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발만 쓰란 미션이 주어지면 오른발은 쓰지 않았다” 김동준의 회상 “故 차기석 코치님이 지금의 날 만들어” [이근승의 믹스트존]
김동준(29·제주 유나이티드)은 프로에 데뷔하기 전부터 축구계 눈을 사로잡았던 재능이다. 김동준은 연령별 대표를 두루 거쳤다. U-23 대표팀 시절엔 2016 리우 올림픽 본선 조별리그 2차전 독일과의 맞대결에 출전하기도 했다.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2015년엔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됐다. 김동준은 2010년 김보경 이후 5년 7개월 만에 대학생 태극전사였다.
김동준은 2016시즌 성남 FC에서 프로에 데뷔해 대전하나시티즌을 거쳤다. 2022시즌부턴 제주 골문을 책임지고 있다. 김동준은 여전히 K리그1 최정상급 골키퍼로 꼽힌다. 철저한 자기관리가 꾸준함의 비결이다.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 클럽하우스에서 전하는 김동준의 이야기 1편(재계약? 이적? ‘제주 수문장’ 김동준의 진심 “나의 1순위는 제주다”)에 이은 2편이다.
큰 부담은 없는데 한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체중이 잘 안 빠져요(웃음). 운동량을 늘려도 잘 안 빠집니다. 제가 87kg일 때가 몸이 가장 좋거든요. 요즘엔 식사량을 조금만 늘리면 89kg에서 빠지질 않으니 고민입니다. 운동량을 확 늘려서 살을 너무 빼버리면 경기력에 영향을 주거든요. 그래서 식단과 식사량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Q. 운동선수가 아니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1, 2kg 차이가 경기력에 큰 영향을 줄까.
눈에 띄는 차이가 없을 순 있겠죠. 다만 선수 본인이 느끼는 심리 변화가 있어요. 정말 좋았을 때의 몸무게면 편안한 거예요. 그런데 1kg이 늘어난 상태에서 경기를 뛰면 무실점으로 마쳤더라도 이런 생각을 해요. ‘내가 왜 1kg이 늘었지. 몸 관리를 잘 못하고 있는 건가’ 하는 거죠. 선수가 느끼기엔 몸무게가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력이 없진 않은 것 같아요. 분명한 건 몸무게가 평소보다 늘어나면 부상 위험도 역시 따라서 늘어난다는 거죠.
Q. 연령별 대표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선방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매 경기 빼어난 선방 능력을 보여준 까닭에 김동준이 몸무게로 고민한다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듯해요.
제가 (조)현우 형처럼 선방 능력이 어마어마한 선수는 아니에요(웃음). 더 과거로 가면 김병지 선배처럼 날렵한 골키퍼는 아닙니다. 개인적으론 이운재 선배나 (정)성룡이 형처럼 묵묵히 골문을 지키는 유형이 아닌가 싶어요. 다들 훌륭한 선배들이셔서 제가 감히 평가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제 생각은 그래요.
솔직히 말하면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K리그1은 한국 최고의 무대잖아요. 그 무대에서 주전으로 뛴다는 건 기본기, 운동 능력 등에서 최고 수준이란 거거든요. 비디오 분석 등을 해봐도 정말 비슷해요. 딱 하나 차이가 있다면 자신감입니다. 얼마만큼의 자신감을 갖고 그라운드에 들어서느냐가 골키퍼의 평가를 가르는 것 같아요.
Q. 차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또 있습니까.
있죠. 두 번째는 노련함입니다. 제가 성남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을 때가 23살이었거든요. 최근에 23살 때 제 경기를 노트북으로 봤습니다. 현재의 저와 당시 저의 차이는 어마어마합니다. 경기 운영 자체가 달라요. 성남 시절엔 ‘마음이 급하다’는 게 보입니다. 여유가 없다 보니 위치 선정이 애매할 때가 많았더라고요. 조금 더 좋은 위치에 있었다면 더 쉽게 볼 처리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거죠.
Q. 노련함이란 걸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상대가 크로스를 올려요. 골키퍼는 빠르게 판단해야 합니다. 이 공을 잡아낼 것인지 쳐낼 것인지. 쳐내야 하는 걸 다시 나눠보면 가까운 곳으로 쳐낼 것인지 멀리 쳐낼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노련미가 쌓이면서 최대한 안정된 선택을 할 수 있는 판단력이 늘어난 것 같아요. 그래서 중요한 게 경기를 최대한 많이 뛰어야 한다는 겁니다. 꾸준히 경기에 나서야 더 좋은 골키퍼로 성장할 수 있는 거예요.
어렵네요. 골키퍼란 포지션이 출전 기회를 잡기가 어렵긴 합니다. 저는 U-18~20 대표팀 시절 후보 골키퍼였어요. 당시 주전은 (이)창근이 형이었습니다. 창근이 형이 저보다 1살 위고 실력도 좋았어요. 저는 이 현실을 인정했습니다. ‘창근이 형이 나보다 잘하니깐 경기에 나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중요한 건 이다음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해야 창근이 형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Q. 결론은 훈련이군요.
뻔한 얘기 같지만 방법은 하나에요. 훈련입니다. 주전으로 뛰는 선수를 질투하고 자격지심(自激之心)까지 느껴버리면 그 선수는 성장할 수 없어요. 저는 창근이 형을 보면서 내가 배울 건 무엇이 있을지 늘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창근이 형이 쉴 때도 운동했어요. 2, 3배로 했습니다. ‘내게도 반드시 기회가 주어질 것이고, 그 기회를 무조건 잡는다’는 생각으로요. 골키퍼는 이 한 번의 기회를 잡아내지 못하면 주전으로 도약할 방법이 없습니다.
Q. 경기 출전 기회를 잡는 게 다른 포지션보다 확실히 어려운 듯합니다.
우리 팀에 막내 골키퍼가 있어요. 임준섭이라고 2003년생인 친구입니다. 팀에서 네 번째 골키퍼죠. 준섭이가 저와 3년째 함께하고 있는데 정말 많이 늘었어요. 훈련장에서 슈팅 막는 거 보면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한 번은 미니게임을 하는 데 제가 실점을 많이 내줬어요. 실수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준섭이는 ‘실점이다’ 싶은 것까지 다 막았어요.
그런데 실전엔 변함없이 제가 나섰습니다. 저의 컨디션이 훈련장에서 썩 안 좋았는 데도 말이죠. 팀에서 네 번째 골키퍼가 주전 선수를 제칠 방법은 냉정하게 말해서 없어요.
준섭이의 연차마다 달랐던 듯해요. 준섭이가 신인일 땐 정말 게을렀습니다(웃음). 준섭이 키가 195cm에요. 체격 조건이 정말 좋은 데 운동을 안 하는 거야. 그래서 제가 운동시켰어요. 몸이 너무 말라서 운동 끝나면 먹을 것도 많이 사줬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살 좀 붙을 수 있도록 신경 쓴 듯해요.
그런데 이 친구가 무릎을 다쳐서 수술대에 올랐어요. 2년 차 땐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아픈 상태에서 제가 ‘이거 해라, 저거 하라’고 하면 역효과가 날 것으로 봤거든요. 지금은 몇 가지만 이야기합니다. 핵심은 ‘네가 어떤 스타일의 골키퍼로 성장할지 명확히 알라’고 하죠. 팀에 저를 비롯해 세 명의 골키퍼 선배가 있잖아요. ‘이 가운데 한 명이 네가 목표로 하는 골키퍼와 스타일이 비슷하다면 하나하나 배우라’고 했어요.
‘만약 네 스타일이 없다면 유튜브를 보라’고 했습니다. ‘국내든 국외든 상관없다’고 했고요. 제가 그랬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조 하트, 테어 슈테겐 영상을 매일 챙겨봤습니다. 지금도 봐요. 세계 최고 골키퍼들의 손동작 하나하나 빠트리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훈련장에서부터 그들의 몸동작을 다 따라 하려고 했고요. 막는 거부터 빌드업까지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저는 준섭이에게 솔직하게 얘기해줘요. ‘지금처럼 이 악물고 선배들에게 배울 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한 뒤 더 땀 흘리라’고. 그리고선 ‘경기에 뛸 수 있는 팀으로의 이적 기회가 온다면 무조건 잡으라’고.
Q. 김동준의 빌드업 능력이 좋은 데는 조 하트, 슈테겐의 영향이 있었군요.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빌드업 능력을 키웠습니다. 고(故) 차기석 코치님이 제 은사였어요. 차 코치께서 제게 매번 해준 말이 있습니다. 코치님은 “네 체격조건이나 막아내는 기술을 보면 당장 프로에 가도 상관없다. 하지만, 프로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차별점이 있어야 한다. 너는 양발을 다 쓰지 않냐. 그 양발의 장점을 너만의 강점으로 만들어 보자‘고.
Q. 김동준의 대학 시절이 스페인이 세계 축구계를 호령하던 2010년대 초중반이죠?
그때예요.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가 독일 축구 대표팀에서 최종 수비수 역할까지 해냈던 그 시기입니다. 차 코치님에게 그 얘길 듣고 훈련에 나섰어요. 대학교 땐 고교 팀과 연습경기를 자주 했습니다. 코치님은 경기마다 미션을 주셨어요. ‘오늘 전반전엔 왼발만 쓰라’고 하면 진짜 왼발만 썼어요. 킥이든 패스든 실수가 나도 왼발만 써야 했습니다. 만약 오른발을 쓰면 추가 훈련을 한다든가 하는 등의 벌칙이 주어졌죠.
그런 훈련들이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당시 연세대 구성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하프라인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노이어처럼 최종 수비수 역할까지 한 거죠. 보통은 압도적인 흐름으로 경기를 이어가다 보니 저 또한 막는 것보단 패스할 때가 많았습니다. 골키퍼의 발기술이 중요하다는 걸 프로 생활을 시작하기 전 깨우친 게 좋았던 것 같아요. 여기서 한 가지 재밌는 게 뭔지 아세요?
차 코치님은 노이어를 별로 안 좋아하셨어요. 제게 늘 ‘잔루이지 부폰이 최고’라고 하셨습니다. 노이어는 늘 실수의 위험을 안고 있지만 부폰은 아니었잖아요. 부폰은 안정감에 있어선 역대 최고의 선수 아닙니까. 코치님이 “부폰이 최고”라고 하시길래 물어봤어요. 왜 저한텐 ‘도전적으로 하라 하느냐’고.
Q. 차기석 코치의 답은 무엇이었습니까.
코치님은 제게 “너는 장점이 많다. 지금부터 준비해서 실수를 안 하면 되지 않느냐. 너라면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빌드업 능력을 갖춘 골키퍼가 되기 위해 많은 땀을 흘렸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대학교 시절 차 코치님의 지도를 받은 덕분에 어떤 역할을 맡든 소화해 낼 수 있는 골키퍼로 성장했습니다. 코치님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에요.
남자로 태어났으면 한 번쯤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 봐야죠. 저는 K리그1에서 최고의 골키퍼로 인정받고 싶어요. 하지만, 개인적인 욕심으로 팀에 폐를 끼치고 싶진 않습니다. 그래선 안 되는 거고요.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생각합니다. 나는 오늘 얼마만큼의 후회를 남겼나. 하루하루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팬들에게 더 좋은 경기력을 보이고 싶습니다.
저도 한때는 국민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스타의 삶을 꿈꾸기도 했어요. 지금은 소박하게 제가 해야 할 일에 충실히 하고 싶습니다. 제주를 응원해 주시는 팬들을 한 번이라도 더 웃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소박해졌어요(웃음).
Q. 소박함이라. 겸손한 거 아닙니까.
제주도에서 생활한 뒤로 정말 많은 게 바뀌었어요. 소소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았다랄까. 제가 최근 커피 기계를 하나 장만했어요. 아침 출근 전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서 마시는 시간이 아주 좋은 겁니다. 하루하루 새로운 맛을 맛보는 기쁨도 있고요. 새로운 취미인 캠핑을 즐기고, 지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아주 감사해요. 행복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최고의 축구선수를 꿈꾸지 않는 건 아니에요. 여전히 저는 대한민국 최고의 골키퍼를 향해 나아갑니다. 다만 그 목표가 제 인생의 전부는 아니란 걸 알았어요. 누군가에겐 소박할 수 있지만 그 작은 것 하나에 감사함과 행복함을 느끼는 삶. 제겐 이 또한 아주 소중합니다.
제가 최상의 경기력을 보일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코칭스태프, 동료들, 우리 사무국 직원들, 팬들입니다. 그분들을 위해서 정말 잘하고 싶어요. 잘해야 합니다. 제가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서 매일 미소 짓듯이 그분들도 제 플레이로 인해 한 번이라도 더 웃을 수 있다면 좋은 거 아니겠어요. 그라운드에 있는 순간만큼은 하나라도 더 막아낼 겁니다.
Q. 축구는 여전히 재밌습니까.
음... 솔직히 이기면 재밌습니다(웃음). 아마 모든 선수가 공감할 거예요. 선수들도 경기에서 패하면 정말 재미없어요. 함께 땀 흘린 동료들과 승리했을 때, 그 기쁨을 나눴을 때의 기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 기분을 느끼려고 훈련장에서 온 힘을 다해 준비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Q. 김동준에게 태극마크는 어떤 의미입니까.
태극마크란 단어를 듣는 순간부터 가슴이 뛰었어요. 국가대표는 설렘, 영광 등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자리죠. 제가 은퇴 후에 지도자를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축구계를 떠나지 않는 한 태극마크는 꿈이지 않을까. 설탕처럼 달콤하고 계속 먹고 싶게 만드는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은퇴하는 날까지 국가대표팀에 들어갈 수 있도록 땀 흘릴 겁니다. 제가 선택받지 못한다고 해서 원망하진 않을 거예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 대표팀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기면 승리의 기쁨을, 패하면 아픔을 나눌 거예요.
*김동준과의 인터뷰는 3편에서 이어집니다.
[서귀포=이근승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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