothering) 살펴보며 지속 가능한 양육에 필요한 조건들을 검토한다. 출산과 양육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많은 일들은 여성의 ‘선택’ 문제로 취급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문제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그러니 저출생·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라고 여성에게 물을 게 아니라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를 국가가 답해야 한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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