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주한미군 경제가치 규명한 소신학자… "70세는 新중년, 원로 호칭 과분"

한기호 2024. 7. 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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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명지대 경제학과와 맺은 32년6개월의 세월 '신의선물'
"국민의힘, 집권 후 정치적 지지기반 다지는 노력 안해
민주당서 종합부동산세 개편 언급한 것은 발빠른 변신"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로서 소속 단체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는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제공>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로서 소속 단체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는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제공>
지난 4월30일 바른사회시민회의가 '4·10 총선 결과 해석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주제로 개최한 긴급토론회에서 조동근(왼쪽 두번째) 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바른사회시민회의 제공>

"'원로'는 과분합니다. 기대수명이 늘었으니 70세는 신(新) 중년입니다. 하루로 치면 해지기 전 늦은 오후입니다. 열심히 독서하고 사고하면서 생각을 더 정교하게 다듬을 때입니다… 교수는 단편적 지식을 전달하는 직업이 아닙니다. 자신이 견지해야 할 이념과 가치를 선택해야 하는 지식인입니다."

1953년생인 조동근(71·사진)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디지털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원로급 경제학자로 언론 기고와 시민사회 활동으로 경제 정책·현안에 꾸준히 목소리를 낸다'는 질문에 "격조 있어 보이는 '원로급 경제학자'란 칭호가 붙었다"면서도 이처럼 몸을 낮췄다.

조 교수는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했지만 같은 대학교 경제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신시내티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가 됐다.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로 30년 넘게 강단에 선 뒤 은퇴했다. 학계에선 한국재정정책학회 회장, 한국하이에크 소사이어티 회장,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했다.

'건축공학도에서 출발해 경제학자가 된 이유'에 대해 조 교수는 "'한 우물을 파라'는 권고에 비춰 '갈 지'(之)자 행보를 했다. 71학번인데, 그땐 '산업화 시대'라 공과대학을 많이 갔다"며 "남산에서 내려다본 서울 하늘이 온통 타워크레인으로 덮여있었고, 그 역동성에 반해 건축과 진학을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막상 진학하고 보니, 건축을 전공하기엔 '예술적 영감'이 부족했다. '연옥의 과정'을 거쳐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shift left'란 영어 표현처럼 글을 읽을 때 왼쪽부터 읽듯,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선택한 전공이 경제학"이라며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으로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깊이 천착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남을 가르친다'는 건 그 사람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가슴 벅찬 일이다. 절차탁마하고, 정직하고 겸손해야 강단에 설 수 있다. 명지대 경제학과와 맺은 '32년 6개월'의 세월은 '신의 선물'이었다"면서 "가르치려면 '사상적 나침반'을 가져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를 기준으로 가르치고 사고했다"고 밝혔다.

학자로서의 소신이 정치적 압력에 부딪힌 적 있는지도 물었다. 조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사의 '정의가 실패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실패한 대한민국에 동의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의 '진보적 함의'는 '자유의 신장'"이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국정목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문 전 대통령이 주창한 '촛불혁명과 광장민주주의' 그리고 '소득주도성장'에 반대하고 비판하는 글을 수도없이 썼다"며 "좌파진영에 난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압력을 받았는지'를 밝힐 순 없다. '조동근 교수는 강하다'는 인식을 줬기에 '부딪치면 서로 다친다'는 공감대가 완충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우파 지식인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 활동을 20여년 이어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바른사회는 2002년 3월 창립됐다. 김대중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김대중 정권은 'IMF 외환위기'란 급한 불은 끄면서도 점차 좌경화했다"며 "노무현 정권 창출 후 '자유와 시장'이 질식될 지경이었다"고 했다.

특히 "바른사회는 초유의 우파시민단체다. 노무현 정권 들어 '반미(反美)정서'가 온통 한국을 뒤덮었다. 공교롭게도 미군 장갑차에 효순·미순 양이 희생됐다. 고의 아닌 과실로 인한 교통사고인데도 '주한미군 철수' 주장에 불을 붙였다"며 "시민단체 역할이 극히 제한돼 착안한 것이 '주한미군의 경제적 가치 추정'이었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의 경제적 가치 추정'은 미군 철수 시 한국 방위비 증액이 불가피해 GDP(국내총생산)이 매년 1.2%씩 줄어든단 취지로 조 교수가 2006년 4월 발표한 논문이다. 그는 "선동 아닌 과학으로 문제를 바라보자는 제안이었다. 주한미군 장비를 인수할 때 지불해야 할 경비로 한국 GDP가 얼마나 감소하는지 시산(試算)해 냈다"고 설명했다.

바른사회는 지난 4월말 긴급토론회를 열어 제22대 총선 결과를 평가했고, 조 교수는 보수여당 안팎의 '중도 외연확장론'에 관해 "산토끼를 좇을수록 집토끼는 달아난다"며 자유 이념정당으로의 길을 택하라고 쓴소리했었다. 비판 이유로 그는 "정당은 '이념의 유통업'이다. 이념이 없다면 정당이 아닌 정파에 불과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조 교수는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참패했음에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변변한 세미나조차 열지 않았다. 실패를 '실패학'(failure science)'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며 "총선 결과로 봤을 때, 대선을 0.73%포인트차로 근소하게 이긴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집권 후 정치적 지지기반을 다지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집토끼의 충성심이 높다면 외연확장이 유효한 전략이지만 산토끼를 좇을수록 집토끼는 달아난다"며 "자유민주주의와 집단전체주의 간엔 제3의 길이 없다. 젊은 당원을 대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확신을 갖게 하는, 미국 보수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샤론 선언문'에 필적하는 선언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치권의 조세정책 논의 변화 흐름으로 야당을 평가했다. 조 교수는 "종합부동산세는 더 이상 부자를 대상으로 한 세금이 아니다. 서울에 웬만한 집 한채 가져도 종부세 부과 대상"이라며 "민주당에서 종부세 개편 논의를 언급한 건 서민뿐만 아니라 중산층도 보듬는 정당임을 대내외적으로 보여주는 발빠른 변신"이라고 말했다.

소상공인업계에서 요구한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 논의에 민주당 일각이 반응했던 것에도 그는 "편협한 정당이 아니라고 '보여주려는 것'(showing)"이라고 평한 반면 "국민의힘은 금투세 폐지, 상속세 경감 등을 강조하면서 이들 정책이 국가경젱력 제고 차원에서 응당 시행됐어야함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고 쓴소리했다.

다만 정치권 전반은 사법리스크·특검·탄핵으로 얼룩져 있다. 조 교수는 "발전적 토론이 실종됐는데,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이다. 패널 구성에서 좌·우파 균형이 맞지 않는다. 한국적 현실에서 '어느 진영, 누구에게 기회를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력이 언론인데 국민의힘은 우파 지식인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결과 우파시민단체의 우수한 인력이 이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당정을 향해서도 "토론은 입장 다른 사람·집단이 '윈-윈' 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으로 '교호(交互)작용과 내생성'이 중요하다. 어떤 권위있는 자가 미리 결론을 내고 회의에 붙였다면 토론일 수 없다. '의대 증원 2000명'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충고했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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