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지우고 싶은 순간을 또박또박 쓰기

한겨레 2024. 7. 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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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혜정의 '글 읽기와 삶 읽기2' 머리말에 나오는 질문입니다.

읽을 때마다 처음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와 글을 발표할 때의 떨림, 혼자 쓰다가 함께 쓰기로 다짐하고, 여럿이 이야기를 만질 때 느낀 공명이 낯설게 기억나거든요.

최근 진행한 '돌봄글방'에는 처음 글을 써본다는 동료가 많았어요.

한 동료가 글을 발표하는 날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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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의 소란한 문장들

글 읽기와 삶 읽기2
조한혜정 지음 l 또하나의문화(1994)

“자기 진술을 금기시하는 사회, 이야기하는 것을 회피하는 문화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왜 우리는 계속 기억 상실의 세상을 헤매며, 자기 성찰을 위한 말이 없는 사회에서 괴로워하고, 또 괴로워하는 것조차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조한혜정의 ‘글 읽기와 삶 읽기2’ 머리말에 나오는 질문입니다. 서문의 마지막 문장은 편지 끝맺음처럼 쓰여 있어요. ‘1994년 1월 신촌에서 지은이 씀.’ 30년 전 쓰인 이 책을 저는 매번 새롭게 읽어요. 읽을 때마다 처음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와 글을 발표할 때의 떨림, 혼자 쓰다가 함께 쓰기로 다짐하고, 여럿이 이야기를 만질 때 느낀 공명이 낯설게 기억나거든요.

저는 추상적이고 큼직한 단어가 아닌, 소곤소곤한 일상 이야기가 궁금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싶고, 기록하고 싶어요. 소곤거림 혹은 침묵 속에 이 시대가 녹아 있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30년 전 쓰인 책의 서문처럼, 여전히 우리는 ‘자기 진술을 금기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어요.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아직도 자기 경험을 쓰는 건 위험한 일이죠. 돌아올 반응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편안하게 경험을 풀어낼 수 있을까요. 고통을 해석할 언어, 내 서사의 편집권을 가져본 적 없는 우리가 어떻게 고통을 직면하며 쓸 용기를 낼 수 있을까요?

최근 진행한 ‘돌봄글방’에는 처음 글을 써본다는 동료가 많았어요. 한 동료가 글을 발표하는 날이었어요. 낭독을 시작하자 그는 숨을 고르며 한 문장씩 겨우 읽다가 울먹였어요. 적막이 흘렀어요. “저 낭독을 못 할 것 같아요…” 천천히 읽어도 된다고 전하려 했는데, 고통이 전달돼 그러지 못했어요. 교제 폭력과 관련된 내용이었어요. ‘지우고 싶은 순간’이라고 제목을 붙이고서, 한 문장씩 또박또박 그때의 경험을 썼어요. 지우고 싶은 일을 지우지 않고 소환해 쓰는 일은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는 일이잖아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잖아요. 이런 순간이면 복잡한 감정을 느껴요. 쓰는 동안 힘들지 않았을까 걱정되고, 고통을 언어화한 동료의 용기에 감동하고,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신뢰에 감사해요. 이번 글은 두 번의 퇴고를 거친 글이었는데요, 처음에는 적당히 ‘괜찮다’고 넘겼던 마무리가 퇴고를 거치며 이렇게 바뀌었어요.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 사람을 다시 마주칠까 조금은 무서워. 하지만 이 일을 글로 씀으로써 너는 잘못한 게 없다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어.” 이 글을 쓰기 전과 후 글쓴이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측정할 수 없는 변화겠죠. 다만, 그는 말했어요.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쓰고 싶다고요.

그가 쓴 글을 합평할 때, 한 동료는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을 낭독했어요.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조각난 동료가 다른 조각난 동료에게 전하는 시를 들으며 창밖에 비치는 부드러운 달빛을 봤어요. 24년 초봄을 함께한 동료들의 변화를 읽으며, 94년에 쓰인 낡은 책이 또 떠올랐어요. 금기된 글을 빚어가며 타자화된 자신과 서로를 새롭게 하는 힘을 몸으로 느끼면서요.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자신이 선택한 기억을 이용하여 스스로에게 자유로운 삶의 공간을 마련해 주고 있었다는 점에서 닮아 있었다. 적극적으로 기억하기, 이것은 타자화된 자신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에서 하는 행위이다.”

홍승은 집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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