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없다”며 의사 지시 없이 결박…그날의 기록은 연필로 썼다

고경태 기자 2024. 7. 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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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진정사건으로 본 격리·강박 실태
통증호소했다고, 재수없다고 격리
의사 지시커녕 기록조차 안 남겨
병원의 인권침해 신고해도 면죄부
정부는 아예 “실태조사 자료 없다”
춘천ㅇ병원에서 격리·강박 289시간20분(12일1시간) 만에 사망한 김형진씨가 사망 한시간여 전 자신의 호소를 간호사가 무시하고 나가자 애타는 모습으로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유족 제공 시시티브이 갈무리
*편집자: 손과 발, 가슴을 단단히 묶는다. 환자는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침대에 결박되어 누워 있다. 299개 병상을 갖춘 작은 정신병원인 춘천ㅇ병원에서 환자는 구원받지 못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시시티브이 영상에서 환자는 매일 신음하고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다 서서히 죽어갔다. 의사도, 간호사도, 보호사도 적절한 구호조처를 외면했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그 죽음의 동조자인 것처럼 보인다. 정신병원은 정신장애를 치료하는 곳이다. 그러나 치료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꽁꽁 묶어놓고 방치하는, 고문에 가까운 일들이 지금도 어느 정신병원에서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한겨레는 3회에 걸쳐 정신병원의 격리·강박 실태를 고발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저년 저거 안정실에 집어넣어 버려요. 오늘 또 지랄하네.” 성폭행 후유증으로 입원한 15살 여자아이가 복통을 호소했을 때였다. 간호사가 짜증을 내며 일어나더니 보호사에게 소리쳤다. 보호사는 즉각 그 환자를 안정실(보호실)로 끌고 가 문을 잠가버렸다. 2020년 1월 경기도 안산시 ㄱ정신병원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곳 정신병원에서 근무한 지 4개월 된 김민자(가명)씨는 더는 묵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처음 들어왔을 땐 보호사가 여성 환자의 머리채를 잡고 격리실로 가는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재수없게 머리 풀고 왜 내 눈앞에서 얼쩡거리냐”는 게 이유였다. 다른 곳에서 5년을 근무했지만 이런 경우는 보지 못했다. 다른 간호사들이 민자씨에게 모르는 척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이곳에선 의사 지시 없이 이뤄지는 ‘이유 없는 격리·강박’이 일상이었다. 간호사들은 비공식적으로 환자를 격리시킬 때 볼펜 대신 연필로 인계장(인계노트)을 작성했다. 연필로 작성한 기록은 전자차트(EMR프로그램)에 반영되지 않았는데, 강박 사실은 연필로도 쓰지 않았다.

결국 민자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출동한 경찰은 왔다가 그냥 돌아갔다. 대신 민자씨에겐 전보조치와 정직 3개월 처분이 내려졌고, 직장 내 괴롭힘이 따라왔다. 민자씨는 병원의 인권침해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했다. 2020년 7월 인권위 직권조사 끝에 35명이 부당 격리된 사실이 드러났다. 민자씨는 ㄱ병원 병원장을 공익신고자보호법 위반 혐의로 형사고소했고, 지난해 6월 1심에선 병원장에게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하지만 이 병원 운영자인 원무과장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채 병원 이름과 원장(페이닥터)만 바꿔 계속 환자를 받고 있다. 2021년 4월과 2023년 4월엔 두차례 환자가 창문을 통해 투신해 숨지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격리·강박

3일 한겨레는 춘천ㅇ병원에서 응급입원되자마자 251시간50분 격리·강박된 뒤 입원 289시간20분(12일1시간) 만에 숨진 김형진(가명·45)씨 사건을 계기로, 인권위에 진정이 접수된 정신병원들의 격리·강박 실태를 살펴보았다. 춘천ㅇ병원은 의사의 지시는 있었지만 환자 보호 지침이 전혀 지켜지지 않은 채 격리·강박이 시행된 경우였다면, 일부 병원은 병실이 아닌 ‘별도의 장소에서 격리·강박이 이뤄져야 한다’는 규정을 위반해 문제가 됐다.

인천의 ㄴ과 ㄷ병원에서는 격리·강박실이 부족하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기존 병실에서 강박을 시행했다가 환자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2021년 7월 ㄴ정신병원에선 소란을 일으킨다는 등의 이유로 병실 침대에 손과 발이 묶인 환자가 다른 환자에게 목 졸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분노조절 장애로 치료를 받고 있었고, 평소 피해자와 잦은 마찰을 겪어왔다고 한다. 두 사람이 머물던 곳은 6인실이었다. ㄷ정신병원에선 지난해 11월 병실에 강박된 환자가 다른 환자에게 맞아 복부파열로 사망했다.

보건복지부 등의 격리·강박 세부지침은 “격리·강박은 격리(강박)실로 명시된 공간에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1명만 들어가는 격리·강박실이 아닌 다인실에 환자를 묶어두면, 묶인 환자는 “풀어달라”고 몸부림치며 소음을 일으키게 되고, 이 과정에서 다른 환자들과 시비가 벌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규정은 지키지 않아도 법적 제재를 받지 않아 일선 현장에선 유명무실한 원칙이다.

인권위 조사 결과, 인천의 ㄹ병원에서도 병실 내 강박이 일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2022년 11월 인권위가 이 병원을 직권조사한 결과를 보면, 환자들은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다른 환자의 잠을 방해하거나,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이유로 병실 침대에 묶였다. 격리실이 찼거나 당사자가 격리실 입실을 거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환자들은 적게는 일주일에 1~2회, 많게는 매일 침대 기둥에 양팔을 묶이는 2포인트 강박과 양팔과 양발을 모두 묶이는 4포인트 강박을 당했다. 강박은 최소 1시간에서 최대 4시간까지 지속됐다.

인권위의 최근 5년간(2019~2023년) 정신보건시설 진정처리 현황에 따르면 ‘부당한 격리·강박’에 대한 진정은 463건으로 강제수용(2169건), 폭행 및 가혹행위(697건), 의료조치 미흡 등(685건), 폭언 및 욕설(525건)에 이어 다섯번째로 많았다. 하지만 이는 대표 진정을 중심으로 정리한 통계로, 대부분 중복 진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부당한 격리·강박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지침 위반 사실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의사가 격리·강박일지를 사후에 작성·제출하거나 의사 지시 없이 임의로 격리·강박이 이루어져도 그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인권위는 ㄹ병원의 6개월치 격리·강박 시행일지와 간호사 인계장, 직원 및 환자의 진술을 대조한 끝에 의사 지시가 확인되지 않는 부당 강박 사례를 잡아냈지만, 병실 강박 과정에서 환자가 살해된 ㄴ병원은 직권조사를 하고도 그간의 부당 격리, 강박 관행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 인권위 진정 463건 가운데 권고·고발·수사의뢰가 28건에 그치는 것도 그 영향이 크다. 대부분은 각하(304건)되거나 기각(127건)됐으며 3건은 합의종결됐다.

나아가 정신병원 격리·강박실 실태에 대해선 기본 자료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보건복지부는 격리·강박 실태와 현황, 시정조치 건수에 대한 한겨레의 요청에 “자료가 부존재한다”고 답했다. 통계 자체가 아예 없다는 것이다.

■ 돈과 인력 부족한 민간병원들

정신건강복지법(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제75조는 “치료 또는 보호의 목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지시에 따라 하는 경우가 아니면 격리시키거나 묶는 등의 신체적 제한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보건복지부 등의 지침은 자·타해 위험이 뚜렷하게 높을 경우로 격리·강박 시행 조건 및 상황을 정해두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들도 행동조절이 극단적으로 안 되는 환자에 대한 격리·강박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때로는 환청과 망상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스스로 보호실로 보내달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시행 조건과 기준 시간 지침(1회 최대 4시간 강박 및 2시간마다 사지운동)이 준수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심할 경우엔 의사의 지시가 없는데도 보호사나 간호사가 임의대로 가두고 묶는 경우까지 있다는 것이다. 안산 ㄱ병원 강박 실태를 고발했던 민자씨는 “300병상 아래의 중소형 정신병원이나 원무과장 등이 페이닥터(월급 의사)를 원장으로 내세워 운영하는 병원에서 이런 현상이 더 쉽게 벌어지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앞의 ㄱ·ㄴ·ㄷ·ㄹ병원 모두 300병상 아래의 규모다.

이영문 전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은 “대학병원이 응급 및 행정 입원으로 들어오는 급성기 환자(첫 발병 또는 재발 위중 환자)를 거의 받지 않다 보니 이들이 인력과 시설이 부족한 중소형 민간 정신병원으로 가기 마련”이라고 했다. 기선완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장(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도 “중소형 정신병원의 경우 시설·인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간 병원으로서도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 중심엔 ‘수가 문제’가 있다. 정신병원 환자는 다른 질환에 비해 의료급여 환자가 많은데 국가가 병원에 지급하는 비용이 너무 낮다는 것이다. 의료급여란 건강보험과 달리 정부가 저소득층에 진찰·검사·치료비를 지원하는 사회보장서비스를 말한다.

기선완 단장은 “정신의학과만 유일하게 의료급여 환자의 입원 및 치료비가 정액제”라고 설명했다. 의료급여 환자가 병원 등급 G2에 해당하는 정신병원에 입원할 경우 정부로부터 받는 하루 입원료 및 진료비는 7만원가량으로 월 기준 200만~220만원에 불과하다.

서울에서 200병상 정도의 정신병원을 운영하는 오아무개 원장은 “우리 병원의 경우 의료급여 환자가 60%에 이른다. 다른 과 병원들은 대개 의료급여 환자의 비율이 5% 미만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럼에도 의료급여와 건강보험 액수가 동일한 내과·외과 등과 달리 정신과 입원환자만 의료급여 액수가 건강보험 대비 60%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한 폐쇄병동 집중관리료(안전을 위한 보호사 채용)와 격리보호료(격리·강박 처치)는 의료급여 환자들에게 전혀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다만 응급환자 처치 비용(난폭한 환자 진정 또는 제압 등) 5만4850원만 4년 전부터 별도 산정되고 있다.

“우리나라 인권이 이 정도야?” “내보내달라.” “전화 좀 하게 해달라.”

춘천ㅇ병원에서 사망한 김형진씨의 경과기록지를 보면, 2021년 12월27일 편의점에서 소란을 벌이다 경찰에 의해 응급입원된 형진씨는 가족에게 연락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ㅇ병원은 형진씨가 폭력성이 강했다고 주장했지만, 한겨레와 인터뷰한 유족은 “본인 병(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을 정확히 인지하고 주기적으로 통원치료를 받은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병원은 형진씨의 요청사항을 들어주지 않은 채 가족에게 연락도 취하지 않고 곧장 격리·강박한 뒤 주사제를 놓았다. 왜 굳이 이렇게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 병원이 그동안 제공해왔던 의료서비스 상황에선, 가장 익숙하고 손쉬운 대응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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