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퍼펙트했어" 그 배우라서 지을 수 있는 묘한 미소의 여운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7. 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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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저격] 평범한 날의 완벽함,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영화 <퍼펙트 데이즈> (글 :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살면서 '오늘은 퍼펙트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며칠이나 될까. 있다면 그날은 누가 보기에도 완벽한 날이었을까. 완벽이라는 평가는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 타인에게 완벽해 보이는 삶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퍼펙트 데이즈>는 그런 모순적일 수도 있는 의미가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영화다.

<퍼펙트 데이즈>는 로드 무비의 거장인 빔 벤더스 감독이 연출했고, 주인공인 히라야마 역을 일본의 국민배우 격인 야쿠쇼 코지가 맡았다. 야쿠쇼 코지는 이 영화로 2023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야쿠쇼 코지가 아니었다면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우러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로 일하는 히라야마는 자신이 정한 규칙에 따라 정확하고 절도 있게 움직인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다다미방에 놓인 이불을 개고 세수를 하고 도쿄 청소부라는 글씨가 등에 찍혀 있는 작업복을 입고, 가지런히 순서대로 놓인 사물을 챙겨서 집을 나선다. 그리고 자판기에서 커피캔을 뽑고 청소도구가 가득 실린 차의 운전석에 앉는다. 일이 끝난 후, 목욕탕에 들렀다가 단골 술집에서 술 한 잔 하는 일정도 매일 똑같다.


여러 가지 형태의 화장실이 등장하고 히라야마가 변기와 세면대를 매우 꼼꼼하게 청소하는 장면이 꽤 오래 나온다. 화장실 청소 도중, 볼일을 보러 들어오는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고 밖에서 기다리는 히라야마의 표정은 마치 즐거운 일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런 묘한 미소는 영화 내내 나온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하늘을 쳐다볼 때, 점심으로 준비해 온 샌드위치를 공원 벤치에 앉아서 먹으면서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눈인사를 보낼 때도 입가에 미소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는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스며드는 순간을 항상 아날로그 카메라로 찍는다. 현상한 사진을 간직할지 없앨지 분류하는 작업도 의식을 치르듯 규칙적으로 한다.

7, 80년대에 유행했던 팝송 카세트테이프를 듣고, 자기 전에 소설책을 읽는 그가 어쩌다가 청소부가 됐는지, 과거에는 무슨 일을 했으며, 왜 혼자 살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완벽한 하루를 보내는 히라야마의, 삶의 리듬이 깨지는 순간이 두 번 온다. 삼촌이라고 부르면서 그를 찾아온 여동생의 딸이 나타났을 때와 함께 일을 나눠서 하던 동료가 제멋대로 일을 그만뒀을 때다.

러닝타임 중 3분의 2 정도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그의 배경에 대한 실마리를 엿보게 하는 조카가 등장한다. 그리고 뒤이어 여동생이 딸을 데리러 나타났을 때, 그가 가족과 갈등으로 홀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왔음을 짐작하게 된다. 여동생을 포옹으로 작별한 뒤, 늘 밝은 표정을 유지했던 그는 처음으로 오열한다. 그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정확하게 짐작하기는 어렵다. 영화는 어떤 단서도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지금까지 유지했던 자신의 세계를 전혀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일 뿐이다.

그러나 잠에 빠져드는 순간,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꿈결은 흑백화면으로 처리되는데, 과거와 현재가 뒤엉켜 있다. 나뭇잎들 사이로 누군가의 얼굴이 보일 듯 말 듯한다. 그의 말처럼 이 세상은 수많은 다른 세상으로 이뤄져 있고 서로 연결돼 있기도, 아니기도 하지만 꿈에서만큼은 그 경계가 흐릿해지고 뒤섞인다. 그리고 현실에서도 예기치 못하게 타인과 얽히고 일이 꼬이는 순간이 온다. 매일 정해진 순서대로 일과를 마치는 행복이 깨지는 순간이다. 그만둔 동료의 후임이 며칠 만에 배정됐을 때, 그가 짓는 미소는 다시 완벽한 하루로 돌아갈 수 있게 됐음을 뜻한다.

그런데 주인공은 왜 하필 화장실 청소부였을까. 일본의 투명한 공중화장실을 보고 영화를 구상했다는 감독의 인터뷰가 있지만, 영화에서 히라야마가 화장실 청소부여야 하는 이유를 찾게 된다. 가장 더러운 곳이면서 가장 깨끗해야 하는 장소가 바로 화장실이다. 모두가 기피하지만, 꼭 필요하며 급할 때 가장 간절하게 찾게 되는 곳이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며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을 그는 택했을지 모른다. 그가 타인들과 교류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사적으로 긴밀한 교류는 거부하지만 히라야마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타인들과 어울리고 있기 때문에 늘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가족과 만남 후에, 그의 미소는 달라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지만 눈은 점점 붉게 물든 채 눈물이 고인다. 마치 금방이라도 터질지 모르는 울음을 꽉 다문 입술의 미소로 막고 있는 듯이 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수시로 하늘을 쳐다본다. 그의 시야 안에 들어오는 사물은 주로 바람결에 조금씩 움직이는 나뭇잎들이다. 그리고 흑백 화면으로 처리된 그의 꿈에서도 나뭇잎 형상이 등장한다. 영화가 끝난 후 자막으로 코모레비라는 일본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말하는데 '다시는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이라는 속뜻이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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