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5.성남 디자인코리아뮤지엄

경기일보 2024. 7. 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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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분당구 코리아디자인센터에 위치한 디자인코리아뮤지엄은 국내 디자인 사료 5만여 점 이상을 소장 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디자인전문박물관이다. 코리아디자인센터 전경. 윤원규기자

 

유럽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비싸게 팔리는 TV와 냉장고가 한국산이다. 휴대전화와 자동차도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제품의 성능은 물론이고 디자인도 빼어나기 때문이다. 1980년대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이제는 한국 제품을 평가할 때 ‘K-디자인’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한국의 제품이 어떻게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성남시 분당구 양현로 322에 있는 ‘디자인코리아뮤지엄’(관장 박암종)은 그 역사와 비결을 알려주는 곳이다. 디자인코리아뮤지엄의 전신은 2008년 서울 마포구 창전동에 열었던 ‘근현대디자인박물관’이다. 2019년 6월 성남시 분당구에 자리한 코리아디자인진흥원은 ‘디자인으로 강해지는 대한민국 경제’를 추구하는 공립기관이다. 디자인진흥원 지하 1층에 디자인코리아뮤지엄이란 새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연 박 관장은 감사한 마음을 이렇게 전달한다. “코리아디자인진흥원이 창립 50주년을 맞아 공간을 제공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습니다. 정부나 지자체가 공간을 제공하고 사립 박물관이 콘텐츠를 채우는 좋은 사례라 할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이전 사용된 태극기의 모습이 전시되고 있는 1관 태동기. 윤원규기자

■ 태극기부터 2002년 월드컵 축구공까지

역사적 가치가 높고 희귀성이 있는 유물 1천600점을 전시하고 있는 디자인코리아뮤지엄 곳곳에는 설립자의 정성과 반짝이는 생각이 스며들어 있다. 밤하늘을 수놓는 북두칠성을 본떠 전시 공간을 일곱 개로 나눈 것도 마찬가지다. 국내 근현대 디자인의 발전 및 변화 과정을 개화기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140여년의 역사를 아우르고 있다. 첫째 공간은 ‘태동기’라 이름한 1876년 개항부터 일제에 나라를 잃은 1910년까지다. ‘세계 근대 문화의 유입과 디자인 개념의 태동’을 보여주는 이 공간은 최초라는 수식어를 단 희귀한 근대 유물로 가득하다. 최미홍 학예사의 안내로 한국디자인의 역사를 살펴본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과 순종 및 영친왕의 사진이 인쇄된 액자에서 금박의 태극 문양을 발견한다. 태극기는 언제부터 우리나라를 상징하게 됐을까? “1882년 미국에서 펴낸 해양 국가를 소개하는 책자에 태극기가 처음 실렸습니다.” 우리나라 디자인의 시작을 알리는 태극기가 최초로 실린 역사적인 책을 다시 꼼꼼히 살펴본다. 1873년 일본에서 펴낸 ‘지구국명’이란 책도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이 책에 실린 ‘조선국기’에는 청룡이 그려져 있다. 태극 이전에는 청룡이 우리나라를 상징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882년 이후 태극 문양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우리나라 근현대 디자인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조망할 수 있다. 윤원규기자

1896년 창간한 최초의 순한글 신문인 ‘독립신문’ 제호 ‘독립’과 ‘신문’ 사이에 태극기를 넣었고 1908년 최남선이 창간한 최초의 월간 잡지 ‘소년’에도 태극 문양을 사용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 ‘한성순보’와 국한문 혼용의 최초 농서 ‘농정촬요’, 그리고 민간인에 의해 출판된 최초의 근대 출판물인 ‘충효경합벽’, 대한제국 학부에서 발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정 미술 교과서 ‘도화임본’도 만나볼 수 있다. 이처럼 전시실에는 ‘최초’라는 수식어에 어울리는 유물이 가득하다.

“우리 박물관은 개화기부터 2000년대까지 최초의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을 여러 가지 전시하고 있지요. 전체 7개 섹션으로 1876년 개항부터 2002년 월드컵까지 중요한 키포인트가 되는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개화기를 거쳐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룩한 디자인 결과물들을 보면 민족성을 지키면서 문화적 적응력을 가지고 활동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초의 태극기부터 현대까지 우리나라 디자인을 7개 섹션으로 구분, 흐름을 시대순으로 만나볼 수 있다. 전시장 전경. 윤원규기자

■ 유물에서 발견하는 한국인의 미감과 창조성

두 번째 공간은 1910~1945년 일제강점기를 다루는데 ‘정체기’라 표현했다. 일제에 국권을 강탈당한 식민시대의 디자인은 어떤 모습일까. 검은빛이 감도는 유리병에 ‘활명수’란 글자와 쥘부채 문양이 선명하다. 활명수는 1897년 민병호가 국민 보급을 위해 궁중의 비방과 서양 의학을 접목해 개발한 국내 최초의 양약이다. 활명수에 새겨진 쥘부채는 1910년 국내 최초로 특허국에 등록한 최장수 상표이기도 하다. 식민의 어두운 시대에도 한국인의 창조성은 빛을 발휘한다. 1930년대에도 짝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당시 여성들에게 ‘박가분’은 인기 만점의 상품이었다. 진열장에 나란히 놓인 ‘박가분’과 ‘촌가분’ 통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하다.

“박(朴)과 비슷한 한자 촌(村)을 사용한 ‘촌가분’은 짝퉁입니다.” 설명을 듣고 자세히 살펴보니 비로소 구분된다. 촌가분보다 발전된 디자인을 보여주는 ‘한양분’을 거쳐 ‘설화분’에 이르면 디자인도 창조적으로 진화한다. 고무신 의장등록증, 춤추는 남녀의 다리와 오선지가 그려진 성냥갑 같은 유물은 1930년대 식민지 문화를 충실히 증언하고 있다. 마침내 광복이 되자 온 천지를 뒤덮었던 일본어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한글의 시대가 열렸음을 민의원 선거 벽보나 반공 포스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깡통을 잘라 만든 호롱불과 유리통에 심지를 넣은 남포등은 분단과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고단한 시절을 증언한다. 이런 궁핍한 시절에도 ‘사상계’를 비롯한 다양한 잡지가 발행돼 지식의 갈증을 풀어줬다. 안내하던 최 학예사가 라디오 앞에서 멈춰 선다. 이 작은 라디오는 무슨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까. “이것은 우리나라 최초 라디오인 ‘금성 A-501’입니다. 우리 박물관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유물이지요. 1958년 금성사(현 LG전자)가 출시한 국산 1호 진공관 라디오인데 기적처럼 탄생한 가전제품입니다.” 유럽인들의 안방을 점령한 TV와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의 시작을 알리는 유물을 다시 들여다본다.

국내 최초의 흑백 TV, 최초의 전기냉장고 등 근대 생산된 다양한 전기제품이 전시되고 있다. 윤원규기자

■ 유물로 쓴 한국 디자인 140년의 역사

천재 시인 이상이 디자인한 김기림의 시집 ‘기상도’, 의학박사 공병우의 세벌식 한글 타자기, 최초의 가로쓰기 월간 잡지 ‘뿌리깊은나무’ 등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되고 도입됐던 다양한 디자인 사료들은 잘 챙겨봐야 할 유물이다. 국내 최초 가전제품 체신 자동 1호 전화기, 금성사 냉장고 GR-120, 금성사 텔레비전 VD-191, 삼성 휴대전화 SH-100도 만나볼 수 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던 교수가 한국 근현대사가 담긴 디자인 유물을 30년간 수집한 계기는 무엇일까. 여러 인터뷰를 참고하면 화봉문고 여승구 회장과의 인연으로 수집에 나선다. 어느 날 여 회장이 월력이 그려진 목판화 두 점을 구해 그중 하나를 박 관장에게 선물한다. 박 관장은 자신을 수집가의 길로 이끌어 준 여 회장에게 깊이 감사한다. 아무튼 이런 인연으로 박 관장은 30년에 걸쳐 국내 라디오, 타자기, 선풍기, 냉장고, 세탁기, 컴퓨터, 맥주병, 소주병 등 디자인이 가미된 ‘최초’의 산업재를 수집한다. 수집은 시각디자인 전공자인 박 관장을 한국 디자인사 전문가로 거듭나게 한다. 1995년 월간 디자인 편집장의 제의로 ‘한국디자인 100년사’를 6회에 걸쳐 연재하고 박사학위 논문도 디자인사를 다뤘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의 다양한 포스터들이 전시되고 있다. 윤원규기자

디자인의 가치에 주목하고 사비를 털어 박물관을 설립한 박암종 관장의 활동이 궁금해진다. 선문대에서 디자인을 가르친 박 관장은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장, 서울시박물관협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 상임고문과 한국사립박물관협회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 디자인계의 중진이다. 박 관장에게 앞으로 계획을 들어본다.

“우리나라 디자인사의 중요 유물을 꾸준히 찾아내 소장하고 연구해 상설전과 특별전을 통해 우리 생활에서 디자인의 가치와 유용성을 인식시켜 나가고자 합니다. 정부의 박물관 활성화 정책에 발맞춰 인증제에 대비한 소장 유물의 디지털화를 구축하고 학생 체험프로그램도 더욱 풍부하게 마련할 계획입니다.”

디자인코리아뮤지엄을 찾으면 디자인 한국의 미래를 예감할 수 있다. 이 여름 우리 생각의 물길을 시원하게 열어줄 디자인코리아뮤지엄을 찾아 성남으로 나들이를 떠나보자. 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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