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나오시마의 기적과 민치(民治)

이동현 평택대 총장 2024. 7. 4.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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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관광지 부활한 섬…그 기적의 핵심은 민치
韓어촌 뉴딜 관이 주도…기업·주민이 주체 돼야
이동현 평택대 총장

섬 전체가 현대미술 작품으로 뒤덮여 있는 곳이 있다. 미술과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은 물론 최근에는 일반인도 자주 방문하는 섬이다. 일본 가가와현과 오카야마현 사이에 있는 여의도 면적만한 섬 나오시마가 바로 그곳이다.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나오시마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30여 년 전 구리 채광이 주력산업이었지만, 구리제련소에서 쏟아내는 폐기물은 섬을 황폐화시켰고 주민은 떠나기 시작했다. 환경 파괴로 버려져 있던 섬이 세계적 관광지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오카야마의 한 출판기업의 오너인 후쿠타케 소이치로로부터 시작된다. 1992년 그는 나오시마에 갤러리와 호텔을 겸한 ‘베네세하우스 뮤지엄’을 세웠다. 기업 메세나의 일환이었는데, 이곳은 나오시마 예술 체험의 중심축이 된다.

후쿠타케는 2004년에 세계 최초의 지하미술관인 지추(地中) 미술관을 세웠다. 자연훼손을 막기 위해 지하로 지은 것인데 자연채광을 살렸다. ‘자연과 건축, 예술의 공존’이 바로 나오시마 개발의 테마다. 이제는 인구 3000여 명이 사는 섬 나오시마에 매년 50만 명의 방문객이 찾아오고, 예술제가 열리는 해에는 100만 명까지 찾아온다.

우리를 비롯한 전 세계 어촌은 고민이 많다. 어촌 특유의 폐쇄성에다 고기잡이에 대한 높은 진입장벽, 편의성과 인프라 부족 등은 젊은 세대가 수산업을 기피하게 만들면서 어촌 고령화와 인구소멸을 불러온다.

나오시마와 우리 어촌을 비교하면 여러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나오시마에서 일어난 일은 어업 활성화, 어항 재개발 등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니다. 후쿠타케는 ‘경제는 문화의 종복이어야 한다’는 기업철학을 갖고 ‘베네세’를 그룹명으로 삼았다. 라틴어로 ‘잘 산다’는 뜻의 ‘베네세’를 이루려 한 것이다. 공익 자본주의라고도 할 수 있고, 기업 메세나로 볼 수도 있고, 최근 세계적인 흐름인 ESG와도 맥이 닿아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되어 윤석열 정부까지 이어져 오는 ‘어촌 뉴딜 300’이 있다. 해양수산부 창설 이래 최대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사업은 전국 어촌·어항 기반시설을 현대화하는 어촌생활 SOC사업이다. 해수부는 가고 싶고 살고 싶은 어촌의 접근성을 위해 해상교통시설 현대화, 어촌의 핵심자원을 활용한 해양관광 활성화, 어촌지역의 공동체 역량 강화 등을 내세우고 있다.

주도자에서도 비교가 된다. 나오시마에서 시행된 ‘이에(집) 프로젝트’는 기업인 후쿠타케가 주도한 것이다. 그는 주민설명회만 2000 번 이상 열었다고 한다. 폐가 절 치과 소금창고 등을 사들여 한 건물이 한 작가의 갤러리가 되도록 했다. 한 개인의 의지와 기업의 재정적 후원을 통해 마을 주민이 혼연일체가 된 것이 오늘날 나오시마의 기적을 만든 것이다. 나오시마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관이 아닌 민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어촌 뉴딜은 해수부가 주도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이러다 보니 기업과 주민의 주도적 역할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몇 가지 문제점도 지적된다. 감사원은 사업지 선정 과정에 있어서 해수부가 공정하지 못했고 대상지의 체험프로그램이나 지역특화상품 등이 방치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지속성이 의문이고 관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나오시마처럼 민간이 자발적으로 주도한다면 이런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나오시마의 대부분 집은 문을 개방해 관광객이 내부를 살짝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거나, 작품 제작과 전시에도 주민이 직접 참여한다. 주민 얼굴에도 생기가 넘쳐나고, 지나가는 방문객과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주민 자신이 미술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야말로 주민이 중심이 되어 섬을 운영하고 있는 현장이다.

반면 어촌 뉴딜 사업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많은 도시재생 사업은 중앙정부 또는 지방정부가 개발사업에 돈을 뿌리는 방식인 경우가 많다. 기업과 함께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민치(民治)가 아닌 공무원들의 관치(官治)가 앞서는 것이다. 지방자치가 진행되면서 역설적으로 관치가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앙정부가 갖고 있는 권한이 단지 지방정부로 이양됐을 뿐, 민간의 자율성을 규제로 막아온 관치는 여전하지 않나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방에서 관치는 오히려 이전보다도 더 맹위를 떨치는 셈이다.


희망은 후쿠타케처럼 민간이 직접 지역을 살려 나가려는 시도에 있다. 기업이 지역과 주민을 위한 일에 적극 나서야 하고, 주민은 지역을 살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야 한다. 관은 이러한 민의 자발적인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bottom-up) 움직임을 북돋아 주고 지원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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