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란 말에 가려진, 진정한 문제를 찾아라 [책&생각]

한겨레 2024. 7. 5.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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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저널리스트의 탐사 취재
개인에 ‘사고 유발’ 책임 돌리고
구조·환경 만든 권력엔 면죄부…
취약성 고려한 예방 요구해야
지난 24일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제조업체(아리셀)에서 난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이 화재로 31명의 사상자가 났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사고는 없다
교통사고에서 재난 참사까지, 무너진 시스템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제시 싱어 지음, 김승진 옮김 l 위즈덤하우스 l 2만3000원

연일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화성 화재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승용차가 인도로 돌진해 많은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는 사고는 이루 셀 수도 없다. “단일 사고의 사망자는 한두 명”일 때가 많아 뉴스 속보로도 뜨지 않는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제시 싱어의 ‘사고는 없다’는 “3분마다 1명이 사고로 죽는”, “24명 중 1명이 사고로 죽는” 미국 현실을 통해 우리 주변의 ‘사고’가 단순한 사고가 아닌 사회 시스템 붕괴가 가져온 결과임을 보여준다. 지은이가 지목한 시스템 붕괴의 원인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다. 결과는 참혹하다. “흑인은 화재로 죽을 확률이 백인의 2배”이고 “원주민은 길을 건너다 차에 치여 죽을 확률이 백인의 3배”다. ‘들어가는 글’ 말미에서 저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단순해 보이는 모든 사고 이면의 권략, 취약성, 고통에 관한 복잡한 이야기를 알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우리는 매년 수만 명의 목숨을 구할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은이는 ‘사고’라는 단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연인을 사고로 떠나보낸 아픔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요인이 켜켜이 쌓여 발생한 일을 ‘사고’라는 단순한 말로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1920~30년대만 해도 자동차 사고가 발생하면 현장에서는 어김없이 “살인이라고 외치는 군중”이 있었다. “자동차 회사를 무기 거래상 보듯” 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자동차 제조사 및 그와 금전적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세력”들이 이 사태를 지켜만 보지 않았다. 그들은 자동차가 원인이 아니라 “인적 과실로 돌리기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결과는? 답하지 않아도 안다. “막강한 힘을 가진 자동차가 보행자가 밀집한 도시 거리에서 일으킨 충격적인 영향에 대한 이야기로, 정신 나간 운전자와 제대로 걷지 않는 보행자의 이야기로 바꿔냈다.” 어디 도로 위에서뿐인가. 광산, 철도 차량 기지, 각종 공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들도 대개는 “사고 유발 경향성”이 있는 노동자들의 책임으로 돌아간다.

사고의 규모에 상관없이 책임은 개인에 돌아가곤 한다. 미국에서 1970년대는 대규모 사고로 얼룩진 시기였다. 대규모 석유 유출 사고가 많았고, 치명적인 항공기 사고도 최고치를 기록했다. 1979년 3월에는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 원자력발전소에서 노심용융(爐心鎔融)이 발생했다. 노심용융은 원자력 발전의 핵심인 노심이 녹아내리는 것으로,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서 가장 심각한 상황이다. 사고의 원인은, 늘 그렇듯 운전원들의 지침 위반과 반복된 실수라고 발표되었다. 발전소 차원의 대처가 미흡했음에도 소유주는 펜실베이니아 주지사에게 “모든 것이 잘 통제되고 있고 걱정할 만한 일은 없다”며 거짓말을 했다. 대규모 피해는 “상대적으로 빈도수가 낮”게 일어나지만, 그 자체로 “광범위한 파괴와 죽음을 가져오기에 충분”하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여실히 증명된 일들이다. 지은이는 “두 가지 요인이 핵 사고의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발전소가 노후화되어서 기능 장애가 더 잦아진” 탓이고, 두 번째는 “재생에너지와 천연가스 분야의 호황으로 핵 업계가 재정적 압박에 처하면서 노후화된 발전소를 제대로 유지 보수하기 위한 자금이 부족해진” 탓이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다음날인 2022년 11월1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앞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는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인종, 계급, 성별, 약물 사용’은 “낙인”이라는 방식을 통해 사고 유발의 원인 제공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약물중독자’라는 낙인은 “사고 유발 경향성이 있는 노동자나 운전석의 미치광이와 달리 그가 약물을 사용하지 않을 때도 따라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도한 약물 사용이 인종에 대한 편견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오피오이드, 즉 마약성 진통제 유행이 있기 전까지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서 사고성 약물 과용은 압도적으로 흑인들이 많은 영향을” 받았다. 흑인의 약물 사용은 범죄로 간주되곤 했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는 약물 사용에 대한 지표가 아니라 낙인에 대한 지표”라고 못 박는다. 오피오이드가 처방약이 되면서 이 같은 인식이 흑인에 대한 낙인임이 밝혀졌다. 오피오이드는 “백인에게 기록적으로 많이 처방”되었다. 그럼에도 흑인을 비롯한 여러 인종이 여전히 낙인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문제는 “돈에 우선순위를 두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사고의 비용, 즉 배상 비용, 문제를 고치는 데 들어가는 비용 등을 회피하기 위해 “비난”을 강화하는 것을 막지 못하는 현실이다. “사고에 대해 우리가 누군가를 비난할 때 (…) 세상의 모든 복잡성을 응축해서 단 하나의 원인을 만든다. 그리고 그 원인은 무언가를 잘못한 어느 한 사람이다.” 하지만 “운전석의 미치광이나 사고 유발 경향성이 있는 노동자나 범죄적 중독자” 등등의 단어는 권력자들이 고안해낸 “허수아비”일 뿐이다. 자전거 헬멧을 쓰지 않았거나, 어두운색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그들은 온갖 사고에서 원인 제공자가 되곤 한다.

단지 비난만으로 미국 기업들이 이 난관을 피해 가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경우 환자가 과도한 병원비를 부담하고, 석유가 유출되면 지방 정부가 그 부담을 진다. 미국 상황을 이야기하는 지은이의 주장이 우리 현실과 유독 진하게 겹쳐진다. “미국에서는 안전하지 않게 제조된 자동차나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일터에서 발생하는 사고조차 그로 인한 비용 대부분을 기업이 아니라 납세자가 부담하기 때문에, 미국 기업으로서는 사고가 나게 두는 것이 수익 면에서 이득이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첫걸음은 “공감”이다. 시스템에 내재된 낙인과 편견을 찾아냄과 동시에 “인적 과실 운운하는 이야기”를 배격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젖은 담요를 덮어씌우듯이 사고와 피해를 ‘사고’라는 단어로 덮어씌우려 하는 것”에도 주의하면서 “모든 사고에서 각각의 상세한 뉘앙스를 찾”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에서 ‘사고는 없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동석 출판문화도시재단 사무처장,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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