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기괴한 시대의 희한한 물고기 앞에서

기자 2024. 7. 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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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펄 끓는 폭염, 걱정스러운 장마, 기이한 기후변화 등으로 점철되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해외토픽 하나가 눈길을 끈다. 싱가포르 해변에서 모래에 몸을 묻은 채 머리를 내민 물고기. 먹잇감을 노리는 듯 앞을 쳐다보며 입을 뻐끔거리는 모습이 영상에 잡혔다. 이 희한한 물고기는 ‘긴코 스타게이저’(Longnosed stargazer)로 밤하늘의 별을 응시하는 것 같아서 저 멋진 이름을 얻었단다. 그것은 입술이 통통하게 발달한 사람의 얼굴과 너무 흡사하다. 눈알도 뒤룩뒤룩 굴린다. 조금 무서워도 인어공주의 특별한 동생이라 여기면 봐줄 만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큰무늬통구멍이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제주와 남해안에 산다고 한다.

세상의 생물은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가. 이 사소한 질문에서 다윈의 진화론은 출발하였다. 여기에 하나 더 더할 수 있겠다. 그 다양함은 어쩌면 이렇게 모든 지면을 대접하며 골고루 분포하는가. 어느 골짜기에 가서 어떤 돌 하나라도 뒤집으면, 융단 같은 이끼 아래 저마다의 훌륭한 세계가 있다.

긴코 스타게이저, 나는 알 만한 녀석이었다. 내 고향 마을을 흐르는 시냇물은 황강의 지류로서 덕유산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을 이루고 남해로 흘러든다. 그 작은 시냇물에도 어김없이 다양한 물고기가 살았다. 긴코 스타게이저를 보는데 어릴 때 많이 잡았던 물고기들 생각이 났다. 족대 들고 들어가 돌을 들먹거리면 혼비백산하고 달아나던 물고기들. 꺽지, 피리, 띵미리, 떵가리, 망태…. 긴코 스타게이저는 그중 모래무지와 무지 닮았다.

강남 신사역 근처에 특색 있는 횟집이 하나 있었다. 진도횟집. 주인장의 여동생이 이름난 소리꾼이다. 어느 날 공연 뒤풀이를 마침 그곳에서 했다. 홀에서 소주를 홀짝이는데 룸으로 북과 장구가 들어가고 이내 떠들썩하게 군불견(君不見·그대 보지 못하는가)으로 시작하는 단가 몇 소절이 터져나왔다. 진도횟집의 수족관은 홀 가운데에 있다. 이런 소란에 아랑곳 하나 않고 수족관을 운동장처럼 빙빙 도는 물고기. 옆에서 보면 납작한 어류인데 정면으로 보면 꼭 인류 같다. 어쩌다 얼굴을 마주치면 얼른 서로 외면했던 물고기. 스스로 뱉은 물을 신작로인 듯 따라 걷던 물고기. 주방의 칼과 술꾼들의 젓가락 사이에서 나 들으라는 듯 ‘군불견’이라고 입을 뻐끔뻐끔 벌리던 어류 생각도 났다.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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