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아저씨였어” 황산 테러 당한 6세…경찰은 무시했다 [그해 오늘]

강소영 2024. 7. 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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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 테러에 얼굴과 몸 녹은 6세 태완이
“치킨집 아저씨” 진술했지만 묵살됐다
눈물로 전해진 태완 군 母의 ‘49일 병상일기’
결국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태완이법’ 마련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2014년 7월 5일 방송된 KBS ‘추적60분’에서는 1999년 일어났던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을 쫓았다. 이는 불상의 범인이 벌인 황산 테러로 인해 김태완 군(당시 6세)이 사망한 사건으로, 범인을 끝내 잡지 못하고 미제로 남은 상태였다.
(사진=유튜브 캡처)
이에 해당 방송에서는 태완 군이 사건 후 사망하기 전까지 49일 동안 남긴 유일한 단서인 300분 가량의 진술에 초점을 두고 전문가들과 분석에 나섰다. 그 이유는 사건 당시 수사관들이 6세 아이의 진술이라는 이유만으로 신빙성이 없다고 단정 짓는 등 초동 수사에 허점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사건은 1999년 5월 2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대구시 효목동 한 골목에서 학원으로 향하던 김태완 군에게 정체불명의 남성이 다가왔다. 이 남성은 태완 군의 뒤에서 머리채를 잡아당겨 입을 벌린 뒤 검은 봉지 안에 있던 황산을 들이부어 식도와 얼굴 등을 태웠다.

이는 태완 군이 집으로 나선 지 불과 10분도 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태완 군은 얼굴을 비롯해 전신에 40~45%의 3도 화상을 입고 두 눈을 잃었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 속에서 사경을 헤매다 49일 만인 그해 7월 8일 오전 8시 15분쯤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당시 기도와 식도까지 타내려 간 태완이는 힘겹게 끔찍했던 기억을 되새기다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 경찰의 초동 대처 미흡

태완 군의 어머니는 경찰이 “태완 군의 말이면 된다”, “태완이한테 물어보라”는 말만 믿고 태완 군이 사건 5일 만에 깨어나자 즉시 캠코더와 녹음장비 등을 직접 준비해 아이에게 틈틈이 질문을 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픈 아이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어 죄스럽다”며 “우리는 부모도 아니다”라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정작 경찰은 6세 아동이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 부모의 유도 진술에 의한 것이기에 신빙성이 없다며 이를 묵살했다.

태완 군의 어머니는 2013년 한 방송을 통해 “‘검은 봉지로 황산을 끼얹었다’는 아이의 말을 경찰이 의아해했다”며 믿지 않았다고도 밝혔다. 방송 실험 결과 실제 황산은 비닐의 성분에 반응하지 않아 타지 않았고 그 안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또한 태완이의 친구인 현수의 진술은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무시됐다. 말이 어눌하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지능은 일반인과 같았다. 결국 경찰은 말이 어눌하니 멍청할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인해 사면초가의 상황을 초래한 셈이 됐다.

사건 발생 4개월 뒤 피의자로 지목된 A씨의 가죽 신발에 황산이 묻은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는 오염된 옷과 함께 보관했기에 증거로서 효력이 없었다.
(사진=KBS ‘추적 60분’ 캡처)
A씨는 경찰에 “테러 당시 가게에서 ‘태완아’ 하는 소리와 함께 ‘으악’하는 비명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더니 태완 군이 골목을 나와 전봇대 앞에 기대있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태완 군을 발견한 사람들은 비명 소리는 없었다고 증언했으며, 당시 태완 군은 간신히 신음 소리를 내며 집을 향해 골목을 기어가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 결국 만료된 공소시효

KBS ‘추적60분’이 방영된 당시는 살인죄 공소시효 이틀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방송에서는 대한민국 최고 진술 분석 전문가 등 12명이 1개월간 집중 분석을 한 결과 아동이 자신이 보고 느낀 상황을 정확히 증언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 결과를 들은 태완 군의 부모는 2014년 7월 4일 방송 하루 전, 대구지방검찰청에 유력 용의자를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으나 검사는 15년 전과 같이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혐의 결정에도 유가족은 재정신청을 했고 공소시효가 극적으로 정지됐다.

형사소송법에 의거해 고등법원에서는 3개월 이내로 공소제기 혹은 기각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다만 고등법원에서 기각결정을 내릴 경우엔 사건은 영구미제로 분류되며 사실상 해결이 불가능해진다.

2015년 2월 3일 대구고등법원이 재정신청을 기각해 유가족은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살인 등 흉악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론이 대두된 시점이었다. 그러나 2015년 7월 10일 대법원이 재항고를 기각하며 이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게 됐다.

이후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자 국회는 2015년 7월 24일 만장일치에 가까운 표로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태완이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정작 태완 군의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돼 적용될 수 없었다.

특히 공소시효가 끝나기 4개월 전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법안이 이미 국회에 계류돼 있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은 더욱 커졌다.

태완 군이 병상에 있던 49일 동안 태완 군의 어머니는 매일 눈물로 병상일기를 썼다고 한다. 2000년 사이버주부대학 게시판에 공개된 내용에는 애달픈 마음이 역력했다.

태완 군의 어머니는 아이의 입관식 후 물었다고 했다. “태완아. 안 아프더나?” 이후 태완 군에 입맞춤을 한 뒤 “태완아, 잘 가”라며 아들의 마지막을 그렇게 보냈다.

강소영 (soyoung7@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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