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는 PXG 경영 철학

이지현 서울디지털대 패션학과 교수 2024. 7. 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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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스토리] “골프에도 페라리 같은 클럽이 필요하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골프장 방문객이 크게 늘었다. 무엇보다 젊은 층의 골프 입문이 두드러진다. 그 덕에 골프장 그린은 럭셔리한 브랜드로 수놓은 패션쇼장을 방불케 한다. 골프 입문 초기에는 ‘나이키 골프’ ‘아디다스 골프’ 등 대중적 스포츠 브랜드를 선호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PXG’ ‘제이린드버그’ ‘파리게이츠’ 등 프리미엄 골프 웨어를 찾는 경향을 보인다. 2024년 3월 12일부터 4월 12일까지 골프웨어 브랜드 빅데이터 1333만4299개를 분석한 결과, 골프웨어 브랜드 평판 1위는 피엑스지(PXG)가 차지했다. PXG의 무엇이 골프 애호가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PXG가 2021년 선보인 2011 듀얼 코어 컬렉션. [밥 파슨스 인스타그램]
PXG 창업주는 밥 파슨스(Bob Parsons)다. 파슨스는 골프업계에서 이단아로 통한다. 1950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며 자급자족했다. 간신히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은 파슨스는 미국 해병대에 입대, 베트남 파병 중 퍼플 하트(Purple Heart·전투 중 부상을 당한 군인에게 주는 훈장)를 받았다. 이후 1975년 국가보조금으로 볼티모어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회계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해 회계사가 된다. 어느 날 파슨스는 스탠퍼드대학 캠퍼스에 시간을 보내러 갔다가 우연히 컴퓨터 프로그래밍 책을 발견하고 바로 매료됐고, 독학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됐다.

1984년 소프트웨어 회사인 파슨스 테크놀로지(Parsons Technology)를 설립한 그는 10년간 회사를 성장시켜 1994년 6400만 달러(한화 약 900억 원)에 매각했다. 3년 후인 1997년에는 도메인 등록 기관이자 웹 호스팅 기업인 고대디닷컴(GoDaddy.com)을 설립해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후 2011년 과반수 지분을 23억 달러(한화 약 3조3000억 원)에 매각했다. 2012년에는 마케팅부동산, 오토바이 대리점 사업을 아우르는 YAM 월드와이드(YAM Worldwide)를 설립했다. 파슨스와 그의 아내 르네(Renee)는 밥 앤드 르네 파슨스 재단(The Bob & Renee Parsons Foundation)을 설립해 자선단체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포브스는 밥 파슨스의 재산이 2조 원대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PXG 창업주 밥 파슨스. [밥 파슨스 공식 홈페이지]
파슨스는 골프 애호가다. 세계 모든 브랜드의 클럽과 모델을 사용해 봤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다. 그는 자신이 손에 맞는 최고의 클럽을 찾는 데 연간 35만 달러(한화 약 4억 원)를 지출했으나 시장에 나와 있는 많은 골프 클럽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직접 골프채 제조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억만장자 골프 애호가가 만든 'PXG'

2013년 9월 파슨스는 맞춤형 골프 장비와 액세서리 라인을 설계하고 마케팅과 판매까지 담당하는 글로벌 스포츠 장비 제조회사 '파슨스 익스트림 골프(Parsons Xtreme Golf·PXG)'를 론칭했다. PXG는 1970~80년대 PGA 투어 프로이던 마이크 니콜레트(Mike Nicolette)를 고용했는데, 그는 PXG에 합류하기 전에 골프 브랜드 핑(PING)의 수석 제품 디자이너로 일했다. 또한 PXG는 핑의 엔지니어링 이사이던 브래드 슈와이거(Brad Schweigert)를 최고 제품 책임자로 고용했다.

파슨스는 최고의 클럽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엔지니어들에게 "75년이 걸려도 좋으니 돈 생각하지 말고 최고 제품을 만들어라. 최고 제품이 나올 때까지 물건을 팔지 않겠다"고 했다. 슈와이거와 니콜레트는 시간이나 예산에 제약이 없었기 때문에 PXG 0311 아이언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PXG는 드라이버, 우드, 하이브리드, 웨지, 아이언 및 퍼터를 포함한 전체 장비 라인을 제공한다.

미국 해병대 출신인 파슨스는 해병대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미 해병대 주특기 번호로 모델명(0211, 0311, 0317, 0341, 0811 등)을 정했다. 해병대 소총수였던 그는 아이언 모델명을 소총수를 뜻하는 코드인 0311로 명명했다. 드라이버(0811)는 포병, 우드(0341)는 박격포병, 하이브리드(0317)는 스카우트 저격수의 주특기 숫자다. 클럽헤드에는 마치 총알이 박혀 있는 것같이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나사를 박아 넣었다. 다크니스 웨지는 파슨스가 베트남전 당시 복무한 26해병 연대를 상징하는 해골 휘장과 숫자 26으로 장식했다.

2022년 출시된 4세대 아이언 모델 중 젠4 0311 P(Gen4 0311 P)는 플레이어(Player), 즉 선수급을 의미한다. 젠4 0311 ST는 슈퍼 투어(Super Tour)로 투어에 최적화된 클럽이라는 뜻이다. 2023년 3월 PXG는 2013년 브랜드 론칭에서부터 약 10년에 걸친 연구 및 개발을 거쳐 첫 골프공을 출시했다. 현재 PXG는 80개 이상의 특허를 출원했으며 계속해서 출원하고 있다.

한국이 주도하는 PXG 골프웨어

PXG 골프웨어. [pxg]
PXG 골프웨어는 PXG 클럽 한국 공식 수입원인 ㈜카네의 자회사인 ㈜로저나인에서 미국 본사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아 직접 디자인하고 제조한다. PXG는 미국에서 탄생했지만 PXG 골프웨어는 2017년 3월 한국에서 론칭한 브랜드다. 한국에서 PXG 골프웨어가 성공하자 미국 본사가 세계로 나가고자 2018년 10월 PXG 어패럴 월드와이드를 설립했다. 이에 PXG의 클럽헤드는 미국에서 만들어지지만, 골프웨어 및 액세서리 제품은 한국에서 디자인하고 생산해 전 세계에 판매하고 있다.

2019년 8월 PXG 어패럴은 공식적으로 전 세계 첫 PXG 골프웨어 패션쇼인 'PXG RUNWAY 2019'를 강남구 반포동 세빛섬 플로팅 아일랜드에서 오픈했다. PXG 어패럴은 2019년 431억 원이던 매출이 2020년엔 716억 원으로 66.1%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2022년 9월 PXG 골프웨어는 세계적 드로잉 아티스트 김정기와 협업한 일명 'PXG × Project KJG'를 출시했다.

2022 F/W 시즌 한정판 제품들로 구성된 컬렉션은 PXG 브랜드 창립자인 밥 파슨스 회장의 일대기에서 영감을 얻은 김정기 작가의 드로잉 작품을 패턴으로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브랜드 로고 플레이와 무채색으로 심플한 디자인을 고수해 온 PXG에서 패턴 아트워크 제품을 선보인 것은 처음이다. PXG 어패럴은 1년에 두 번 수주회를 진행하는데, 2024 S/S를 선보인 수주회에서는 미국·캐나다·싱가포르·일본 등 10여 개국 바이어가 모일 만큼 화제를 모았다. 특히 일본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반응이 좋았다. 수주량도 전년 대비 크게 신장해 해외에서 오는 피드백을 적극 반영하며 글로벌 마켓에 맞는 상품으로 업그레이드해 다양하게 선보일 예정이다.

PXG 골프웨어는 미국 해병대 출신에 대한 자부심이 PXG 골프복을 착용했을 때 자부심으로 이어져 골퍼들에게 독보적 자신감을 주기를 바란다. 현재 PXG의 사장 겸 PXG 어패럴 월드와이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파슨스의 아내인 르네 파슨스다.

리디아 고가 선택한 클럽

PXG가 후원하는 프로 골퍼 잭 존슨(왼쪽), 리디아 고. [Gettyimage, pxg]
2015년 1월 프로 골퍼 라이언 무어(Ryan Moore)는 PGA 투어 이벤트인 현대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에서 프로토타입 PXG 아이언과 웨지를 사용했다. PXG는 PGA 및 LPGA 투어에서 활동하는 프로 골퍼와 후원 계약을 유지해 왔다. PGA 투어 선수로는 메이저 대회 2회 우승자 잭 존슨(Zach Johnson)을 비롯해 라이언 무어, 조엘 다멘(Joel Dahmen), 팻 페레즈(Pat Perez), 제임스 한(James Hahn), 스콧 랭글리(Scott Langley), 윈덤 클라크(Wyndham Clark), 제이슨 코크랙(Jason Kokrak)이 대표적이다. LPGA 선수로는 크리스티 커(Cristie Kerr), 게리나 필러(Gerina Piller), 리디아 고(Lydia Ko), 셀린 부티에(Celine Boutier), 안나 노르드크비스트(Anna Nordqvist), 오스틴 언스트(Austin Ernst), 크리스티나 김(Christina Kim), 브리타니 랭(Brittany Lang), 라이언 오툴(Ryann O`Toole), 제니퍼 송(Jennifer Song), 헤일리 무어(Haley Moore)가 있다.

크리스티 커는 2015년 시즌을 마감하는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 13개의 PXG 클럽과 함께 우승을 차지하며 회사에 첫 우승을 안겨줬다. 2007년 마스터스 챔피언이자 2015년 브리티시 오픈 우승자인 잭 존슨은 "연구개발(R&D) 기술과 골프 클럽에 대한 열정을 생각하면 PXG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리나 필러는 기존의 클럽에 꽤 익숙했기 때문에 클럽 바꾸기를 꺼렸다. PXG 클럽을 테스트해 보라는 초대를 거절할 정도였다. 그러다 그녀의 에이전트가 그녀에게 피팅 세션을 제안했고 그녀는 10개도 안 되는 공을 친 후 PXG 클럽을 선택했다. 리디아 고는 2022년 CME 그룹 투어챔피언십에서 PXG 젠2 0341을 사용해 우승했다. 2023년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자인 셀린 부티에는 PXG 젠3 0311T를 사용했다.

섹시함으로부터 영감받는 자선사업가

PXG는 재향 군인을 지원하기 위한 비영리단체(The Semper Fi Fund) 등에 기부하고 있다. [밥앤르네 파슨스 재단 페이스북]
PXG 골프용품은 고가로 알려져 있다. 파슨스는 "자동차산업의 성장 속도는 줄어들고 있지만 페라리 같은 슈퍼카 시장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골프에도 페라리 같은 클럽이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로 최고의 품질을 추구한다. 또한 PXG는 전·현직 군인과 소방관, 법 집행기관 및 EMT 요원에게 골프 장비·의류·액세서리를 특별 할인가에 제공한다. 또한 미군의 모든 부서에서 다친 재향군인을 지원하기 위한 비영리단체인 'The Semper Fi Fund', 국제 비정부기구(NGO)인 'Team Rubicon', 자선단체인 'Headstrong'과 '100 Club of Arizona' 등과 같은 조직에 기부하고 있다. 목사에게 안수를 받은 목사이자 자선가이기도 한 파슨스는 아내 르네와 함께 1억3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등 사회 공헌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그러나 섹시하고 유니크하면서도 세련된 제품을 만들겠다는 PXG 브랜드 철학을 반영이라도 하듯 파슨스는 어깨에 커다란 해병대 문신을 하고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PXG는 특히 국내에서 골프용품 가격이 더 고가로 책정되고, 선정적 이미지로 섹슈얼리티를 자극한다는 논란도 있다. PXG의 웨지 중 하나는 슈거 대디(sugar daddy)인데, 그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젊은 여자에게 많은 선물과 돈을 안겨주는 돈 많은 중년 남자' 즉 원조 교제하는 남자라는 의미다.

PXG 골프웨어와 골프용품이 고가인 이유는,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겠다는 경영 철학을 기반으로 소비자에게 만족할 만한 가치를 주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다는 원칙에서 비롯된 것이다. 파슨스는 "소비자들이 비싸다고 한다면 돈을 기부하는 것으로 생각하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골퍼들의 유입은 프리미엄 골프용품과 골프웨어 구매욕을 상승시켰다. 이들에게 골프장은 SNS에 올리기 좋은 장소이고, 이들에겐 무엇보다 스타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지현 서울디지털대 패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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