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형 J vs 즉흥적인 P, 진정한 여행 고수가 되려면 어느 쪽? [여책저책]
성격유형검사인 MBTI는 심심풀이를 뛰어 넘어 채용에까지 파고들며 화제를 낳고 있습니다. 맹신할 수는 없지만 E는 외향형, I는 내향형으로, P는 즉흥적이고, J는 계획적이라고들 합니다. 이 때문일까요. 여행을 떠나기 전, 또는 여행하면서도 서로의 MBTI를 확인하고는 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또 눈을 뜨면서부터 숙소에 들어가 잠자리에 들기까지 모든 것을 계획대로 해야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상황에 따라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는 이들도 있죠. 또 ‘그곳’에 가야 하는 이유를 정당화하는 이가 있는데 반해, 아무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두 저자의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은 이들의 MBTI보다 이들이 전 세계 곳곳을 어떻게 누볐고, 어떤 여행을 경험했는지가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J면 어떻고, P면 어떻습니까. 틀을 정해놓고 그 안에 맞추려는 것도 때로는 중요할 수 있지만 여행에서 만큼은 현지에서 느끼는 것에 충실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울러 그 느낌을 글과 사진으로 전하는 저자의 얘기에 귀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지연 | 행복우물
그의 삶 절반 이상이 공간과 장소로 점철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 저자가 여러 대륙을 거닐며 마주한 여행까지 얹어 따스한 문체로 풀어낸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실제로 저자는 자신을 여행디자이너라고 일컫는다.
책은 지인들에게 각자의 상황에 맞는 여행의 장소를 소개해 주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배신의 아픔에 고통 받는 친구에게는 마음의 온도를 높여줄 따뜻하고 눈부신 햇살이 있는 곳을, 열등감에 힘들어 하는 친구에게는 내면의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곳을 소개한다. 그들의 기억과 작가가 여행 중에 들었던 내면의 소리에 관한 기록은, 마치 잘 짜인 태피스트리를 보는 듯 감상하게 해준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각자에겐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는 도시가 존재하고 자신의 내면 깊숙이 그리는 행복의 이미지가 그 장소와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괴테가 평생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그곳에 있을 때만 내가 인간답게 느껴졌다고 고백했던 이탈리아 로마와 같은 곳이 자신에게는 어디인지 묻게 된다. 평생 사랑할 일과 사람을 만나게 하는 곳이 될지 모를 자신만의 장소들을 찾아 나서는 여행을 떠나고 싶게 한다.
저자는 “책장을 넘기다 보면 다소곳이 미소 짓게 만드는 사진과 글, 그리고 잔잔한 여백의 따스함이 누군가에게 건네는 소중한 선물처럼 다가가길 바란다”며 “사이프러스 나무에 조용히 기대어 보듯 ‘내게 끌리는 장소, 나를 닮은 장소’들을 찾아가는 여정이 곧 이 책이길 바란다”고 전했다.
내게 그리운 목소리로 말을 거는 여행의 장소란 아주 오래전, 행복한 기억 속의 장소일지 모른다. 내 맘 깊은 곳에 아직도 그리운 잔잔하고 소소한 일상의 기억들이, 며칠 밤을 새워도 피곤치 않았던 청춘의 열기가, 너무 곱게 사랑했던 누군가와의 시간이 노을처럼 그윽한 빛깔로 물들어 있는 곳일지 모른다.
히브리 속담에 ‘당신이 사는 곳을 바꾸면 당신의 운도 바뀐다’는 말이 있다. 매주 마주하는 장소에 변화를 주면 나의 운명이나 행동도 변할 수 있을 만큼, 환경의 영향이 크다는 말이다. 잘 안 가던 동네 카페에 가보는 것, 잘 안 먹던 음식을 시도해 보는 것, 잘 안 읽던 분야의 새로운 책을 읽어보는 것들이 우리에게 신선한 효과를 줄 수 있다고 한다. 하물며, 먼 이국의 낯선 환경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란, 얼마나 신선하고 큰 변화의 시도인가! 혹 나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할지도 모를, 얼마나 기대되고 흥미로운 일인가.
- 10년째 모스크바 거주하며 다닌 소도시 여행의 기록 -
이지영 | 미다스북스
일단 집 주변 성당에서 시작했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며 모스크바 근방의 소도시로 반경을 넓혔다. 사실 처음이라 두려웠다. 하지만, 설레기도 했다. 부지런히 자라나는 아이들은 더욱 그랬다. 하나 둘씩 늘어나는 나이테에 다채로운 경험을 새겨주고 싶었다. 거창하지 않았다. 갖가지 특색을 담은 박물관, 역사를 간직한 수도원 등 추운 겨울 곳곳에 숨겨진 따스함을 찾아가 ‘작은 행복’을 누렸다.
여행객도 잘 찾지 않는 고요한 시골에서도, 조용한 숲 한가운데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안에 비로소 만나게 된 나, 그리고 가족이 함께 있었다. 꽁꽁 언 호수를 가족의 손을 잡고 건너온 기억이 대표적이다. 온몸으로 맞닥뜨린 이 경험은 마음 곳곳에 뿌리내렸다. 아마도 훗날 어려움을 헤쳐나갈 동력이 돼주리라 저자는 믿는다.
동토에서의 10년 생활 동안 깨달은 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이래도 봄은 온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현실은 그대로이지만, 결국 인생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세상에는 아직 숨겨진 반짝거림이 무궁무진하다.
책을 읽다 보면 이씨 가족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저자가 말한 “우리 가족은 또 어떤 행복을 마주하게 될까”처럼 가족의 소소한 행복을 기대하게 만든다. 혹시 겨울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사진도 주목하길 바란다. 눈 쌓인 이국적인 풍경이 담긴 사진에 눈을 뗄 수 없다.
여행은 행복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었다. 행복이 뭐였는지 깨닫기 위해 떠나는 여정. 길 곳곳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사소한 경험들이 차곡히 내 몸에 쌓이고, 그것들을 기억함과 동시에 내가 가진 것을 감사하기 위해 떠나는 거였다.
예기치 못한 깨달음이 절실할 때 우리는 여행을 소망한다. 일상의 꼬임은 반복되고, 한 치 앞도 모를 앞날은 두렵고, 우린 그럴 때 여행 가방을 싼다. 가방 안에 무엇을 넣어갈지 설렐 때도 있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어떤 마음가짐이 될지 기대할 수 있는 설렘도 있다.
※ ‘여책저책’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세상의 모든 ‘여행 책’을 한데 모아 소개하자는 원대한 포부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출판사도 좋고, 개별 여행자의 책도 환영합니다. 여행 가이드북부터 여행 에세이나 포토북까지 어느 주제도 상관없습니다. 여행을 주제로 한 책을 알리고 싶다면 ‘여책저책’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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