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순이 “참전용사 미국인 父 본 적 없어, ‘아버지’ 부르기 싫었다”(지금 이순간)[어제TV]

이하나 2024. 7. 5.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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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STORY ‘지금, 이 순간’ 캡처)
(사진=tvN STORY ‘지금, 이 순간’ 캡처)
(사진=tvN STORY ‘지금, 이 순간’ 캡처)

[뉴스엔 이하나 기자]

가수 인순이가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털어놨다.

7월 4일 방송된 tvN STORY ‘지금, 이 순간’에서는 가수 인순이가 출연했다.

1978년 경기도 포천에서 살던 소녀 인순이는 당시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혼혈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의 모진 시선을 받아야 했으나, 녹록지 않은 가정 형편에 오직 돈을 벌기 위해 공연을 시작했다. 그러다 미8군 가수 출신이자 한국의 최초 여성 매니저인 한백희의 눈에 띄었고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받은 후 희자매로 데뷔, ‘실버들’로 큰 인기를 얻었다.

처음 가수 제의를 받았을 때 상황을 묻자 인순이는 “저는 집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가장이 된 입장이니까 무작정 따라 나왔다. 언니가 원래 미8군에서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패키지쇼를 했다. 어느 날 걸그룹을 만들겠다고 하더라. 다른 사람은 나가고, 이영숙, 김재희를 발굴해 왔다. 그래서 희자매가 만들어졌다”라고 설명했다.

1996년 데뷔 19년 차를 맞은 인순이는 어느덧 마흔이 되면서 미래에 대한 고민을 했다. 나이에 맞게 트로트를 해야할지 고민했다는 인순이는 “아이도 낳았고 댄스를 한다는게 관객들이 볼 때 ‘쟤 왜 저러지?’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때는 엄마다, 여자가 나이가 있다고 하면 활동이 조금 저조했던 때다. 무대가 없어질까 봐 불안했다. 내 나이에 맞는 노래를 해야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해서 그런 얘기를 했다”라고 회상했다.

당시 인순이의 이야기를 듣고 버럭 화를 냈던 박진영은 한 달 후 인순이를 위해 제작한 앨범 계획을 밝혔다. 박진영은 “‘이 나이에 설 무대가 없다’라고 했다. 누나에게 맞는 트렌디한 음악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집에 돌아왔는데 누나가 마음에 걸리더라. ‘인순이가 가진 매력을 쏟아낼 수 있는 곡을 만든다. 다만, 트렌디하게’라는 생각이었다”라며 “내가 곡을 만들어 드리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또’를 만들어서 연락드렸다”라고 설명했다.

‘또’ 녹음 당시 인순이는 무한 녹음의 늪에 빠졌다. 박진영은 “100번 넘게 불렀을 거다. 밖에 있는 프로듀서도 안에 있는 가수가 지치는 걸 보면 포기하는데 ‘누나 분명히 더 잘할 수 있는 거 아니까 조금만 더 해보자’라고 했을 때 누나가 끝까지 따라와 주더라. 노래는 당연히 압도적이지만 아직도 퍼포먼스조차도 지금도 저보다 잘하는 분이다”라고 전했다.

인순이는 “100번 넘는다. 우리는 정박에 노래하는 스타일이지, 엇박을 해보지 않았다. 실망을 시킬까 봐 걱정이 있었는데 너무 하고 싶었다”라고 고백했고, god 김태우 역시 ‘애수’ 녹음 당시 200번 녹음에 이어 복도에서 무릎 꿇고 손을 들고 있어야 했던 상황을 털어놨다.

2011년 PD의 끈질긴 요청에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했던 인순이는 당시 가장 부르기 싫었던 ‘아버지’라는 노래를 선곡해 1위를 차지했다. 인순이는 “‘아버지’가 2009년에 나왔는데 안 부르겠다고 계속 도망 다녔다. 엄마나 아버지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노래를 어떻게 하나. 말도 안 되지. 나는 도저히 이 노래는 못 하겠다고 했다”라며 “난 사실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아버지의 뒷모습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자녀들 간의 감정도 느껴본 적 없고 난 TV 드라마에서 본 아버지 모습이 전부였다”라고 고백했다.

인순이의 아버지는 한국 전쟁 후 고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참전용사였다. 인순이는 “내 상상 속이나 내가 느끼는 게 하나도 없었던 그런 사람에 대해서 노래해야 하고 남들이 생각하는 나와 아버지의 관계가 그렇게 유쾌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 같은데 이걸 내가 부른다고 하면, 노래를 해야 하는데 나의 사적인 게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평가되기 싫어서 정말 하기 싫었다”라고 설명했다.

‘거위의 꿈’을 편곡한 이현승 작곡가가 꼭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아버지’를 건넸을 때 인순이는 가사에 ‘아버지’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 조건으로 가창을 승낙했다. 인순이는 “난 어린 나이에도 ‘내 인생에서 아버지란 없다. 이건 내 운명이니까 흔들리지 말고 잘 살아가자’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너무나 꼿꼿하게 흔들리지 않고 살아왔다”라고 말했다.

인순이는 MC들의 요청에 ‘아버지’를 열창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윤종신은 “저도 그렇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분들이 가슴 저리게 와닿을 것 같은게 과거형으로 하지 말라고 했는데 마지막 가사가 ‘내가 사랑했었다’다”라고 말했다.

인순이는 “우리가 있을 때 잘하라는 게 뼈저리게 느껴진다. 나도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살갑게는 못 했지만 최대한 모시는 거 노력하고,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나와서 엄마를 위해 열심히 했다”라며 “내가 돈을 버는 목적은 우리 엄마가 아팠을 때 돈이 없어서 좋은 병원에 못 모시는 일이 없게 하는 거였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한동안 방황을 너무 많이 했다. 내가 일을 하고 노래를 하고 돈을 벌어야 할 목표가 사라진 거다. 너무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못한게 더 많다”라고 후회했다.

엄마이자 딸로서 공감의 눈물을 흘린 백지영을 본 인순이는 “엄마가 되어 보니까 딸이 ‘엄마 사랑해’라고 하는 소리에 다 녹는다. 세상에 어떤 얼음도 다 녹인다. 그럴 때 계실 때 ‘사랑해’라는 말을 해라”고 조언했다.

인순이는 2010년 한국전쟁 60주년을 기념해 뉴욕 카네기홀에서 참전용사를 초청한 공연을 열었다. 인순이는 “내 생각에 그분들 가슴 한 켠에 돌 같은게 얹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휴전이었는데, 그 어린 나이에 남의 나라에 평화를 위해서 온 거다. 이 사람들은 얼마나 불안했겠나”라며 “그분들이 어리고 불안한 마음에 했던 행동들이 누구한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마음을 어쩌면 갖고 계실 거라 생각했다. 그분들에게 나같이 성공한 사람도 있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도 있지만 다 자기 삶을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가슴에 맺힌 게 있으면 내려놓으시라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에도 가족을 찾거나 하시는 분들 보면 ‘혹시 한국에 자녀가 있을 것 같으세요?’라고 전화하면 99.999%가 그렇다고 한다더라. 그분들 마음이 어떻겠나. 그분들한테 ‘이렇게 성공한 사람도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를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뉴스엔 이하나 bliss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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