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AI 칩 빼돌리는 中… 유학생까지 ‘밀수 시장’ 가담

실리콘밸리/오로라 특파원 2024. 7. 5.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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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서 ‘애국 운반책’ 모집, AI 칩 하나당 100달러 수고비… 유학생 “나라 위한 일 기쁘다”
엔비디아 H100 /엔비디아

“홍콩 현물 엔비디아 H100 70대. 5일 내 배송 보장. 상세한 판매 조건은 채팅으로.”

“엔비디아 H100 8개입 서버 대만에서 발송 대기 중. 280만위안(약 5억3000만원).”

4일 중국 인기 소셜미디어 ‘샤오훙슈’의 검색창에 ‘H100′을 입력하자, 이 같은 엔비디아의 최고급 인공지능(AI) 가속기(AI 반도체의 일종)를 판매한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댓글창엔 “미국에서 H100 하나를 주문하면 2만달러(약 2800만원) 정도에 살 수 있는데, 도둑놈 아니냐”는 항의가 달렸지만, 판매상은 그 밑에 “당신 말고도 사려는 사람이 많다”는 답글을 달아 놓았다.

고성능 AI 모델 개발에 필수품인 엔비디아의 AI 가속기는 2년 전부터 미국 정부가 대중 수출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제품이다. 하지만 H100 등 미국에서도 사려면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 엔비디아의 최신 제품들이 중국 ‘암시장’에선 버젓이 거래되고 있다. 싱가포르·대만 등 해외에 등록한 페이퍼 컴퍼니(유령 회사)를 통해 엔비디아의 AI 가속기를 구매하고, 개인 운반책을 통해 중국에 있는 구매자 또는 중국 유통상에게 넘기는 것이다.

2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엔비디아 반도체 밀수에 유학생까지 가담하고 있다”며 싱가포르에서 유학하는 26세 학생이 싱가포르에 있는 브로커의 부탁을 받아 엔비디아 AI 가속기 6개를 밀수한 사례를 소개했다. 이 학생은 AI 가속기 하나당 100달러의 운반비를 받았다. 죄의식은 없다. 이 학생은 “내 나라를 위해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어서 기쁘다. 안 할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WSJ에 말했다.

실제로 중국 현지에선 최신 AI 반도체 밀수꾼을 ‘애국 운반책’이라며 모집하는 글들이 소셜미디어에 심심찮게 올라온다. ‘밀수는 불법이지만, 조국을 위해 공헌한다고 생각하자’ ‘마약 운반이 아니며, 직접 제품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내용이 종종 포함돼 있다. 한 번에 눈에 띄지 않는 5kg 수준의 소량을 운반하며, 밀수 대가로 많게는 한국돈 1000만~2000만원을 받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보따리 밀수’가 가능한 것은 출입국 세관이 발견한다 하더라도 대중 수출 규제 상품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출국하는 나라에서 검문을 당해도 반도체 지식이 부족한 세관 직원들이 큰 의심 없이 물건을 통관시킨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의도적으로 이 같은 반도체 밀수를 눈감아 준다는 추측도 나온다.

이렇게 밀수된 엔비디아의 첨단 반도체는 주로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선전 ‘화창베이’ 전자 상가로 집결된다. 이곳에서 다시 중국 전역으로 AI 반도체가 배송된다. 다만 가격은 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구매할 때의 2배 이상으로 비싸다. 예컨대 1만달러 수준인 A100은 2만달러 이상에, 2만5000달러 수준인 H100은 3만~4만달러에도 팔린다. 중국 IT 전문 매체 36커는 “최신 제품인 H100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한 단계 아래 제품인 A100의 가격은 최근 소폭 떨어지는 추세”라고 했다. 수요 공급에 따라 가격이 변할 만큼 암시장이 활발하다는 방증이다. WSJ는 “연간 중국으로 밀수되는 AI 가속기는 1만2500개 정도로 추산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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