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경제의 희망’ 토박이 스타트업들이 뜬다

부산/안상현 기자 2024. 7. 5.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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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출신들 잇따라 창업
지역 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지역 토박이 스타트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국내 최대 지역 스타트업 민간 축제 ‘부산 슬러시드 2024′ 현장이 붐비는 장면이다. 이날 행사에는 창업가와 투자자 1000여 명이 모여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 방안을 논의하며 교류했다. /코리아 스타트업 포럼

지난달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국내 최대 지역 스타트업 민간 축제 ‘부산 슬러시드 2024′ 현장. 부산의 국립대 부경대에서 의공학을 공부하는 박예지(23)씨가 내민 명함에는 스타트업 킵유(Keepu)의 대표라는 직함이 찍혀 있었다. 킵유는 이산화탄소를 자동으로 급속 주입해 만드는 작은 튜브 형태의 응급용 ‘에어(Air) 부목’ 제품을 개발하는 회사로 올해 창업했다. 그는 “부산에선 제 전공을 살려 취업할 곳이 마땅치 않아 창업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창업 아이템은 고향 부산의 특성에서 찾았다. 박 대표는 “지방에는 고령자가 많지만, 의료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소외 지역도 많다”며 “낙상 등으로 골절상을 입었을 때 치료 골든 타임을 확보하기 위한 제품을 개발한 이유”라고 말했다.

부산은 우리나라 최대 항구 도시지만, 지난해 인구 330만명이 붕괴하는 등 인구 유출이 지속되고 있다.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대거 떠나면서 ‘부산에 있는 건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적인 표현마저 나올 정도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지역 토박이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올해 열린 창업 축제에도 창업가와 투자자 1000여 명이 모였다. 천동필 부경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방은 여성 청년 인력 유출이 더 두드러진다”며 “이들은 제조업 같은 기성 산업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만큼 이들을 고용할 수 있는 지역 스타트업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과 바다’가 곧 사업 아이템

부산 토박이들이 세운 스타트업들은 “부산이 곧 사업 자원”이라고 했다. 2013년 부산에서 창업한 국내 대표 해외 역(逆)직구 플랫폼 기업 ‘딜리버드코리아’는 국내 최대 물동항인 부산항을 이용해 사업 경쟁력을 확보했다. 해외 소비자를 상대로 국내 제품을 판매·배송하는 사업인 만큼 부산항을 통해 차별화된 물류 경쟁력을 얻은 것이다. 딜리버드코리아 공동 창업자인 김재은 이사는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부산항에서 물건을 보내면 다음 날 새벽 배송이 가능하다는 이점을 살려 페리 익스프레스 라인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딜리버드코리아는 미국·일본·독일 등 106국에 물건을 배송하며 작년에만 100억원의 매출을 냈다.

그래픽=김현국

싱가포르에서 창업했던 유망 인공지능(AI) 스타트업도 부산항을 보고 본사를 옮겼다. 한국해양대학교 출신들이 2022년 세운 스타트업 ‘마리나체인’이 주인공이다. 올해부터 국제 규제가 시작된 선박 탄소 배출량 관련 관리용 AI 소프트웨어와 탄소배출권 중개 거래를 지원하는 마리나체인은 작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표창을 받고, 올 3월에는 미국 ‘오픈 AI’의 한국 스타트업 경연에서 1위를 차지한 기업이다. 하성엽 대표는 “ESG에 진심인 싱가포르에서 창업했지만, 고객인 선박 기업이 부산에 몰려 있다 보니 무대를 옮기게 됐다”며 “부산으로 옮긴 뒤 국내 선사 대부분을 고객으로 확보했다”고 말했다.

에어 부목을 만든 킵유처럼 지역에 부족한 인프라를 사업 아이템으로 삼아 서울까지 진출한 스타트업도 있다. 고령자나 휠체어 이용자 등 교통 약자들이 계단 같은 장애물 없이 다닐 수 있게끔 지역의 무(無)장애 가게 등을 수집해 분석하는 데이터 스타트업 ‘윌체어’가 주인공이다. 윌체어의 권도희 데이터분석가는 “지방은 무장애 인프라가 적다 보니 시작된 사업이지만 이제 수도권에도 진출해 서비스를 제공 중”이라고 했다. 실제 서울 서초구나 성동구, 경기 화성시 등에 무장애 도시 구축 설루션을 제공 중이다.

◇지역 ‘창업 환경’ 활성화 필요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에 지역 창업을 하지만 국내 스타트업 창업 기업과 투자 자본 시장이 워낙 수도권에 몰린 터라 성장하기까지 어려움도 더 많기 마련이다. 스타트업 창업가들은 지역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지역에 투자하는 벤처 투자 시장이 더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저궤도 위성용 안테나 시스템을 개발한 창원의 우주 항공 스타트업 지티엘의 황건호 대표는 “경남에서 태어나 45년간 떠나본 적 없지만, 요즘은 강남 사람이라고 소개한다”며 “그만큼 투자를 받기 위해 서울 강남을 많이 갔다”고 했다. 강남에서 수십 군데 벤처캐피털을 찾아다니며 거절당하는 게 일상이었다는 그는 “서울 투자사들은 투자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지역 스타트업 투자를 꺼리는 분위기가 크다”고 했다.

지역 스타트업이 어느 정도 성장 궤도에 오르면 창업가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협 요소는 바로 인재 유출이다. 부산의 대표적인 화물 운송 중개 플랫폼 기업 ‘센디’의 염상준 대표는 “얼마 전 부산대 컴퓨터공학과를 나온 우리 회사 개발자가 네이버로 이직했다”며 “우리가 그만큼 인재를 잘 길러냈다는 자부심도 있고 개인 경력 차원에서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인력이 곧 경쟁력인 스타트업 입장에서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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