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도 제쳤다…살 빼는 약, 어떻게 ‘황금알 낳는 거위’ 됐나[케이스 스터디]

2024. 7. 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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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헐적 단식과 위고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가 체중감량의 비결이라며 올린 사회관계망서비스 엑스(옛 트위터) 글로 ‘꿈의 비만치료제’가 화제가 된 지 1년 반이 지났다.

역설적으로 ‘일론 머스크 다이어트약’으로 유명세를 탄 위고비(성분명 semaglutide) 개발사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 그와 함께 현재 비만치료제 업계 쌍두마차인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릴리(Eli Lilly) 시가총액 순위가 최근 테슬라를 추월했다.

최근 들어 전기차 시장이 전같지 않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비만치료제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크게 작용한 데 따른 결과다. 테슬라뿐이 아니다. 이들 회사는 이미 화이자, 존슨앤드존슨 같은 업계 선두 업체들을 제치고 전 세계 제약바이오 시가총액 1, 2위를 차지했다. 덴마크 회사인 노보노디스크는 오랫동안 유럽 증시를 점령했던 명품 브랜드 제국 LVMH를 상회한 지 오래다.

‘현대인의 질병’인 비만은 당뇨,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의 원인으로 알려졌지만 그보다는 아름다운 신체를 원하는 인간의 욕망을 거스르기에 현대인에게 불리한 요소이자 스트레스 원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시중에는 언제나 체중감량 약물과 보조제, 전자기기 등 다양한 제품들이 넘쳐난다. 즉 다이어트 수요는 언제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비만치료제라는 재료가 세계 증시에서 흥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달아오른 열기는 올해는 물론 내년, 내후년까지 꺼지지 않으리란 분석이 나온다. 이번에 나온 살 빼는 약은 전 세계 비만 인구를 희망 고문에 빠뜨렸던 과거 제품들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3세대 다이어트약, 이번에는 다르다

지금껏 출시된 비만치료제는 크게 1세대, 2세대, 3세대로 나뉜다. 1세대 치료제는 알약 형태의 경구용 제품으로 출시됐으나 효과가 작은 데 비해 부작용 문제가 컸다. 일부 제품은 중추신경계에 직접 작용해 식욕을 떨어트리는 향정신성 약물로 몇 년 전 국내에선 일명 ‘나비약’이라 불리며 처방 없이 청소년 사이에 유통돼 논란이 됐던 디에타민 등 펜타민(phentamine) 성분 제품들이 대표적이다. 비만치료제는 통상 초기체질량지수(BMI)가 30kg/㎡ 이상인 환자에게 처방된다.

지방흡수억제제 제니칼(성분명 orlistat)이 대체재로 등장했지만 역시 체중감소 효과에 비해 소화불량, 지방변, 지용성비타민 흡수 장애 등 부작용이 있다는 이유로 미국소화기학회(AGA)가 사용금지 권고를 하기도 했다.

제약업계에선 2017년 국내 출시된 삭센다(성분명 liraglutide)를 2세대로 친다. 삭센다 역시 위고비처럼 노보노디스크가 출시했으며 위고비 탄생 전 세계 최초로 글루펩타이드(GLP-1) 유사체 성분으로 제조한 비만약이었다. GLP-1이 시상하부에 영향을 끼쳐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식욕감퇴와 체중감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1세대에 비해서는 부작용이 적고 안전하다는 사실이 알려져 판매가 급증했고 2019년 시장점유율 30%로 디에타민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며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펜 타입 피하주사제라 경구용 제품에 비해 투약이 불편하고 건강보험 비급여인 고가의 약을 매일 주사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위고비가 대표하는 3세대는 주 1회 투여하며 1~2세대보다 높은 체중감량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임상실험을 통해 과체중 및 비만환자에게 위고비를 투여한 결과 68주 만에 체중이 평균 15% 감소했다. 같은 기간 삭센다를 투여했을 때보다 약 2배 정도 체중감량 효과(7~8%)가 높은 셈이다. 같은 성분의 위고비 경쟁 제품인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성분명 tirzepatide)는 88주 투여하면 25.3% 체중을 줄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뇨병에서 출발한 비만약

위고비와 젭바운드는 모두 같은 성분의 당뇨병 치료제에서 탄생했다. GLP-1은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를 자극해 혈당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체내에서 분비된 후 1~2분만 작동하고 분해돼버린다. 따라서 GLP-1과 비슷하지만 작용시간이 오래가는 성분을 개발해 2형 당뇨치료제로 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당뇨치료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환자들이 포만감을 느끼고 체중이 감소하는 부작용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는 기존의 당뇨치료제와 같은 성분의 약을 비만치료제로 승인받아 판매하게 됐다. 화이자의 히트작 비아그라가 폐동맥 고혈압치료제 부작용으로 탄생했던 과정과 비슷하다.

위고비의 당뇨약 버전은 오젬픽이며 젭바운드는 마운자로로 재탄생했다. 일라이릴리는 유럽에선 비만치료제도 마운자로라는 제품명으로 출시하기도 했다.

현재 시장을 양분하는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는 초기부터 프레더릭 밴팅 박사가 개발한 인슐린 주사제로 성장한 회사다. 캐나다 의사인 밴팅은 모교인 토론토대 연구실을 빌려 췌장에서 인슐린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으며 개 실험을 통해 당뇨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공로로 밴팅은 1923년 노벨의학상을 받았고 단돈 1달러에 인슐린 특허를 토론토대에 팔았다.

이 특허권을 넘겨받아 처음 인슐린 제품을 상용화한 회사가 바로 일라이릴리였다. 일라이릴리는 인슐린 외에도 소아마비백신을 최초로 양산했으며 현재까지 자가면역치료제, 항암제, 정신의약품 등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갖추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인슐린 등 주요 제품의 특허가 만료되며 위기를 맞은 일라이릴리는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젭바운드를 출시하며 전성기를 되찾았다. 최근에는 치매치료제인 도나네맙이 FDA 승인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주가가 다시 한번 급등했다.

‘덴마크의 삼성’이라고 불리는 노보노디스크는 1920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아우구스트 크로그 박사와 당뇨병 환자였던 아내가 밴팅을 방문한 뒤 덴마크에서 창업해 인슐린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창립 100주년을 맞은 노보노디스크는 현재까지 내분비계 의약품에 특화된 회사이며 100년 만에 당뇨병 약 기술을 바탕으로 한 비만치료제 시장에서 일라이릴리와 경쟁하게 됐다.


 한국에선 언제?


한국비만학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성인 비만율은 38.4%에 달한다.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 그만큼 비만치료제 수요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3세대 비만체료제 상륙 시점은 불투명하다. 위고비는 올해 2월 22일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일본에서 출시됐으며 한국에선 지난해 4월 식약처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수요 대비 물량부족 문제로 승인 1년이 넘도록 국내 출시 일정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한국노보노디스크 관계자는 “올해 4월 샤샤 세미엔추크 사장이 참석한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출시 의지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한국에서 빨리 출시를 하고 싶다는 언급이 있었으나 출시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으며 계속 검토 중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라이릴리 역시 “젭바운드 국내 출시 일정에 대해 내부 논의 단계이며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다”는 입장이다.

국내 제약사 중엔 한미약품의 제품 개발 속도가 빠르다. 현재 에페글레나타이드(efpeglenatide) 성분 비만약이 임상3상을 진행 중이다. 한미약품은 2026년 초에 임상을 마치고 2027년 국내 출시를 계획 중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임상 대상 420명 전원이 한국인인 ‘한국인 맞춤형’ 제품으로 평택 바이오플랜트에서 생산해 바로 공급되기 때문에 가격 또한 기존 경쟁제품보다 저렴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이 밖에도 GLP-1과 위억제 펩타이드(GIP), 글루카곤(GCG) 삼중작용제(코드명 HM15275)를 개발하고 있다. 이처럼 다중작용제를 개발하는 것이 요즘 시장 트렌드다. 이를 통해 호르몬 각각의 기능을 최적화해 체중감량 효과를 높이고 부수적으로 대사성 질환에 효력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미약품이 미국비만학회(ADA)에서 발표한 전임상(동물실험) 결과에선 비만 쥐의 체중이 3주 만에 40% 가까이 줄었다.

HM15275는 2030년 미국 출시를 시작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개발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비만인구는 1990년의 2배 수준인 10억 명을 넘어섰고, 미래에셋리서치센터는 2030년 비만체료제 시장이 682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제약업계에선 시장을 더 키우기 위해 비만치료제의 건강보험 급여화에 힘쓰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위고비와 젭바운드를 한 달간 4번 투여하는 데 드는 비용은 각각 1300달러, 1000달러 수준이다. 실제로는 물량이 부족해 이보다 웃돈이 붙는 경우가 많다.

급여화를 통해 진입장벽을 낮추면 비만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을 예방 또는 치료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일부 연구에선 GLP-1 유사체 기전 비만치료제가 심혈관질환이나 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는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에 대해 비만치료제로 급여를 권고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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