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이대남’ 파고들어 “자국우선” 충동… EU절반 극우정당 득세[Global Focus]

이현욱 기자 2024. 7. 4.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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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Focus - 유럽 정치지형 ‘요동’
이탈리아 등 6개 국가 극우 집권
EU 27개국중 15곳서 정치실세
친환경기준 낮춰 농민 환심 얻고
강력한 이민 차단으로 인기 상승
젊은 남성층 ‘일자리·집값’ 불만
여성보다 극우 지지도 훨씬 높아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신화통신 연합뉴스

유럽의 극우 열풍이 진보·좌파 색채가 짙은 프랑스마저 덮쳤다. 지난달 프랑스 극우 국민연합(RN)은 조기 총선 1차 투표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사상 첫 원내 다수당 등극을 앞두고 있다. 한때 유럽 정치권에서 변방 세력으로 취급되던 극우정당들은 최근 들어 비호감 이미지를 벗고 정치적 주류로 거듭나고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27개국) 중 절반 이상이 극우정당이 이미 집권했거나 차기 집권 세력으로 유력시되고 있다. 인플레이션 등 경제난과 이민자 급증으로 누적된 기존 체제에 대한 유럽 국민의 불만이 자국민 우선주의를 표방한 극우정당을 정치 무대 중심으로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단아에서 주류로…집권 세력으로 떠오른 극우=수십 년간 유럽에서는 극우정당은 권력을 잡을 수 없다는 공식이 자리잡혀 있었다. 극단적인 정책으로 대중적 공감대를 사지 못해 이단아 취급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각국 극우정당들은 높은 지지율로 속속 권력을 쥐어가며 유럽의 정치 지형을 흔들고 있는 양상이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현재 유럽에서 극우 세력이 집권한 국가는 이탈리아·핀란드·슬로바키아·헝가리·크로아티아·체코 총 6개국이다. 네덜란드에서는 극우 자유당의 주도로 연정이 꾸려졌고, 스웨덴의 극우 스웨덴민주당은 의회 2당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벨기에(플레미시 이익당), 프랑스(RN), 오스트리아(자유당)에선 극우정당이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하며 차기 집권이 유력한 상황이다. 에스토니아(에스토니아 국민보수당), 라트비아(국민연합), 폴란드(법과 정의당), 독일(독일을 위한 대안(AfD))에서는 극우정당이 2위를 기록하며 선두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사실상 EU 전체 회원국 중 절반이 넘는 15개국에서 극우 정당이 정치적 실세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마린 르펜 프랑스 RN 원내대표. EPA 연합뉴스

◇이민 급증·경제 위기 속 극우의 “우리나라 먼저” 구호 먹혀들어=다수 유럽 국가에서 나타나는 극우정당의 인기는 경제난을 고려하지 않은 EU 정책에 대한 대중적 불만과 관련이 있다. EU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흑해 항로가 봉쇄되자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농산물에 대해 수입할당 제한을 유예하고 관세를 철폐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산 농산물과 가금류 수입이 급증하며 각국의 시장가가 폭락했다는 점이다. 유럽 지역 농민들은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이 유럽에 물밀듯 들어오면서 자국산 농산물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주장하며, EU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다. 경제적 불만이 쌓인 상황에 EU는 농업 보조금 지급의 조건으로 더 높은 환경 기준을 농민들에게 요구하는 공동농업정책(CAP)을 내놓았다. 이에 올해 상반기 프랑스·독일·벨기에·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네덜란드·헝가리·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그리스·루마니아·리투아니아·불가리아 등 15개국에서 환경정책에 반발하는 대규모 농민 트랙터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가 일어난 국가의 극우정당들은 친환경 정책을 되돌려 EU 정책에서 국가 주권을 지키겠다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샀다. 반EU 노선을 분명히 한 셈이다.

극우정당의 불법 이민자에 대한 불관용 정책도 극우 인기를 높여줬다. 특히 이민자가 많이 유입되는 남유럽 국가들의 반이민 정서는 더욱 강하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불법 이주민 유입 차단을 공약하며 이탈리아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로 선출됐다. 이후 멜로니 총리는 알바니아와 이주민 협정을 맺으며 이민자 차단 강화에 나섰다. 멜로니 총리의 강경한 이민 정책에 그가 이끄는 이탈리아형제들(FdI)은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에서 28.8%를 득표하며 2022년 9월 총선(26.0%) 때보다 득표율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청년층 극우에 열광…상당수 지지자는 젊은 남성=극우정당의 반이민정책은 특히 청년층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민자들이 몰려와 일자리를 빼앗기고 주택가격이 올라 불만인 청년층의 심리를 파고든 것이다. 지난 3월 포르투갈 극우 체가(Chega)는 이민자 유입과 주택 부족 문제를 결부시켜 원내 3당으로 약진하며 사상 처음으로 캐스팅보트 자리를 꿰찼다. ‘네덜란드 트럼프’로 불리는 헤이르트 빌더르스 자유당 대표도 주택공급 부족과 임대료 상승 문제를 이민자 급증과 연결지어 청년 유권자의 불만을 파고들었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하원선거에서 제1당으로 올라섰다. 폴리티코는 “벨기에, 프랑스, 포르투갈, 독일, 핀란드에서 극우정당을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 수가 노년층보다 많다”고 진단했다.

극우를 지지하는 젊은층 상당수는 남성인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 20대 젊은 남성이 보수화되고 있는 이른바 ‘이대남’ 현상과 비슷한 흐름이 유럽 전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독일의 AfD는 젊은 남성 표심을 겨냥한 캠페인을 집중적으로 벌였다. “진정한 남자는 우파”라고 발언한 막시밀리안 크라 AfD 의원이 대표적이다. 젊은 남성들과는 달리 젊은 여성들의 경우 여전히 사회당이나 녹색당 등 좌파 성향 정당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벨기에에선 극우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젊은 남성이 31.8%를 기록한 반면, 젊은 여성은 8.9%에 그쳤다. 독일도 청년층 중 남성의 경우 가장 많은 18.2%가 AfD를 지지한 데 비해 여성은 녹색당 지지율이 13.2%로 가장 높았다.

이현욱 기자 dlgus300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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