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완전잠식’ 석유공사 동해 탐사, 도박인가 부활 신호탄인가

최우리 기자 2024. 7. 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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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 안 하면 조직 존재 가치 없어”
지난 1999년 5월 울산 남동쪽 바다 약 50km, 6-1광구 고래 브이(V)구조 지역에서 바다밑 땅 2637m까지 파 내려간 시추선 두성호와 동해 일출. 연합뉴스

한국석유공사는 부채가 자산보다 많다. ‘완전 자본잠식’에 빠진 지 4년째다. 박근혜 정부 당시 비용 감축 등 군살 빼기를 했지만 재무 상황은 날로 악화했다. 일반 민간 회사라면 일찌감치 ‘존속 불가’ 판단을 받았을 터다.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동해 심해 가스·석유 시추 작업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석유공사의 현 재무 상황이다.

석유공사는 1979년 3월 설립됐다. 설립 당시 회사명은 ‘한국석유개발공사’였다. 1973년 본격화된 1차 석유파동이 설립 배경이다. 산유국인 중동 국가들이 석유 수출을 제한하면서 석유 확보는 국가 안보 사항으로 떠올랐다. 석유공사의 설립 근거인 한국석유개발공사법(1978년 제정)이 “석유자원의 개발, 석유의 비축, 석유유통구조 개선 사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해 석유 수급의 안정을 도모한다”(1조·목적)로 시작하는 까닭이다.

■ 짧은 영광, 길었던 암흑기

설립 이후 40여년간 석유공사는 법이 부여한 임무, 다시 말해 설립 목적에 부합한 활동을 했을까. 그 성과는 또 어땠을까. 전문가들은 “큰 실패가 작은 성공을 가렸다”라고 촌평한다. 작은 성공으로는 1998년 7월 동해 6-1 광구 가스전(2004~2021년까지 생산) 발견이 꼽힌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정부의 지원도 잇따랐다. 몇 차례 법개정을 거치며 법정 자본금이 3조원에서 13조원까지 늘어난 게 한 예다. 이명박 정부(2008~2012) 땐 범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자원개발 드라이브’의 주역으로 올라섰다. 핵심 국정과제를 도맡으며 ‘석유공사 대형화 방안’이 정부 차원에서 추진됐다.

영광은 길지 않았다. 혹독한 시련은 아이러니하게 석유공사를 국정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던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실패에서 비롯됐다. 밀어붙이기식 자원개발의 총대를 멘 석유공사의 부실한 사업과 역량도 고스란히 드러나며 국민들의 불신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 양상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공개된 감사원 보고서(‘해외자원개발사업 성과분석’)에 일부 담겨 있다. “(확보한) 석유는 공기업 참여 지분의 0.4%(220만배럴)에 불과하고 비상시 국내 도입 가능 물량은 국내 일일 소비량의 2.2%(4.96만배럴)에 불과” “예상(3조1200억원 지출)보다 9조7000억원 증가한 12조8000억원의 현금이 지출” “2015~2019년 현금 수입도 기대보다 14조4000억원 부족할 전망”

보다 충격적인 건 석유공사가 성과를 포장하기 위해 허위로 보고한 사실도 있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게 이라크 인근의 한 광구 개발 사업이었다. 투자비만 약 7천억원(2014년 기준)이 들어간 대형 사업이었다. 감사원은 “해양컨설팅 회사 ‘푸그로 로버슨’에서 2008년 6월 유망구조가 발견되지 않아 위험도가 높다고 평가했지만, 석유공사는 8개 광구의 기대매장량을 72억2300만배럴로 평가해 이사회에 보고했다”고 짚었다.

이런 사실들은 석유공사가 설 땅을 좁혔다. 박근혜 정부는 43개에 이르는 부서를 27개로 대폭 줄이고 인력도 256명 감축했다. 재무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임금과 복리후생비에 대한 대대적인 삭감도 진행됐다. 매년 이뤄지는 공공기관·정부출연기관·공기업 평가에서 석유공사는 하위권을 맴돌았다. 석유공사는 점차 국민들의 시선에서 멀리 벗어났다. 해외 광구 지분 확보 등 인수합병(M&A)도 그 무렵부터 자취를 감췄다.

■ 도박인가 부활인가

올해 말 본격화하는 동해 심해 가스·석유 시추 사업은 석유공사를 15여년만에 다시 세간의 이목의 중심에 서게 한 일대 사건이다. 이 사업의 뿌리가 되는 ‘광개토 프로젝트’가 2022년 수립된 점을 염두에 두면 석유공사의 권토중래가 수년 전부터 시작됐다는 걸 의미한다. 석유공사는 이 사업을 ‘공사의 존재 가치’를 재확인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한마디로 조직의 명운을 걸고 있다는 뜻이다.

석유공사의 한 고위관계자는 한겨레에 “석유공사는 석유탐사·자원안보가 기본 임무다. 탐사를 하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7일 동해 시추 작업 관련 범정부 기자회견에 참석한 곽원준 석유공사 수석위원이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존재가치를 되찾으려는 공사 쪽의 이런 ‘의지’와 별개로 공사의 ‘역량’에 대한 의심 어린 시각은 팽배해 있다. 조직의 명운을 건 도박에 나선 것 아니냐는 것이다. 12년 동안 에너지·자원외교 분야를 다룬 박현숙 더불어민주당 이상식 의원실 선임비서관은 “수조원에 이르는 개발사업을 책임질 능력이 석유공사에 있는지 검증된 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석유공사 재직 경험이 있는 자원개발 분야의 한 전문가는 “자원외교 실패 탓에 인력과 기술 등 탐사 역량을 키울 수 없었던 게 석유공사의 현주소”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번 사업이 성공한다면 석유공사로선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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