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사람이니까 고쳐 쓴다
범죄 전력자들의 반복되는 범행이 잦은 요즈음. 사회적 질타들이 쏟아진다. 가장 강도(强度) 높은 비판이 ‘사람 고쳐 못 쓴다’는 말. 누가 들어도 가슴 서늘해지는 ‘돌직구’다. 개인의 범행과 인간의 본성을 직결시키는 말이라서 그렇다. 범죄자를 포함, 인간 모두에게 그 말은 ‘천형(天刑)의 선고’나 다름없다. 과연 개인의 범행을 ‘악한 인간 심성’의 판단을 위한 결정적 준거로 삼을 수 있는가.
중죄를 거듭 범하고도 큰소리치며 활보하는 정치인이 많은데, 소소한 범죄자(들)만 ‘죽일 놈’으로 단죄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은 ‘범죄 일상화’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세태를 잘 보여준다. 인간의 행동은 대부분 도덕적·합리적 판단에 바탕을 둔다. 그 도덕성이나 합리성은 세상의 보편적 기준에 비추어 선일 수도 악일 수도 있다. 범죄자들이라고 평생 가증스러운 범행만 반복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겁게 벌 받은 뒤에도 여전히 범행을 저지르는 행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지속되는 범죄자들의 행위를 인간이 지닌 ‘악한 본성’의 표출로 보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단언은 선험과 경험을 아우른 데서 나온 판단이다. 선악은 상반되면서도 인간 내면에서 사이좋게 공존한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중 착한 자를 따르고 악한 자를 보며 자신의 행동을 고쳐야 한다’는 공자도, 그 말을 ‘선악이 모두 내 선생’이라고 부연한 남송의 섭하손(葉賀孫)도 악한 본성을 인정하되 어디를 지향해야 하는지 잘 설명한다. 맹자·고자(告子)·순자(荀子) 등의 언설들 또한 사람의 성정이 늘 선악 양단에 걸쳐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의 본성은 결코 좋아질 수 없다’는 단정에 동의해야 한다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절망감을 떨칠 수 없다. 여전히 교육과 교정(矯正)을 통해 잃(잊)어버린 인간의 착한 본성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안일까. ‘사람 고쳐 못 쓴다’는 말. 수시로 보는 거울에 새겨놓고 경계해야 할 우리 모두의 ‘경명(鏡銘)’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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