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이재용 회장이 결단하라

기자 2024. 7. 4.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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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위기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삼성전자의 성장을 견인했던 초격차 전략은 이미 2010년대 중반에 기술적 한계에 봉착함으로써 그 유효성을 상실했다. 이제 추격하던 SK하이닉스나 마이크론과의 기술 격차는 거의 사라졌다.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오히려 후공정에 해당하는 패키징이 더 중요해졌고, 이 기회를 도전기업인 SK하이닉스가 HBM 기술로 선점했다.

그런데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직면한 도전보다 더 중대한 문제는 파운드리 부문에서의 부진이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2024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시스템 반도체 비중은 약 78%로 예측된다. 메모리 반도체보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이 3배 이상 커진 것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2021년 1분기에 17.4%에서 2023년 4분기에는 11.3%로 줄었다. 동일한 기간에 파운드리 1위 업체인 TSMC의 점유율은 54.5%에서 61.2%로 늘었고, 양사 간 격차는 12.8%포인트로 더 벌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인텔은 2030년까지 삼성전자를 제치고 파운드리 2위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추격을 예고하고 있다. 5년 전 발표했던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글로벌 1위를 달성한다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비전 2030’이 무색해졌다.

그러나 파운드리 부문에서 삼성전자가 TSMC를 추격할 수 있는 시간은 아직 남았다. 위기란 위험요인들이 있으나 여전히 기회는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환골탈태하는 변화를 스스로 못하면 도태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갈라파고스화된 재벌이라는 소유지배구조를 가진 삼성그룹의 총수인 이재용 회장이 두 가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먼저, 이재용 회장과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계 부문을 포기하고, 징벌배상과 디스커버리 제도를 입법 청원해야 한다. 이는 삼성전자가 기존의 성공 공식이었던 수직계열화와 기술탈취를 포기하는, 경영전략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메모리 반도체는 하나의 설계로 범용재를 생산하는 방식이므로 수직계열화가 효과적이다. 그러나 시스템 반도체는 다양한 제품이 상대적으로 소량 소비되면서 위탁생산이 이뤄지는 수직 분리가 효과적인 산업 구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주요 설계와 생산을 모두 하겠다는 전략을 유지해 왔다.

사실 주요 팹리스 설계 회사들이 TSMC에 너무 의존하게 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삼성전자에 주문생산을 위탁할 유인이 수년 전부터 있었고 지금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시스템 반도체 설계도 직접 하겠다는 삼성전자에 자사의 최신 설계도를 보여주기를 꺼린다. 삼성전자가 TSMC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설계 부문을 포기해야 할 뿐 아니라, 이런 포기 선언의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징벌배상과 디스커버리제도 도입을 국회에 청원해야 한다.

미국식 징벌배상은 매출액에 비례해 배상액이 정해지고, 디스커버리 제도는 민사소송에서 원고 측 변호사가 입증 증거를 수집할 수 있도록 법원에서 피고 측을 압수수색하거나 심문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이다. 이 두 가지 제도가 결합되면 기술탈취의 유인은 억제될 수 있고, 따라서 기술탈취 후에 다시 설계 사업을 재개할지 모른다는 반도체 설계 기업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

둘째, 이재용 회장과 삼성전자는 국내 공장에서 2040년까지 RE100을 달성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재생에너지 수급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RE100 압력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서 강화되고 있는데, 특히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L은 2040년까지 고객사들이 넷제로(net zero·탄소중립)를 달성해야 장비를 판매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대응해 TSMC는 2023년 9월에 대만 공장에서 2040년까지 RE100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했고, 이런 전략적 결정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해상풍력과 태양광 발전 수급 계약을 맺었다. TSMC의 재생에너지 수급 계획처럼 구체적인 안을 삼성전자도 시급히 제시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는 아시아 지역의 반도체 공급망을 국내에 유치하기 위한 경제외교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현재 아시아 반도체 공급망을 일본에 입지하는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지진이라는 자연재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여전히 반도체 생산 기업들이 취약하다. 우리가 RE100을 지원할 재생에너지를 충분하게 확보하면, 경제안보와 반도체 생산 인프라라는 측면에서 아시아 반도체 공급망 허브를 유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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