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225] 군살 빼기
아차, 로또 맞혀 봐야지. 그 꿈 홀라당 깨기 싫어 묵히다 보면 잊어버리곤 한다. 이러다 1등에 뽑혀 놓고 기한 놓칠라. 물론 허무맹랑한 걱정이다. 여섯 숫자 중 셋 들어맞는 최소 요건도 몇 번 맛보지 못해 놓고 무슨. 이번에도 열 꼭지 중 두 꼭지에서 두 숫자 맞은 게 최고다.
당첨 번호 수효와는 딴판으로, 많을수록 좋지 못한 것이 있으니…. ‘A사 분기 가입자가 줄어든 것은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A사에서 처음이라는 뜻인데, 말이 쓸데없이 많지 않은가. ‘창사(創社) 이래’는 없어도 문맥에 들어 있어 ‘줄어든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해도 그만이니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줄어든 것은 처음이다’ 하면 얼마나 깔끔한가. 흔히 쓰는 ‘사상 초유의 일’이 딱 이런 꼴. ‘사상 처음’도 괜찮지만 그냥 ‘처음’이라 해서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런 어수선한 문장에는 대개 몇 가지 표현이 붙어 다닌다. ‘분양 중에 있는 아파트’는 ‘분양 중인 아파트’나 ‘분양하는 아파트’ 하면 되겠다. ‘고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군’도 ‘고교 3학년 김모군’ 이상으로 뭐가 필요한가. ‘현재 모집하고 있는 중’처럼 덕지덕지 붙은 군더더기는 제발 좀 떼자. ‘현재’도 ‘하고 있는’도 싹 걷어내고 ‘모집 중’으로.
‘대량생산 체제로 가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와 ‘~ 가겠다는 의미다’는 어느 쪽이 나은가. ‘학업을 그만두는 학생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도 ‘~ 많다는 뜻이다’가 훨씬 바람직하지 않을까. ‘참고인들을 상대로 심문을 벌였다’ ‘철새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은 ‘참고인들을 심문했다’ ‘철새를 조사해 보니’와 비교해 보자. 조금만 신경 쓰면 대중매체가 쏟아내는 글 속에 군살이 잔뜩 붙었음을 알 수 있다.
그나저나 정말 1등에 덜컥 걸리면 어쩐다. 쓸데가 한두 군데라야지. 고액 복권 당첨자가 다들 행복하지만은 않다던데. 부질없는 궁리, 걱정 탓인지 흰머리만 늘어간다. 무엇이든 많다고 좋은 일은 아니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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