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춘천 향어 전성시대

이수영 2024. 7. 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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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춘천은 향어 전성기였다.

그때도 닭갈비와 막국수의 고장으로 유명했지만, 향어회와 매운탕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지역의 명물로 사랑받았다.

춘천댐 매운탕 골은 향어 요리의 성지로 통했다.

주말이면 향어회와 매운탕, 향어찜을 맛보기 위한 발길이 매운탕 골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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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춘천은 향어 전성기였다. 그때도 닭갈비와 막국수의 고장으로 유명했지만, 향어회와 매운탕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지역의 명물로 사랑받았다. 동네마다 향어 음식점이 성시를 이루었고, 외지에서 온 손님에겐 춘천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대접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도, 부담 없는 가격에 푸짐하게 한 접시를 담을 수 있어 술안주로 인기였다. 식당 매장이 손님들로 가득 차면 포장을 해 집에서 먹기도 했다. 덩치가 크고 육질이 단단해 횟감으로 손색이 없는 향어는, 고소한 풍미가 더해져 애주가들의 단골 메뉴로 자리 잡았다. 대학가와 주택가에서도 향어 식당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춘천댐 매운탕 골은 향어 요리의 성지로 통했다. 주말이면 향어회와 매운탕, 향어찜을 맛보기 위한 발길이 매운탕 골로 이어졌다. 물론 지금은 볼 수 없는 그때의 풍경이다.

유럽이 원산인 향어는 독일잉어 또는 이스라엘잉어라고도 한다. 독일에서 잉어를 오랫동안 인위적으로 개량해 이스라엘로 이식되었던 데서 이름이 붙여졌다. 식성이 좋아 물돼지라고도 불린다. 우리나라에선 1973년 국민들의 영양 보충을 위해 이스라엘 농무성을 통해 치어 1000여 마리를 들여온 것이 시초다. 그 후 시험 양식에 성공해 1978년부터 전국 대형 호수에서 대대적인 양식이 시작됐다. 1980년대 초반 이후 1990년대 후반까지 내수면 양식업의 대상으로 각광을 받았다. 수질 보호를 위해 호수의 가두리 양식장이 사라지면서 현재는 공급이 거의 중단된 상태다. 호수나 저수지에 방류돼 자연 번식한 향어들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솜씨 있는 낚시꾼의 바늘에도 쉽게 걸리지 않을 만큼, 귀한 물고기가 됐다.

얼마 전 향어와 송어를 길렀던 내수면 가두리 양식업자들이 손실보상금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춘천의 향어 전성기가 떠올랐다. 향어의 향(香)자는 향기를 뜻한다. 그때 회를 먹으면서 어떤 향이 났었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어딘가에 아직 이 요리를 하는 식당이 있다면, 기꺼이 찾아가 맛과 향을 음미해 보아야겠다. 이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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