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말 따로 행동 따로 ‘트럼프 이민 정책’

여론독자부 2024. 7. 5. 05: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캐서린 람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집권때 비자발급 거부 급증했는데
'유학생 영주권 제공' 약속 내걸어
표심 노린 거짓정책 '번복' 불보듯
[서울경제]

유권자와 언론에 주는 무료 조언 한마디. “정치인들의 말보다 행동을 주시할 것.”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과거 기록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눈가림용 정책’이 언론을 통해 여과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외국에서 태어난 미국 대학 졸업생에게 영주권을 제공한다는 최근 보도가 좋은 예에 속한다.

트럼프는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이 제작한 팟캐스트 ‘올-인’을 통해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졸업생들과 그보다 수준이 다소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훌륭한 여러 대학의 졸업생을 잃고 있다”며 “그들이 이 나라에 계속 머물 수 있도록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영주권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지닌 최대 장점 가운데 하나는 세계 도처에서 글로벌 인재를 끌어모으는 능력이다. 이들 중에는 미국에서 배우고 익힌 기량을 기회의 땅에 투자하려는 유학생도 포함된다. 미국에서 태어난 인재만으로는 우리의 다양한 전략적 하이테크 산업을 개발하고 발전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 예를 들어 국립과학기술통계센터의 집계에 따르면 국내 대학에서 전기공학과 컴퓨터공학 대학원 과정에 등록한 전체 학생의 3분의 2가 유학생으로 채워진다.

아쉽게도 우리가 훈련시킨 세계의 인재들은 대학 졸업 후 미국에 체류하기가 대단히 힘들다. 고숙련 인력에게 주어지는 비자 발급 한도와 나라별로 배정된 영주권 쿼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엉뚱하게 우리의 적성국에 도움을 준다. 트럼프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국내의 명문대 졸업생들이 미국에 남아 회사를 세우거나 그들의 구상을 실현시키고 싶어하지만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힌다. 결국 그들은 인도나 중국 등 고국으로 돌아간다. 미국에서 교육받은 인재들은 거기서 회사를 설립해 수천 혹은 수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백만장자가 된다. 이 모두가 미국에서 할 수 있어야 하는 일이다.”

트럼프의 말은 모두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트럼프다. 트럼프와 스티븐 밀러 전 백악관 선임고문과 같은 그의 하수인은 고기능 숙련 인력의 이민 제한을 확대했고 미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와 유학생들이 지옥 같은 생활을 하도록 만들었다.

기능 인력에 대한 신규 비자 발급 거부율은 트럼프가 취임하기 5년 전의 평균 7%에서 그의 집권 전반기에 해당하는 2020 회계연도에 29%로 치솟았다. 소송에 휘말린 트럼프 행정부는 법정 밖 합의에 따라 2020년 중반부터 ‘부당한 비자 발급 거부’ 행위를 중단했다. 그가 임명한 관리들도 미국에 체류 중인 숙련 근로자들의 비자 갱신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었다. 그들은 정당한 이유 없이 비자 발급을 지연시켰고 이 때문에 유효기간이 만료된 비자가 우편으로 배달되는 웃지 못할 사례가 수차례 보고됐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말 트럼프는 고숙련 기술 인력의 이민 제한을 확대하려고 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트럼프는 과학·테크놀로지·엔지니어링·수학(STEM) 전공 유학생이 졸업 후 미국에 머물며 일할 수 있는 기간을 줄이려 했다.

재집권 후 트럼프가 ‘미완의 작업’을 마무리 지으려 할 경우 공화당 의원들은 그를 저지하지 않을 것이다. 반도체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의 초기 버전은 미국 대학에서 STEM 분야 박사 학위를 받은 유학생들에게 더 많은 영주권을 배정해야 한다는 조항을 담고 있었지만 공화당은 이 법안을 폐기했다.

트럼프가 번복할 게 뻔한 ‘영주권 약속’을 새롭게 내건 이유가 뭘까. 간단하다. 소수계 유권자는 물론 주머니가 두둑한 실리콘밸리 기부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다. 여론조사는 미국인들이 전반적으로 ‘합법 이민자’에게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 미국인들은 합법적인 미국 입국이 지금보다 수월해져야 하며 합법 이민이 최소한 현재와 같은 수준을 유지하거나 더 올라가야 한다고 믿는다.

이민 문제에 대해 미국인은 일반적으로 조 바이든 대통령보다 트럼프를 신뢰하지만 그의 이민정책은 싫어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민정책은 말로만 떠들어대는 거짓 정책을 뜻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내놓는 정책을 과거에 그가 취한 조치와 대조하는 사실 확인 절차를 생략한 채 그대로 보도하는 언론의 무성의한 태도 역시 문제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재대결에 불만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기는 하지만 전·현직 대통령의 싸움이 지니는 한 가지 장점은 기록으로 남은 두 후보의 과거 행적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언론은 이들이 남긴 성공과 실패의 기록을 정책안의 순도를 측정하는 잣대로 활용해야 한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