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강의 하구에서 묻는 당신의 안부

임인택 기자 2024. 7. 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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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엔 근래 소설에서 보지 못한 소재들이 많다.

단편 '깡통'이 이 소설집을 연다.

몽골을 많이 다룬 소설가(소설집 '늑대')답다.

소설집엔 2015년 '가족 버스'부터 지난해 '조용한 생활'까지 아홉 편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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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괜찮아요
전성태 지음 l 창비 l 1만5000원

이 소설집엔 근래 소설에서 보지 못한 소재들이 많다. 분단과 이산가족, 몽골 초원과 도시, 로힝야 난민…. 세월호, 여순사건은 차라리 낯익은 편이다. 소설은 여느 소설만큼의 진폭이 없다. 하구의 물줄기처럼 적요하다. 전성태 작가가 9년 만에 내놓은 소설집 ‘여기는 괜찮아요’의 형세다.

단편 ‘깡통’이 이 소설집을 연다. 네르귀는 네 살 때 부모가 한국에 돈 벌러 가면서 할아버지 엔비쉬와 자란다. 황무지에 질긴 풀들이 자라는 남쪽 고비에서 네르귀네 게르 삶은 그중 단출했다. 부모가 보내는 선물은 한 계절 내지 반년이 지나 왔다. 여섯 살 때부터 말을 달려도, 지평선은 아득히 닿지 않았다. 그 거리를 그리움과 절망이 채웠다. 사막 여행 온 한국인 관광객이 하필 남긴 선물이 콜라 다섯 캔과 초코파이다. 그리움이 욕망이 되는 찰나랄까. 엔비쉬는 알았다. 그 또한 소싯적 초원에 이웃해 살며 정들었던 스웨덴 출신 인류학자 부부의 또래 아이 안데르센과 이별한 기억이 있다. 그때 엔비쉬의 아버지, 즉 네르귀 증조부의 “온 가족이 슬프다. 우리도 함께 친구의 고향으로 가겠다” 비장한 말을 욘 부부는 세상 가장 아름다운 작별인사인 줄로만 알았으나, 농담이 아니었다. 욘 부부의 설명 끝에 말이 갈 수 없는 길, 양들을 먹일 “풀이 없는 곳”이 저 너머 있다는 걸 알고 네르귀네는 이주할 계획을 접는다.

3년 뒤 오겠다 약속했던 부모 대신, 부모가 ‘헤어졌다’는 소식이 당도한다. 이젠 할아버지, 양과 낙타를 직접 보살피겠다는 아홉 살 네르귀에게 할아버지는 말한다. 오래된 캔들을 가져다놓고 “나는 이걸 붉은 모래언덕에다가 버렸는데 썩지 않아 평생 두려웠단다”고, “네가 이걸 멀리 가서 버려주면 좋겠다”고, 울란바토르에 가 버리라고. 네르귀에게도 독자에게도 반전이 기다리는 곳이었다. 몽골을 많이 다룬 소설가(소설집 ‘늑대’)답다.

전성태 작가. ⓒ박동희, 창비 제공

지평선과 문명보다 분단선과 세월이 더 아득하다. 그걸 넘는 이가 일흔아홉 장시곤(단편 ‘상봉’)이다. 이북 사는 일흔다섯 형제를 만나러 가는 길은 눈 내리고, 상봉해서도 불안한 기운은 잦지 않는다. 그 나직한 긴장이 영상보다 활자의 온도로 진실해지는 이산가족 상봉의 모습일지 모르겠다. 형제가 맞는가. 삶의 적은 이념보다 일상에 있지 않은가. 형제는 금강산 바라보며 말한다. “사람이 헛꿈을 꾸고 행방 없이 사는 게 쓸쓸하지만 죽디 않고 사는 게 용하디요.”

소설집엔 2015년 ‘가족 버스’부터 지난해 ‘조용한 생활’까지 아홉 편이 실렸다. 그 기간 전성태는 문학상,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나 볼 수 있었다. 누군가를 “겨우 보낸 이야기나 쓰고 만다”는 단편들 묶어 지난 9년치 안부를 되물어 온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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