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휴대전화 만들던 스물한 살 청년 노동자 [시선]

신선영 기자 2024. 7. 4.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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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이식수술을 마친 이수현씨(가명·21)는 외출이 힘들어서 집에만 머무른다. ⓒ시사IN 신선영

두 달 동안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았다. 하루 종일 구역질이 났다. 열꽃이 핀 피부는 거뭇해졌다. 열 개 손톱이 모두 갈라지고 빠져서 건드리기만 해도 통증이 전해졌다. 삼성전자 휴대전화를 만드는 1차 협력업체인 경북 구미시 ㈜케이엠텍에서 일하던 이수현씨(가명·21)의 이야기다. 이씨는 2023년 9월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5차에 걸친 항암 치료 끝에 지난 3월 조혈모세포 이식수술을 받았다. ‘내 힘으로 일해서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겠다’던 책임감 강한 스물한 살 청년은 현재 외출도 할 수 없는 몸이 됐다.

이씨는 특성화고 3학년이던 2021년 10월, 졸업을 앞두고 케이엠텍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을 시작했다. 3개월 뒤 ‘일·학습 병행제도’가 있는 대구의 영진전문대학교에 입학해 평일에는 일을 하고, 토요일에는 대학에서 수업을 듣는 학습 근로자로 전환됐다. 일·학습 병행제도는 취업을 선택한 학습 근로자를 지원하기 위해 사업체 근무를 정규 학점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버이날을 맞아 학교에서 찍은 사진. ⓒ시사IN 신선영

이씨는 주중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5시 반까지, 하루에 2000개 이상의 휴대전화 부품을 조립했다. 작업 시 KF94 마스크 착용이 의무였다. 이씨 말에 따르면, 조립 전 먼지 제거를 위해 에어건을 불 때마다 이상한 냄새가 마스크 틈으로 전해졌다. 일하는 직원들에게 관리자가 소독약을 분사할 때도 있었다. 무슨 약인지 물으면 ‘신경 쓰지 말라’는 답이 돌아왔다. 누군가 ‘쉬고 싶다’고 하면 상급자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런 날은 저녁까지 잔업이 주어졌다. 삼성전자에서 신제품이 출시되는 시기는 작업량이 늘어 주말에도 수업 대신 일을 해야 했다. 같이 현장실습을 시작했던 친구 5명 중 3명이 힘들다며 일을 그만둘 때도 이씨는 ‘졸업하고 군대를 가겠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버텼다.

일한 지 2년이 되어가던 2023년 9월15일 금요일, 이씨는 갑자기 어지럼증을 느꼈다. 시간이 갈수록 전신 근육통과 발목 통증이 심해졌다. 나중에는 걷기조차 힘들었다. 출근하기 위해 기숙사에 머물던 월요일 새벽 이씨는 어머니에게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단순 염증이라 생각하고 아들을 병원으로 데려간 어머니는 세 번째 병원에서 의사에게 백혈병 소견을 들었다. 소식을 접한 회사는 이씨에게 ‘치료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치료를 거듭할수록 이수현씨의 손톱은 갈라지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시사IN 신선영

그런데 4개월 뒤, 치료를 받던 이씨는 건강보험 통지서로 해고된 사실을 알았다. 회사는 무급휴직 3개월에서 1개월을 넘겼기 때문에 더 이상 사정을 봐줄 수 없다고 했다. 이씨에게 적용되는 일학습병행법 운영규정(제11조)에도 학습 근로자가 훈련을 중지할 수 있는 사유에 몸이 아픈 경우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씨가 2024년 1월31일자로 사업체에서 퇴사 처리되자, 대학도 규정에 따라 이씨를 자퇴 처리했다. 졸지에 직장을 잃고 학교에서도 쫓겨난 것이다.

아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아버지는 부산에서 노무사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원청이 삼성’이라는 말을 들은 이들은 하나같이 손사래를 쳤다. 수소문 끝에 결국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서울 사무실을 직접 찾아갔다.
두 차례 기자회견과 언론 보도를 통해 이씨의 상황이 알려지고 나서야 회사와 학교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첫 면담에서 ‘아픈 건 일차적으로 부모 책임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등의 태도를 보여온 회사는 두 번째 면담에서 부당해고를 인정하고 복직과 치료비 지급을 약속했다. 이씨와 그의 부모는 거기에 더해 회사의 공식 사과, 치료 지원금 지급, 재발 방지 대책, 사원 복지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학교 측은 이씨의 집으로 ‘자퇴 취소 신청서’를 보내왔다. 학교 관계자는 “복학 처리가 진행 중이다. 다만 학칙 개정이 필요하다. 본인의 의사에 따라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2학기 전에 개정을 마무리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씨의 부모는 이전과 달라진 회사와 학교의 태도를 보는 것 또한 “참담하게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이수현씨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방 침대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 ⓒ시사IN 신선영

반올림은 작업 환경이 백혈병 발병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근로복지공단에 이씨의 산재 신청을 했다.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는 “인과관계를 입증하고 산재 인정을 받는 과정은 쉽지 않다. 하지만 회사의 취업규칙에 유급병가제도가 없고 무급휴직 1개월이 전부인 부분은 일단 개선이 필요하다. 기업에 유리한 대학생 현장실습 제도 역시 손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이씨는 복직·휴직 처리가 된 상태다. 케이엠텍 관계자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회사 차원에서 해마다 작업장 검사를 진행해왔고 문제가 없었다. 산재 관련해서 작업환경측정 보고서도 공개했다. 앞으로도 도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6월20일 현재 이씨 부모와 회사는 합의문에 관한 세부 사항을 협의하고 있다.

백혈병 진단을 받기 전 84㎏이던 수현씨의 몸무게는 현재 69㎏으로 줄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몸 컨디션을 달력에 매일 꼼꼼히 기록한다. “세계적으로 잘나가는 삼성 휴대폰만 생각하지, 만드는 과정에 투입되는 노동자들의 환경을 아는 사람은 없어요. 아들의 사례로 이 일이 위험할 수 있는 작업이고, 일·학습 병행제도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매년 가족여행 사진을 기록한 앨범. ⓒ시사IN 신선영

 

신선영 기자 ssy@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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