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드시러 오세요".. '목요 국수맛집'이 행복한 이유 [삶맛세상]
[편집자주] 팍팍한 세상. 사람 냄새 느껴지는 살맛 나는 이야기, 우리 주변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국수 면은 씻는 방법에 따라 맛이 달라져요. 전분기를 최대한 빼서 쫄깃하게 드실 수 있도록 많이 신경 쓰죠."
알맞게 삶아진 국수 면을 빠른 손놀림으로 찬물에 헹궈 1인분씩 소분하던 김도희(56)씨가 말했습니다.
매주 목요일, 제주시 오등동의 한 조리시설에선 우리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초청해 국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봉사가 진행됩니다. 7월의 첫 목요일인 오늘(4일)도 아침 9시부터 조리시설과 테이블 22개의 식당 시설을 갖춘 '봉사의집'엔 봉사자들이 모였습니다.
'꿈드림봉사단' 봉사단원들은 분주했습니다. 점심시간 1시간 동안 100명에 육박하는 아주 특별한 손님들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국수에 올릴 오겹살을 삶고 육수를 끓입니다. 멸치를 기본으로 하는 육수엔 새우와 다시마, 양파, 대파, 마늘, 생강 등 여러 가지 재료가 넣어 감칠맛을 끌어올립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은희 봉사단 총무의 노하우가 녹아든 육수가 1시간 반만에야 완성됩니다. 다 만든 육수엔 고명으로 얹을 노란 유부도 삶습니다. 같이 올릴 쪽파 고명을 총총 채 써는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머리 두건을 질끈 매고, 마스크를 쓴 김도희 총무는 가게 일을 제쳐두고 온 봉사에서 "오히려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했습니다.
수저를 세팅하고, 회심의 밑반찬인 김치까지 반만의 준비가 갖춰지고 한가해질 때쯤 손님들이 입장합니다. 오늘은 제주도립노인요양원 주야간보호센터에 다니는 치매 어르신을 비롯해 인근 복지시설 입소자 등 3팀이 손님으로 왔습니다.
■ "맛있어요" 연발.. "가장 기다려지는 날"
이날 봉사의 집을 찾은 손님들은 오랜만에 하는 외식에 들뜬 모습을 보였습니다. 식당 곳곳에서 "맛있어요"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한 젓가락 가득 면을 건져 삼킨 한 손님은 인터넷 '먹방 스타' 못지 않은 기량을 뽐냈습니다. 그릇을 들어 국물 한 방울까지 알뜰하게 마시는 손님도 눈에 띄었습니다.
사회복지시설 무지개마을에서 온 김모씨는 "오늘 처음 와서 식사를 하는데 정말 맛있다. 특히 김치가 너무 맛있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복지시설 관계자들은 입소자들이 밖에서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는 이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움츠러든 봉사단체들의 활동 속에서 단비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이명자 도립노인요양원 주야간보호센터 팀장은 "치매 어르신의 경우 문제 행동이 언제 나타날지 몰라서 가족분들도 어르신을 모시고 외식을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공간 전체를 사용해 우리끼리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어르신들도 마음 편하게 식사를 하신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설거지를 맡은 봉사자 김현진(55)씨는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물로 설거지를 하며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도 힘든 기색이 없습니다. "덥죠, 더운데 이렇게 앞에서 어르신들이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 힘이 나요." 김씨가 설거지를 하는 개수대 정면으론 복지시설 입소자들이 식사를 하는 모습이 펼쳐져 있습니다.
■ '목요 국수 봉사' 봉사단체-취약계층 연결하는 '봉사 허브'
매주 목요일 국수 봉사가 이뤄지는 '봉사의집'은 제주미래에너지라는 업체에서 지난해 10월쯤 건립했습니다.
10년 전쯤 해오던 목욕 봉사를 중단한 이후, 최근에 제주시 오등동에 새 사옥을 올리면서 유휴 부지를 활용해 봉사의집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건설비용은 회삿돈이 아니라 업체 회장의 사재가 들어갔습니다.
초기엔 '우리가 직접 해보고 알아둬야 한다'는 생각으로 봉사단체 없이 업체 직원들이 직접 국수를 끓이고 봉사를 했습니다. 회사 구내식당 '이모님'을 초빙해 국수 삶기부터 배웠다고 합니다.
현재는 봉사단체와 복지시설을 연계시켜 봉사활동이 지속되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업체가 장소와 재료비를 제공하고, 봉사자들이 나와서 봉사를 하는 식입니다. 첫째, 셋째 목요일엔 꿈드림봉사단이, 나머지 둘째, 넷째 목요일엔 동광성당과 한림성당에서 나와 봉사를 합니다. 9개 복지시설에서 순차적으로 식당을 찾아 식사를 합니다.
업체 관계자는 "국수를 드시러 오는 분들도 좋아하시지만, 봉사를 하는 분들의 얼굴이 더 좋아 보인다"며 "그렇기 때문에 봉사를 계속하시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했습니다.
인터뷰를 한사코 사양하던 이근실 회장은 "제가 (사비로)재료를 대고, 회사에서 전기와 가스를 제공하고 봉사자님들이 나와서 요리를 한다. 누구 하나 빠져선 봉사가 지속될 수 없다. 우리도 봉사의 일부일 뿐"이라고 짧게 말했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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