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스무 살, 빚 1억에 개인회생 고민"…'황금매물' 피해자의 눈물

유수연 기자 김예원 기자 2024. 7. 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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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구로·병점 100억대 전세사기의 늪…피해자 대부분 90년대생
제구실 못하는 특별법…"에스크로 제도 도입·중개사 책임 강화해야"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News1 오대일 기자

(서울=뉴스1) 유수연 김예원 기자 = "계약이 끝나면 퇴사 후 대학에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돈을 계속 벌어야 하니까 대학을 포기했어요."

최겨울 씨(가명·20·여)는 증권사에서 일하는 2년 차 직장인이다. 지난해 4월이었다. 서울 구로구에서 어머니와 집을 보다가 공인중개사의 소개로 이른바 '황금 매물'을 만났다. 공인중개사는 "인기가 너무 좋아 애플리케이션에도 안 올린 황금 매물"이라며 다가구주택을 보여줬다. 근저당이 3억 원가량 있긴 했지만 6억 원에서 줄어든 것이라는 공인중개사의 말을 그만, 믿어버렸다.

◇"가능성 없다" 매우 '현실적인' 대답

최 씨는 수중에 1400만 원이 있었다. 열아홉 살에 사회생활을 시작해 모은 돈이다. 여기에 부모님이 적금을 깨서 1000만 원을 보태 총 2400만 원이 됐다. 최 씨는 대출로 9600만 원까지 마련해 2400만 원과 합쳐 황금 매물인 다가구주택에 '입성'했다.

그러나 1년 후 최 씨 앞으로 경매 통지서가 도착했다. 처음엔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현실적인 방법을 찾기로 했다. 집주인이 이자와 원금을 상환하면 경매를 해지할 수 있냐고 최 씨는 은행에 문의했다. 그러나 매우 '현실적인' 답이 돌아왔다. "가능성이 없다"는 말이었다.

최 씨 같은 20·30대 젊은 청년들이 전세 사기에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서울 신촌과 구로구 등 사회초년생들의 주요 거주 지역에서 발생한 100억 대 전세 사기 사건이다.

최 씨는 지난달 2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플렉스 앞에 다른 피해자들과 일렬로 섰다. 이들은 '안전 매물 거짓말, 계약 유도한 부동산도 공범이다' '청년들은 100억 원을 잃었다'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었다. 이들은 '평균 1993년생'(31세)이다. 마이크를 들고 피해 복구를 호소하던 90년대생 피해자들은 발언 도중 눈을 질끈 감으며 눈물을 삼켰다.

ⓒ News1 DB

한창 하고 싶은 것 많은 스무 살의 열정은 '1억 원'의 빚(대출금)에 짓눌리고 있다. 최 씨가 그간 모은 돈으로 빚을 갚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대학 진학도, 친구들과의 모임도 모두 '빚' 때문에 포기했다고 최 씨는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최 씨는 "집안 사정도 풍족한 편이 아니라 빚에 대한 고민이 많다"며 "내 월급으로 갚으려면 최소 5년이 걸린다"고 했다. 그는 '개인회생'을 고민하고 있다.

사회초년생인 이 모 씨(29)의 처지도 최 씨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씨는 전셋값이 오르던 2021년도 4월 경기 화성시 병점동에서 자취방을 구했다. "이 정도 금액에 이 정도 매물은 없습니다. 계약 서두르지 않으실 겁니까?" 이 씨를 설득하던 중개사의 말이었다.

이 씨는 계약 당시 근저당이 있었지만, 상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집을 처음 구하는 것이라 근저당이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임대인이 돈이 많아 근저당이 문제 될 게 아니라는 중개사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대출이자를 최대한 줄이고자 목돈이 생기면 원금 상환에 쓴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현재는 '황금매물'을 떠나 다른 곳에 머문다. 사기 피해를 받은 집에 계속 사는 것이 힘들어서다. 이 씨는 결혼 생각도, 내 집 마련의 꿈도 포기했다. 우선매수권이 있지만 사고 싶은 집이 아니라 그러고 싶진 않다.

이 씨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틀 정도 못 자다가 지쳐서 잠들곤 한다. 사람들을 만나면 눈물이 나고 출근을 하면 업무에 집중할 수 없다. 결국 거리로 나섰다. 이 씨는 지난달 23일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전세 사기의 늪에 빠진 피해자를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전세 사기 특별법 시행 1년…여전한 '사각지대'

지난 7월23일 대책위를 발족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현행법상 피해구제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다가구주택과 불법건축물은 경매 유예·정지나 매입임대주택 전환 등 전세사기특별법의 지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최우선변제금은 선순위 근저당 설정일을 기준으로 지급되는데, 이마저도 일부만 돌려받을 수 있다.

7세대가 사는 다가구주택이자 불법건축물에 거주했던 최 씨는 보증금(1억 2000만 원)이 최우선 변제 요건(1억 원 이내)에 해당하지 않아 최우선 변제금 지급 대상이 아니다. 전체 세대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입주해 경매 낙찰금 배당 순위도 늦어 사실상 돈을 받기 어렵다.

이들은 계약을 재촉하기만 할 뿐 보증금 미반환 등 위험성을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 공인중개사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중 신촌에 위치한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A 씨는 전체 피해자 94명 중 60여 명(63%)을 중개해 준 것으로 확인돼 경찰에 고소됐다. A 씨는 당초 증거 불충분으로 불송치됐으나, 사기 방조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검찰의 보완 수사 지시로 경찰의 재수사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세사기특별법이 급조돼 만들어진 법인 만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각지대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권대중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한국부동산융복합학회장)는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은 보증금이 전 재산인 저소득층이나 학생이 많다"며 "정부가 이들도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하는 등 지원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News1 오대일 기자

이어 "선구제 후구상보다 사전에 예방하는 게 좋다"며 에스크로 도입을 주장했다. 에스크로는 부동산 계약 체결 시 공신력 있는 제 3자가 거래를 중개하기 때문에 사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일각에선 부동산 중개인의 법적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사기특별법 자체가 급하게 만든 법이라 허술한 점이 있을 것"이라며 "부동산 공제증서 한도가 너무 낮은데, 이를 높이는 식으로 중개사 책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shushu@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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