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겨냥한 북·러의 동반 질주

남문희 편집위원 2024. 7. 5.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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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9일 평양에서 북·러 정상회담이 열렸다. 푸틴과 김정은은 양국 관계를 혈맹에 준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만큼 러시아의 상황이 급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6월19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AFP PHOTO

6월19일 평양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은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전에 양국 외교 당국자들이 협의한 주요 내용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의 〈노동신문〉에 기고하는 형식으로 만천하에 공개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6월19일 밝힌 바에 따르면 북·러 간의 새로운 조약 체결은 “지난해 9월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발사장에서 진행된 푸틴 동지와의 상봉에서 새 국가 간 조약 문제를 토의한 후” 본격화됐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친절한 해설가’가 등장해 협의 과정을 생동감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세계의 그 어떤 정상회담보다 독자의 니즈(Needs)에 충실한 친절하고 투명한 정상회담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6월18일자 북한 〈노동신문〉에 ‘러시아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연대를 이어가는 친선과 협조의 전통’이라는 자신 명의의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그는 북측과 체결할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의 주요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러시아와 북한이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호상(상호) 결제 체계를 발전시키고 일방적인 비합법적 제한조치들을 공동으로 반대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주요 내용 외에 △유라시아에서 평등하고 불가분리적인 안전구조 건설 △인도주의적인 협조 발전 △북·러 고등교육기관 간 과학 활동 활성화 △상호 관광 여행·문화 및 교육·청년·체육 교류 활성화 등의 내용도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6월19일의 북·러 정상회담에서는 좀 더 진전된 얘기들이 나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평양 금수산 영빈관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 언론 발표에서 “우리 두 나라 사이 관계는 동맹관계라는 새로운 높은 수준에 올라섰다”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처럼 동맹관계라는 표현은 안 썼지만 “오늘 서명한 포괄적 동반자 협정은 무엇보다도 협정 당사자 중 한쪽이 침략당할 경우 상호 지원을 제공한다”라고 말해 동맹에 준하는 상호 방위 지원이 포함됐다는 점을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새 협정을 토대로 러시아와 북한이 군사기술을 포함한 군사 분야에서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 정상이 양국 관계를 6·25 전쟁 직후의 혈맹에 준하는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다는 강한 의사를 밝힌 것이다.

외교 용어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은 군사 분야를 포함해 다양한 분야(포괄적)에서, 장기적이고 큰 틀의 협력(전략적)을, 상호 대등한 위치에서 우호적으로 한다(동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양측이 체결한 협정의 주요 내용이 초기에 어떤 맥락에서 등장했고 그 후 어떤 진화 발전 단계를 거쳤는지 알 수 있다면 이 협정이 구체적으로 뭘 지향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북·러 협상 최대 논점이자 문턱

그런 점에서 러시아 측 친절한 해설가의 설명이 아주 유용했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중국·현대아시아연구소의 콘스탄틴 아소몰로프 한국학센터 선임연구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푸틴의 방북으로 인해 북·러 관계에서 예상되는 변화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매우 중요한 정보를 연구기관 및 언론에 흘렸다. 첫 번째는 4월23일(현지 시각) 러시아 싱크탱크 국제문제위원회(RIAC)에 기고한 ‘러시아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관계의 현황과 전망’이란 글이다. 이 글에서 그는 “푸틴 대통령의 방북은 북·러 관계 강화에 매우 중요한 조치로 인식될 수 있다”라며 “러시아의 대북 정책이 더욱 크게 수정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짚었다.

‘가장 급진적으로는 군사 또는 군사기술 협력을 합법화하고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서 탈퇴하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는 다소 의외의 논점을 제기한 뒤 “러시아는 대북 제재 탈퇴의 위험을 진지하게 평가하고 있다. 많은 영역에서 북한과 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결의안을 위반한다면 새로운 압박의 명분이 될 것이 분명하다”라고 지적한 점이 이 글의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대북 제재 탈퇴를 거론하고는 러시아의 입장에서 그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가 자문자답한 것이다.

상황에 따른 양자 관계 발전 로드맵으로 그가 제시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단계는 기존 협력 분야를 추가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유엔 안보리 제재를 위반하지 않는 경제협력, 교통·통신 인프라 개발, 인공위성 등 기술 협력, 관광, 스포츠·문화·의료 협력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다음 단계는 제재 위반 사안을 비밀리에 협력하는 것으로, 러시아가 학생으로 위장한 북한 노동자를 받거나 북한에 대한 에너지 자원 공급을 늘리는 것 등이다. 이런 꼼수까지 스스럼없이 밝힌 것이다. 더 강력한 다음 단계는 러시아가 군사기술을 포함해 북한과 전면적으로 협력하기 위해 제재 준수를 공개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특히 군사기술 협력과 관련해 그는 러시아가 북한에 유용한 어떤 것을 이전하기 시작할 것이며 이는 군사 장비보다는 기술 요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런 여러 발전 로드맵 중 이 글의 기고 시점인 4월23일 당시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모든 제한이 해제되는 최종 수준의 협력은 위험도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극도로 필요한 경우에만 허용될 것.”

우선 궁금한 것부터 풀고 가자.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왜 갑자기 러시아의 대북 제재 이탈이라는 상황이 주요 논점으로 제기됐을까. 북한이 협상 과정에서 그것을 집요하게 요구했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즉 국제사회 대북 제재로부터의 이탈이 북·러 협상 초기의 최대 논점이자 문턱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2017년 유엔 안보리 제재 이후 북한의 대외무역은 한마디로 박살 났다. 그 뒤 대북 제재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북한에게는 포한(抱恨)이 됐다. 그동안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끊임없이 대북 제재를 넘어서는 지원을 요구했다가 좌절하곤 했다. 가까운 예로 지난해 4~5월 왕야쥔 중국 주북한 대사의 부임 이후 진행된 북한 노동자 송환 협상을 들 수 있다. 2017년 채택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2375호는 회원국들이 북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게 했고, 이어 채택된 2397호는 해외 북한 노동자들을 2019년 12월22일까지 모두 송환하도록 되어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2020년부터 코로나19가 밀어닥쳐 미처 송환하지 못한 약 10만명에 이르는 중국 체류 노동자 문제가 쟁점이다. 중국으로서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셈이라 코로나19 해제 후 북한으로 돌려보내고자 하지만 북한은 그 빈자리를 메울 대체 파견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교역의 정상화까지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북·중 협상이 결렬된 후 북한이 북·일 수교 카드를 동원해 압박하자 중국은 북·러 관계 밀착까지 고려해 지난해 연말께 평양종합병원 진단 설비를 비공식으로 지원하며 ‘퉁치려’ 했다. 그러나 북한은 ‘북·중 우호의 해’로 명명된 2024년에 지난해 마무리짓지 못한 협상을 계속 이어가길 원했다. 지난 4월13일 김정은 위원장과 면담한 자오러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은 ‘러시아와의 밀착을 완화하면 지원할 용의가 있다’며 조건을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지난 3월28일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안에 거부권을 행사해 이를 부결시킨 배경에도 북한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더 나아가 대북 제재에서 탈퇴까지 하게 되면 러시아로서도 ‘위험도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극도로 필요한 경우에만 허용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딱 한 달 반 만에 그 상황이 닥쳤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러시아가 ‘큰 위험을 감수할 만큼 극도로 필요한 경우’에 봉착한 것이다. 6월11일(현지 시각) 러시아 극동지역 매체 〈프리마메디아〉와의 인터뷰에서 아소몰로프 연구원이 밝힌 내용은 4월23일 기고문에서 상정한 북·러 관계의 수위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푸틴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서 1961년 옛 소련과 북한이 체결한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조·소 우호조약)’의 정신을 계승하는 협정이 체결될 수 있다고 함으로써 6월19일 체결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의 내용을 꿰뚫었다. 그런데 이 얘기는 지난 4월23일 기고문에서는 거론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소몰로프 연구원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에 대해 “결의 내용을 거스르는 방안을 논의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라면서 “러시아가 어떤 식으로든 제재 일부를 거부하기로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어느 수준으로’ 거부하느냐가 문제이고 이는 북·러 정상회담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예상했다.

50여 일 만에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의 국제적 평판 훼손을 감수하고라도 대북 제재로부터의 이탈이라는 북한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극도로 필요한 경우’에 봉착한 것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의 안전까지 보장해줘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된 것이 바로 푸틴 방북을 계기로 북·러가 체결할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인 셈이다.

푸틴에게 커진 북한의 전략적 가치

극도로 필요한 경우란 어떤 것인가. 바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영향을 미칠 미국 내 상황 변화다. 4월 이전까지만 해도 푸틴 대통령은 미국 내 상황에 대해 낙관했던 것 같다. 미국 하원에 계류 중인 우크라이나 지원법은 공화당 강경파의 반대로 붙잡혀 있었고, 무엇보다 푸틴에게 우호적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도 높았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5월30일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자신의 재판을 방청하고 있다.ⓒEPA

금년 초만 해도 “(둘 중에) 누가 우리(러시아)에게 더 좋으냐”라는 자국 언론(2월14일(현지 시각) 국영방송 로시야1의 질문에 “바이든”이라고 답할 만큼 여유도 있었다. “(내 선택은) 바이든이다. 그가 더 경험이 있고 더 예측 가능한 인물이며 구식 정치인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농담이다. 푸틴 입장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철회해 현재 상태에서 러시아와 평화협정을 체결하도록 하겠다는 트럼프 후보를 마다하고, 유럽과 손잡고 끝까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겠다는 바이든이 더 나을 리가 없다.

이때까지만 해도 러시아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국제사회로부터 책잡히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5월27일 밤 북한이 쏘아올린 정찰위성 폭발 사고다. 북한이 익숙하게 사용하던 군사용 백두산 엔진+‘비대칭 디메틸 하이드라진(UDMH)+적연질산’ 조합을 다루기 까다로운 ‘석유발동기(케로신)+액체산소’ 조합으로 대체하다 사고가 난 것인데, 그 이유는 단 하나, 후자가 국제사회가 주로 우주발사체에 사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위성 발사를 돕되 국제사회 비난을 피하기 위한 러시아의 고육지책에 따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상황이 급박해졌다. 국제사회 시선을 의식해 북한과 거리를 둬가며 관계를 조절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그럴수록 푸틴에게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커졌다. 4월20일(현지 시각) 미국 하원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608억 달러(약 84조원) 규모의 안보 예산 지원 법안이 통과됐다. 백악관은 가자 전쟁 발발 직후인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타이완에 대한 지원안 등을 묶어 1050억 달러 규모 추경예산을 의회에 요청했다. 하지만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이 우크라이나 지원 불허 방침을 세운 뒤, 이스라엘만 지원하는 별도 법안을 추진하면서 반년 넘게 전체 법안 처리가 묶여버렸다. 결국 마이크 존슨(공화당) 하원 의장이 하나로 묶여 있던 법안들을 각각 분리 처리하자는 방침을 내놓으면서 실타래가 풀렸다.

설상가상으로 5월30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성관계 입막음 돈 관련 형사재판에서 34개 혐의 모두에 유죄 판결이 나왔다.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의 배심원단 12명은 만장일치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회계부정 혐의에 유죄를 선고했다. 그동안 미국 정보 관계자들은 이번 미국 대선의 최대 관전 포인트로 트럼프 형사재판 유죄 판결 여부를 들었는데 최악의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실제로 1주일 만에 바이든과의 지지율 격차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미국 정치 상황에 여유를 부리던 푸틴 대통령도 트럼프 유죄 평결에는 초조감을 드러냈다. 6월5일(현지 시각) 외신기자들과의 TV 간담회에서 트럼프의 유죄 평결과 관련해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며, 유죄 평결이 “미국이 민주주의 체제의 지도 국가라는 관념을 완전히 불태웠다”라고 비난했다.

푸틴의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5월16~17일의 중국 방문은 겉만 화려했지 별 소득이 없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11월15일 샌프란시스코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2022년 8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의 타이완 방문 이래 소원했던 바이든 정부와의 관계를 회복했다. 그 이후 미국은 북한과 러시아를 억제하는 창구로 중국을 활용하고자 했다. 4월26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왕이 외교부장을 만나 중국이 (군사용으로도 쓰일 수 있는) 이중 용도 제품을 러시아에 수출하는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제기했다. 중국이 이런 우려를 해소하지 않으면 미국이 직접 나설 것임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이 즐겨 사용하던 말투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에 나오도록 압박할 것을 독려했다.

시진핑 주석은 유럽으로부터도 압박을 받았다. 5월6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마찬가지로 이중 용도 기술의 러시아 판매 금지를 요구받고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파리 올림픽 기간에 휴전을 할 수 있도록 푸틴 대통령을 설득해달라는 숙제를 받아든 상태다. 중국의 석유 가스 구매로 전쟁 비용을 충당하는 을의 처지가 된 푸틴으로서는 이래저래 좋은 기분이 아니었을 터이다.

무엇보다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미국 대선에 견해 차이가 극명하다. 서로 지지하는 후보가 확연히 다른 것이다. ‘한국은 부유한 나라’라며 미국이 왜 지켜줘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트럼프의 어수선한 인터뷰로 4월30일자 〈타임〉 보도가 화제가 됐다. 그러자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엘브리지 콜비 전 미국 국방부 전략군개발 부차관보가 덩달아 떴다. 그의 인터뷰가 언론사별로 실렸다. 그의 주장은 매우 심플하다. 미국이 과거처럼 두 개의 전쟁을 책임질 수 없으니 우크라이나는 유럽이 맡고, 북한은 한국이 맡으라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오스트레일리아와 함께 타이완 방어에 치중하겠다는 것이다. 시진핑으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며, 푸틴으로서는 희망가를 부를 만한 얘기다. 당장의 미국 대선에 정반대 이해관계를 가진 두 사람이 만나 무엇을 할 수 있겠나.

6월13일 이탈리아 보르고 에냐치아에서 독일·캐나다·프랑스·이탈리아·미국·일본·영국 등이 참석한 G7 정상회담이 열렸다. ⓒAFP PHOTO

6월14일 저녁(현지 시각) 이탈리아 풀리아에서 열린 G7 정상회의도 푸틴에게 악재다. G7 정상들은 공동성명에서 ‘우크라이나의 자유와 재건을 위한 투쟁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며 연대하겠다’고 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동결된 러시아 국유 자산의 특별수입을 활용해 약 500억 달러(약 68조5000억원)를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또 러시아가 불법적 침략전쟁을 끝내고 우크라이나에 끼친 4860억 달러(약 675조원)에 달하는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며, 러시아가 이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모든 합법적 방법을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황은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의 갑작스러운 이스라엘 공격으로 확연히 러시아 우위로 돌아섰다. 언론의 관심이 이스라엘로 쏠리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서서히 잊혔다. 관심에서 사라지면 자원 배분에서도 문제가 생긴다. 155㎜ 포탄, 스마트 폭탄, 스팅어 미사일 등 과거 같으면 우크라이나로 향했을 미국 무기의 일부가 이스라엘로 갔다. 무엇보다 미국의 관심이 우크라이나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분산되자 푸틴 대통령의 얼굴에 미소가 넘쳐났다. 그러나 G7 정상회의 후 다시 미국과 유럽의 최신 무기들이 우크라이나에 답지하면서 푸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으로 인한 미국의 관심 전환은 푸틴 대통령에게 분명 ‘성공 사례’였다. 이런 조건에서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쳐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는 바이든을 끌어내리고 자신과 ‘브로맨스’를 자랑하는 트럼프를 끌어올릴 카드가 결합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지구상에서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치고 싶은 누군가에게 ‘고객 만족’의 성공 체험을 가져다줄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바로 북한이다.

5월16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공동 기자회견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EPA

“동북아에서 핵전쟁이 발생할 수 있다”

트럼프와 바이든이 맞붙었던 2020년 미국 대선 때 북한은 느닷없이 개성의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괴랄한’ 폭거를 저질렀다. 5월31일 국내 탈북 단체들이 북측에 보낸 대북 전단에 자신들의 ‘최고 존엄’을 모욕하는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하수다. 그 사건으로 누가 이익을 봤는지 생각하면 전체 그림이 보인다. 당장 5월28일 중국 전인대에서 통과된 홍콩보안법이 이슈의 중심에서 사라졌다. 중국이 최대 수혜자다.

북한이 지난 미국 대선 직전인 2020년 10월쯤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발사라는 2차 도발로 당시 현직이던 트럼프 대통령을 궁지에 몰까 봐 트럼프 진영이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중국은 미국에 손을 내밀어 추가소득까지 챙겼다. 양제츠 중국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이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만나자고 전화를 걸자 다급해진 폼페이오가 연락사무소 폭파 바로 다음 날인 6월17일 하와이까지 날아왔다. 결과적으로 중국이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아주는 대신 폼페이오가 주도하던 중국공산당에 대한 공격이 중단됐다. 북한의 폭거를 딛고 중국이 엄청난 외교적 과실을 획득했고 그 보답으로 북한에 경제적 보상을 해주는 거래가 성사된 것이다.

거래의 관점에서 보자면 북한은 이미 2024년 미국 대선을 겨냥해 큰 판을 준비했다. 지난해 12월26일부터 12월30일까지 닷새간 평양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 두 교전국 관계”로 고착되었다고 규정했다. 그러니, 언제든 사고 칠 수 있다는 얘기다. 올해 1월15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는 “우리 국가의 남쪽 국경선이 명백히 그어진 이상 불법 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령토, 령공, 령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 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했다. 즉 ‘해상국경선’을 둘러싸고 사고를 치겠다는 얘기다. 지난 2월14일 김정은 위원장이 신형 대함미사일 검수 사격 시험을 지도하는 자리에서 “적들이 구축함과 호위함, 쾌속정을 비롯한 전투함선들을 자주 침범시키는 연평도와 백령도 북쪽 국경선 수역에서의 군사적 대비 태세를 강화할 데 대한 중요 지시를 내렸다”라고 한다. ‘연평도와 백령도 북쪽 국경선 수역’이라면 2007년에 기존 북방한계선(NLL)을 부정하면서 그 수 ㎞ 남방으로 설정한 ‘서해경비계선’을 일컫는 말일 테다(아래 〈그림〉 참조). 즉 사고 지점은 바로 여기라고 친절하게 좌표까지 찍어준 것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서해경비계선 ⓒ연합뉴스 그래픽

굳이 동족 관계를 부정하면서 ‘동족의 머리 위로 핵을 떨굴 수는 없다’던 기존 핵 교리를 폐기하고 전술핵을 협박 수단으로 꺼내들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 올해 8월 한·미 군사훈련에서 최초로 북한의 핵 공격을 전제로 한 한·미 양국의 핵 반격 훈련이 예정돼 있어 서로 상승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올해 1월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북핵 특사(조지타운 대학 외교학 석좌교수)는 〈내셔널 인터레스트(NI)〉에 보낸 기고문에서 “올해 동북아시아에서 핵전쟁이 발생할 수 있다”라며 경고하기도 했다. 적어도 2020년 개성 연락사무소 폭파에 비해 판이 훨씬 커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북한이 러시아와 체결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에서 상호 안전 보장에 대한 약속을 추가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을 터이다. 유사시 러시아의 안전보장 지원이 필요할 만큼 사고를 칠 수도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미국도 이런 흐름을 알고 있다.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5월16일자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김정은이 다양한 도발을 통해 “조 바이든 대통령을 곤란하게 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복귀를 촉진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은 사이버 공격, 고체(연료)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테스트 등과 같이 비살상적인 최소한의 도발을 할 수 있으며 소형 전술 핵무기를 (실험으로) 폭발시킬 수도 있다. 북한은 (나아가) 무력시위를 넘어 제한적이지만 군사적인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라고 내다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역사를 보면 북한은 실제 제재가 효과적일 때 더 협상 의사를 보였고 그렇지 않을 때 고립, (핵무기) 확산, 도발에 더 기우는 경향을 보였다”라면서 “지금은 제재를 완화할 때가 아니라 강화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의 해법은 지나치게 원론적이다. 지금보다 더 제재를 강화할 수단이 남아 있기는 한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바이든 팀이 선택한 해법은 이와는 정반대다. 다시 한번 북한을 설득해보기로 한 것 같다. 다만 미국은 그 루트가 없으므로 일본 기시다 총리의 대북 접촉에 또다시 기대를 걸고 있다. 북한이 판을 준비할 때는 북한의 행위를 고무하는 쪽도 ‘고객’이지만 그것을 만류하는 쪽도 ‘고객’이다. 2020년에는 중국도 고객이었지만 당시 도쿄 올림픽을 준비 중이던 일본 아베 총리도 잠재 고객이었다. 이번에는 푸틴이 큰 고객이지만 미국의 후원을 업은 기시다 총리 역시 고객이다.

북한은 중국과 헤어질 결심?

그동안은 북한이 ‘일본 카드’를 중국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소비한 경향이 있다. 지난 3월26일 평양에서 열리기로 했던 북중미 월드컵 북·일 평가전을 느닷없이 취소하고 김여정이 기시다 총리 방북 의향을 멋대로 흘렸다가 다음 날에는 다시 만날 일 없다며 혼자서 널을 뛴 것은, 같은 시기 사실은 베이징에서 중국과 일본을 동시 상대하며 협상을 전개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나름 여론전을 펼친 것이다. 당시 김성남 당 국제부장이 왕후닝, 차이치, 왕이 등 중국 측 최고위급 인물들을 만나는 모습을 과시하며 일본의 실질적 지원을 끌어내려 부심했으나 실패해 일본 카드를 접은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13일 중국공산당 서열 3위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만났다.ⓒ평양 조선중앙통신

대신 언제나 그렇듯 말로는 뭐든지 해줄 것처럼 구는 중국을 다시 한번 믿어보기로 한 것인데, 자오러지가 가져온 중국의 지원 조건이라는 것이 북·러 밀착의 완화를 요구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그러자 중국이 4월 말부터 갑자기 북·중 양국 간 밀수를 단속한다며 겁박을 해오고 있다. 시렁 위에 잠시 올려놨던 일본 카드를 다시 꺼내들 때가 된 것이다. 최근 국내 언론에 보도된, 5월 말 몽골에서 있었다는 북·일 비밀 접촉에 대한 맥락적 이해다.

이번에는 북한이 중국의 뺨을 좀 세게 때리려는 것 같다. 중국이 보기에 북한이 중국과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시다의 손에 뭔가 쥐여줄 듯한 제스처가 나올 수도 있다. 일본이 무엇을 반대급부로 내놓느냐에 따라서 오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기시다 총리에게 선거에서 써먹을 선물을 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미국 대선을 겨냥한 북한의 모종의 행위는 이후 시점인 9월에서 10월 중으로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북한이 탈북 단체의 대북 전단에 오물 풍선으로 맞서다가도 적당한 시점에서 중단하곤 하는 이유는, 치부책에는 적어놓되 지금 판을 너무 키우기에는 (미국 대선이 아직 5개월 남은) 시점상 너무 이르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한국 정부가 9·19 공동선언의 효력을 정지하고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함으로써 육상의 군사분계선(MDL)까지로 분쟁 전선이 급속히 확대되는 중이다. 1996년 상반기에 북한이 즐겨 사용하던 북한군 병사의 비무장지대 난입을 떠올리게 하는 무단침범 사례들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MDL에서의 새로운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바이든 정부 입장에서는 남북 간 이런 신경전에 심기가 불편한 모양새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가 6월11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팟캐스트 대담에서 대북 전단과 관련해 “물론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믿지만 긴장을 높이는 게 아니라 줄여야 한다는 점도 이해한다”라고 한 것은 완곡하지만 주한 미국 대사 발언치고는 매우 이례적이다. 그리고 이틀 뒤인 6월13일 유엔군 사령부(유엔사)가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조사하면서 북한군의 군사분계선 침범과 함께 한국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까지 포함한 사례 역시 마찬가지 맥락이다.

6월11일 대담에서 골드버그 대사는 북한의 행동 배경에 관해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려고 하는 새로운 국면과 관련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긴장 고조 상황은 “북한이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새로운 정책이나 한국을 적으로 규정한 점 등 무언가 진행되고 있는 것의 일부분”이라고 지적하기도 해 상황을 넓고 깊게 보고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

남문희 편집위원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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