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아빠 과학자]⑧ "육아는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하는 문제"

이병구 기자 2024. 7. 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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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제 GM 한국사업장 차장이 인천 부평에서 동아사이언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편집자 주> 육아휴직을 쓰는 아빠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과학기술계에서도 느는 추세지만 현장 경험과 연구 지속성이 과학자에게 중요한 만큼 자녀를 위해 연구를 멈추는 건 쉽지 않습니다. 연구의 꽃을 피워야 하는 시기인 30, 40대 아빠 과학자에게 육아휴직은 어려운 결정입니다. 하지만 과학기술계도 예외여서는 안됩니다. 장기적으로 일과 가정이 양립해야 인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기 때문입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동아사이언스는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과 함께 육아휴직, 단축근무 등 육아지원 제도를 활용하는 과학자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남성 과학자가 겪는 현실 육아, 필요한 육아지원 제도, 아빠가 되면서 달라진 삶과 일에 대한 태도 등을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생생히 들여다 봅니다. 과학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육아'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 합리적, 현실적인 방안을 함께 고민해 보기를 기대합니다. 

"첫째 낳기 전에도 EBS에서 유럽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쓰고 유치원에 라테 한 잔 먹으면서 가는 '라테파파'를 소개했는데 그게 참 좋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서 나온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육아는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도 그런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확산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달 9일 인천 GM 테크니컬센터코리아 사무실 인근에서 만난 강선제 차장은 2022년부터 몇 달씩 나눠 육아휴직을 두차례 사용했다. 두 딸의 아빠인 강 차장은 GM 한국사업장에서 자동차 디자인에 따른 공기 저항을 연구하는 '아빠 과학자'다. 그는 자신이 근무 중인 GM이 "육아 친화적인 회사"라고 말했다.

강 차장은 "남자도 눈치 안 보고 쓸 수 있고 제가 처음도 아니었다"며 "공감대가 잘 형성돼 팀장과 담당자들이 흔쾌히 다녀오라고 했고 그 뒤로도 제도가 많이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육아휴직을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인 '인사상 불이익'도 없다고 했다.

그는 "육아휴직을 쓸 때 주변 친구들이 '신기하다'고 했다"며 "한국 기업들은 남자 육아휴직 말 못 하고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많다"고 말했다. 강 차장은 육아휴직의 좋은 점이 정말 많다고 말했다. "아이와의 시간을 원없이 누려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며 "한 부서에만 오래 있다 보니 매너리즘을 느끼는 것도 있었는데 리프레시 측면에서도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다음은 강 차장과의 일문일답.

Q. 지금 다니는 회사의 육아휴직 문화와 제도가 상당히 앞섰다고 말했는데.

"일단 남자도 눈치 안 보고 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무엇보다 육아휴직을 쓴다고 해서 인사상 불이익이 없다. 어떤 여직원은 육아휴직에서 복직하자마자 진급한 사례도 있다.

또 육아휴직 신청 절차도 어렵지 않게 되어있다. 1년 전체를 쉬면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육아가 굉장히 힘든 100일부터 6개월 사이에 쓰는 등 몇 달씩 쪼개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도가 좋다."

Q. 처음에는 육아휴직까지 생각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회사가 야근이 많지도 않고 휴가 쓰는 것도 부담이 없어서 회사 다니면서도 제가 최대한 도와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첫째 출산 때는 출산휴가 등 휴가를 많이 썼다. 

그런데 둘째가 태어난 뒤에 육아휴직을 해보고 느꼈다. 온전히 혼자 양육자가 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부분, 깨달은 것들이 많았다. 한번은 생후 50일쯤 새벽 2시부터 아기가 깨서 5시까지 울고 날이 점점 밝아왔다. 너무 자고 싶은데 아기가 안자니까 토닥토닥 해주다가 어느 순간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끼며 스스로 놀랐다.

저는 그래도 평소 성격이 무던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 정도로 예민해진다는 점에 놀랐다.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다면 평생 알 수가 없었을 거다."

Q. 육아휴직을 쓴다고 할 때 주변 반응은 어땠는지.

"다른 동료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기 때문에 걱정이 되긴 했지만 분위기와 공감대 형성이 잘 됐다. 자녀가 이미 큰 분들은 '애들하고 보내는 시간이 부럽다'고 했다. 아내도 매우 환영했고 친구들도 신기해했다. 한국 기업들은 남자 육아휴직 말 못 하고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많다."

Q. 휴직 첫날 어땠는지 묘사해 달라.

"너무 좋았지만 초반에는 걱정이 됐다. 일주일 정도는 회사에서 연락 오는 거 아닐까, 문제 생기는 거 아닐까 했지만 실제로 연락이 안왔다. 나중에 들어 보니 어떻게든 안에서 해결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Q. 아이를 키울 때 가장 힘든 부분이 있다면.

"심리적으로 가장 힘든 것 같다. 출구가 없는 느낌이다. 회사는 퇴근하면 좀 잊으면 된다. 주말과 휴가가 있다. 육아는 그런 게 없다. 무한의 굴레다. 

재택근무 제도나 유연근무제가 큰 도움이 된다. 어린이집에 일찍 데려다주고 회사 가야 하는 것도 부담인데 사내 어린이집이 있으면 동선에 큰 도움이 된다."

Q. 육아 휴직을 고민하는 남자 직원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커리어로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와 보낸 시간이 평생 간다. 흔히 '나 그만두면 회사 망한다' 그러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커리어 측면에서도 오히려 잠시 멈춰서 충전하는 시간을 가지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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