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서른두개’ 바게트에 담긴 빵쟁이의 진심, 고흥 앞바다에 퍼진다

미향취향은?
음식문화와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의 ‘지구인 취향 탐구 생활 백서’입니다. 먹고 마시고(음식문화), 다니고(여행), 머물고(공간), 노는 흥 넘치는 현장을 발 빠르게 취재해 미식과 여행의 진정한 의미와 정보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1600만개. 이 숫자는 프랑스에서 하루 생산되는 바게트 수다. 이를 연간으로 따지면 대략 60억개다.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의 대명사 바게트는 프랑스 정부가 제조 규칙을 정했을 정도로 프랑스인들에게 중요한 먹거리다. 지난해 11월 방한한 프랑스제과제빵협회장 도미니크 앙락은 “길이는 약 65㎝, 무게는 250g 내외, 가격은 0.95유로(한화로 약 1400원)라는 기준을 정부가 정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런 노력 때문인지, 바게트 제조법과 문화는 202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최근엔 바게트를 기념하는 우표까지 등장했다.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청·백·홍 리본으로 묶은 바게트가 그려져 있는 우표다. 재밌는 점은 이 우표를 손으로 문지르면 빵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특수 잉크를 사용해 제작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바게트를 파는 빵집이 많다. 물론 프랑스 정부가 정한 규칙을 따르는 데는 적다. 프랑스 대표 먹거리지만, 우리 땅에 정착하면서 ‘우리 식 바게트’를 파는 곳이 늘고 있다. 어떤 맛일까. 20가지 반찬이 나오는 백반이 자랑거리인 남도 끝자락 고흥에도 바게트 빵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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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말 고흥군 과역면에 있는 ‘르와르 베이커리’의 문을 두들겼다. 빵 만드는 이는 송문종 (54) 사장. 그는 35년 경력의 빵쟁이다. 20여년 전부터 고향 고흥에 터 잡고 고소한 빵 냄새를 풍기고 있다. “19살 때 전주의 유명 빵집에서 일을 시작했지요. 일본에 가서 실력을 연마하기도 했어요.” 과거를 회상하는 그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그때 동갑내기 아내 노은아씨가 끼어들었다. “우리 빵 중엔 ‘쌀 바게트’가 가장 인기가 많아요.” 어째 밉지 않은 자랑이다.
최근 하루 16개만 만들던 이 집 ‘쌀 바게트’가 32개로 늘었다. 대신 크기가 줄었다. 과거 길이가 36㎝, 무게가 264g였던 바게트는 지금 18㎝, 140g 크기로 줄었다. 가격은 3800원. 송씨가 이유를 말했다. “손님들과 대화를 많이 나눴는데, 너무 길어서 먹기 불편하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좀 계시더라고요.” 순창 등 인근 지역민도 일부러 찾아와 사 갈 정도로 입소문이 난 바게트다. 아침나절이면 16개 바게트가 금세 동나서 더 만들어 달라는 손님들의 청이 많았다고 한다. 찾는 이가 많으면 ‘대량생산’하는 게 인지상정. 이들 부부의 선택은 달랐다. 그 이유를 아내가 말했다. “남편에게 더 만들자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를 않아요. 남편은 늘 새로 개발한 당신의 빵을 사람들이 먹는 게 좋지, 이미 완성된 빵은 더 팔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남편을 타박하는 듯한 어조에는 이상하리만치 따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기실 그의 속마음은 남편을 격려하고 싶은 거다. 지금도 매일 송씨는 새로운 빵을 만들고 있다.



이 집 ‘쌀 바게트’ 맛은 프랑스 바게트와는 확연히 달랐다. 프랑스 바게트의 겉이 바싹바싹하다면 이것은 바사삭하다. 프랑스 빵 속이 촉촉하다면 이것은 쫀득하다. 떡의 식감을 닮았다. 이유는 재료의 차이다. 송씨는 이 지역에서 나는 쌀로 바게트를 만든다. 해풍을 맞고 자란 쌀엔 자연의 숨결이 박혀 있다. “강력분 밀과 쌀 비율이 대충 6 대 4랍니다.” 영업 비밀을 술술 푼다. 장삿속이 아예 장착되어 있지 않은 듯하다. 빵 맛에도 이 마음이 스며들었을 터. 먹거리만큼 만든 이의 심성이 거짓 없이 담기는 것도 없다.
송씨는 재료의 소중함도 강조했다. “이문이 적더라도 좋은 재료를 써야 (빵집이) 오래갑니다. 확실해요.” 그가 단팥빵 재료로 군산에서 유명한 이성당 팥을 쓰는 이유다. 또 당일 나온 빵은 당일만 소비하는 거로 한 그의 철학은 대전 성심당과 닮았다. 빵집으로는 자웅을 겨루기 힘든 이성당과 성심당이다.

이 집 빵엔 다른 특징도 있다. 팔영산, 연홍도, 쑥섬 등 빵 이름이 특이하다. “손님들이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사라고 이 지역 유명 관광지 이름을 붙였지요.”
그가 또 새로운 빵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고흥에서 생산되는 유자와 쌀로 만든 과자라고 했다. “정말 유자 향이 향긋하게 나고 맛도 좋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묻어있었다. 한반도 남쪽, 주걱 모양으로 톡 튀어나온 고흥. 그의 빵 냄새가 바다로 널리 퍼졌다.
고흥/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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