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장마철, 되돌릴 수 없는 물이 덮치기 전에

한겨레 2024. 7. 5.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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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비가 쏟아지자 장마철임이 실감 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 물귀신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현실에 적용하면, 화제성을 위해 개인의 존엄은 무시하는 미디어도, 내 인생이 힘들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까지도 같이 망하라고 저주하는 악플러도 다 물귀신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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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물
전건우 지음 l &(앤드, 2024)

며칠 동안 비가 쏟아지자 장마철임이 실감 난다. 해마다 오는 계절 변화지만, 요즘 들어서 비도 더위도 예측하기 더 어려워졌다는 건 기분만은 아니리라. 사람들은 기후위기를 이야기하고, 예상을 넘는 비는 공포스럽다. 또, 똑같이 비가 내려도 어떤 사람은 늘 보송보송하고 어떤 사람은 그 비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는 생활의 차이가 현실로 드러나는 때라 더 무섭기도 하다.

전건우의 ‘어두운 물’은 장마철에 어울리는 호러 소설이다. 무섭게 떨어지는 빗소리가 소설 속 수귀의 공포를 극대화한다. 전통적 귀신 괴담과 살인 미스터리, 한국 전통 무속과 사이코메트리 초능력을 결합한 이 소설은 분량은 짧아도 장르의 종합 선물 세트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현대 사회의 선정적 탐사 보도에 대한 은근한 비판까지 가미했다. 죽은 원혼의 복수와 산 인간의 탐욕이 뒤섞여 일어나는 사건은 호러 소설의 기본 틀이지만, 익숙한 만큼 오싹한 기분도 준다.

주인공 민시현은 유명한 보도 프로그램 ‘비밀과 거짓말’의 막내 작가이다. 방송팀이 현재 촬영하는 장소는 파주의 현천강, 수귀가 나온다는 제보가 들어온 마을이다. 동네 사람들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 연이어 이상한 사건이 일어나고, 처음 이 제보를 가져온 팀의 두 번째 작가는 어느덧 사라졌다. 거기에 이런 괴담 프로그램에는 단골인 무속인 애기신녀와 그의 애동제자인 윤동욱이 등장하고, 물귀신의 저주는 점점 가까워진다. 물 위에 떠오른 시체, 앞이 안 보이는 폭우, 접신한 신녀, 한밤의 정전. 그리고 퉁. 퉁. 퉁. 문 두드리는 소리. 공포를 위한 모든 재료가 갖춰졌다.

‘어두운 물’의 장점은 손대면 죽음의 장면을 볼 수 있는 사이코메트리 능력자와 몸 잘 쓰는 퇴귀 무당이라고 하는 선명한 캐릭터의 조합과 정확히 계산한 지점에서 소름 끼치게 하는 장면 구성력이다. 즉, 머리를 지나치게 많이 쓰지 않고도 공포 소설의 효용을 느끼고 싶은 독자에게 딱 어울리는 책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 물귀신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소설 속 물귀신의 시초는 호우로 잠긴 마을의 희생자들이었다. 또, 억울하게 살해당한 인물이 물귀신이 되어 사람들을 끌고 들어갔다.

물귀신은 어두운 물속의 공포스러운 존재인 동시에, “물귀신처럼 끌고 들어간다”라는 표현에서처럼 자신이 위기에 몰리면 다른 사람들까지도 같이 궁지에 빠뜨리는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두운 물’의 물귀신은 현천강에 사는 원혼이기도 했지만,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인간이기도 했다. 현실에 적용하면, 화제성을 위해 개인의 존엄은 무시하는 미디어도, 내 인생이 힘들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까지도 같이 망하라고 저주하는 악플러도 다 물귀신일 수 있다.

나는 쏟아지는 비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들쑥날쑥한 날씨가 정말 기후위기의 소산이라면, 우리가 흥청망청 써버린 지구의 후처리를 미래 세대에게 안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이번 생은 이미 망했다는 정신으로 살았대도 물귀신처럼 다른 이의 앞날까지도 위기로 끌어들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장마철에 하면 한층 더 우울한 상상이지만, 물귀신이 무엇이든 그건 끊어내야 한다. 되돌릴 수 없는 물이 덮치기 전에.

박현주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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