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日 오케스트라가 부러운 이유

2024. 7. 4.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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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랑에 프로·아마 없단 인식
100년 역사 아마 오케스트라도
해외 유명 ‘필’ 방일공연 몰려도
자국 오케스트라 공연 늘 매진

‘일본에도 오케스트라가 있어?’, ‘한국 오케스트라보다 잘해?’ 상반기에 도쿄 필하모닉이 내한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도쿄필은 무려 1911년까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된 오케스트라다. 이뿐만 아니라 도쿄에는 NHK교향악단이나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 등 도쿄필보다 기량이 조금 더 뛰어난 오케스트라들이 있고, 그밖에도 도쿄 심포니, 요미우리 닛폰 심포니, 재팬 필하모닉, 뉴 재팬 필하모닉 등 도쿄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오케스트라가 정말 많다. 일본의 클래식 시장 자체가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매년 도쿄를 지나가는 유럽의 오케스트라들도 수도 없이 많다. 사실상 도쿄의 밤은 유럽 한복판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한국 오케스트라보다 잘해?’라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면,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일대일 비교가 어렵다’고 답할 수 있다. 우선 일본은 단원 개개인의 기량보다는 전체의 조직력이 뛰어나다. 오케스트라로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다. 반면 한국은 개개인의 기량이 일본에 비해 뛰어난 편이다. 실제로 한국 연주자 중에서는 유명 유럽 오케스트라에서 주요 악기 수석을 맡고 있는 경우도 많다. 또 국제 콩쿠르에서 일본보다 좋은 성적을 보여주며, 지금도 전 세계를 누비며 활약하는 독주자들도 많은 편이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또 일본 오케스트라는 리허설 첫날에 대부분의 음악이 완성된다. 미리 집에서 자신의 파트를 철저히 준비해 오는 것이다.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걸 특히 싫어하는 성향이 오케스트라 생활에도 반영된다. 그래서 처음 만들어진 음악이 공연 당일까지 큰 변화 없이 이어지는 편이다. 반면 한국은 공연 당일에 한국 특유의 ‘으쌰으쌰’가 발휘될 때가 있다. 때때로 마음만 맞으면 리허설 때 했던 음악 그 이상을 실제 무대에서 해낸다.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열정적인 기질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오케스트라가 우리보다 더 유리한 환경에 놓여 있는 건 사실이다. 일본 클래식 시장이 큰 만큼 상대적으로 더 뛰어난 지휘자와 음악을 함께해 볼 기회가 많고, 오케스트라의 경험치가 덩달아 같이 쌓인다. 콘서트 연주뿐만 아니라 일본 자국 내에서 진행되는 오페라 반주 경험까지 생각하면 한국 오케스트라와는 경험치 쌓이는 속도가 다르다.

일례로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눈부신 성과 중 하나는 2025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말러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것이다.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말러 페스티벌’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페스티벌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 등 전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들이 참여하는 축제다.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아시아 최초로 그들과 한 무대에 서게 된다.

그런데 사실 부러운 건 따로 있다. 우선 관객들의 오케스트라를 향한 애정과 관심이다. ‘우리들의 오케스트라’라는 인식이 강하다. 오케스트라들은 저마다 충성도 높은 회원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수많은 공연 횟수에도 객석이 비는 경우가 잘 없다. 그런 이유로 베를린 필하모닉이나 빈 필하모닉 같은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들의 방일 공연들이 몰리는 시기에도 자국 오케스트라의 인기는 여전하다. 그만큼 자국의 오케스트라를 사랑한다. 일례로 NHK교향악단의 주요 공연들은 선예매를 할 수 있는 유료회원들이 아니면 티켓을 쳐다보지도 못하는 일도 발생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오케스트라가 생태계다. 프로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일본에는 수많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들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중엔 프로 오케스트라를 위협할 정도로 뛰어난 단체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1956년에 창단된 도쿄의 ‘신 교향악단’은 이번 달 266번째 정기공연을 준비한다. 프로 오케스트라도 연주하기 어려운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게이오 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바그너 소사이어티 오케스트라’는 무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에 프로와 아마추어는 없다’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열정이 지금도 건강한 오케스트라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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